“사고지점 갈 때마다 식은땀이…” 기관사 트라우마 심각한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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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1.05. 오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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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경의·중앙선 사상사고…기관사 트라우마 우려도
지하철 기관사 1년 트라우마 발병률 일반인의 8배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그 장소, 그 장소에 가면 그때 사건이 되살아나는 거 같아. 그래서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그 사고지점을 갈 때마다 식은땀이 나는 거야. 승강장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만 해도 머리가 식은땀이 나고… 아 이러다가 나 기관사 못하는 거 아냐…” (서울대 간호대학(김영주)|사고에 노출된 기관사 현상학적 연구 자료 중)

경의·중앙선에 사람이 뛰어드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이와 유사한 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는 사고 발생 전후 과정에서 적극적 조처로 이들의 트라우마를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3일 코레일과 소방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46분께 선로에 60대 후반 남성이 뛰어들어 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해 경의중앙선 운행이 중단됐다. 열차 운행은 약 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38분께 재개됐다.

소방 관계자는 “오후 3시49분께 역무원 신고가 들어와 출동했고 현재 열차에 치인 사람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열차가 진입할 때 맞춰서 뛰어든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한국철도공사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3년~2018년 8월 기준) 철도 승강장이나 선로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265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219명은 사망, 46명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고 과정을 모두 목격하고 현장에서 상황을 수습하는 기관사들의 트라우마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열차 운행 중 자살을 목격한 기관사는 트라우마로 정신 불안을 호소하다 9년 만인 지난 2012년 철도에 투신해 사망했다. 2003년부터 2013년 동안 승무원 7명이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사상사고가 또 다른 사고를 불러오는 셈이다.

지난2월27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서울역-남영역 사이 구간에서 40대 추정 남성이 하행선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와 충돌했다. 사진=연합뉴스


트라우마는 심한 충격이 되는 사건을 경험하고, 당시 사고 장면이나 감각, 생각이 원치 않음에도 반복되면서 마치 당시 상황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끼는 정서적 괴로움, 사건과 관련된 사람, 장소 및 대화 등을 피하는 회피행동 등 다양한 증상을 겪게 되는 대표적인 정신질환 중 하나다.

직업별로는 위험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소방관, 경찰관, 군인 등 재난 관련 직업군에게서 특히 높게 나타난다. 또 지하철 기관사의 경우에도 밀폐된 공간에서의 장시간 운전, 수 만명의 승객에 대한 부담감, 사상사고 발생으로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지하철 기관사는 투신 사고 등을 목격한 경우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 중에서 트라우마를 보이는 경우가 48.5%, 1년 트라우마 발병률은 일반인의 8배로 높게 나타나 관련 대책이나 치료프로그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서울시가 한림대학교에 의뢰해 2012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직원 4,0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운전 직군은 모든 영역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나 ‘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특히 이 조사에서 트라우마와 관련해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은 338명(8.3%)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에서 트라우마 증상자는 164명(48.5%)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13년부터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한 상담전문가 3명을 배치해 자체 ‘힐링센터’를 통해 직무 스트레스와 개인·가족 문제 등 상담과 치료,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운행 중 사고를 당한 기관사에게 3~5일의 휴가가 주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기관사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대 간호대학(김영주) ‘사상 사고에 노출된 기관사의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에 참여한 한 기관사는 “휴가 끝나고 첫 출근 했는데 그 열차였어요. 사고 현장을 간신히 지나갔죠…차량 머리가 움푹 파인 게 있거든요. 그러면 그 차를 보면 그 흔적을 꼭 보게 돼요, 움푹 파여 있는 게 때마다 흠칫 하죠“ 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관사 “역시 손으로 제동을 걸어놓고 그 순간은 못 쳐다봐요. 무서워서…. 고개를 돌려버려요. 제동을 걸었으면 그 이상 더 할 게 없거든요”라며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기관사들의 트라우마를 연구한 서울대 간호대학은 해당 연구에서 “철도 및 지하철 사상사고는 기관사의 직무 능력과 무관하고, 불가항력적이고 높은 치명성, 대형 사고 및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특성이 있다”면서 “운행 중 사고에 노출되는 정도는 기관사의 직무 만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관련 대책에 대해서는 “사상사고 이 전의 예방 차원의 관리와 사상사고 경험 이후 초기의 적극적인 개입 및 실제적인 지원은 사고로 인한 피해 및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고 사회적 안전을 높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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