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박의 꿈…욕망의 열차에 탄 꼬리칸 사람들 [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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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2.04. 오후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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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 부동산 광고 전단 유의
사회초년생 노리는 신종 호객 수법도
직원에 "부자 될 수 있다" 꼬셔 무리한 영업
부동산 꼬리칸 법칙 적자생존 벗어나야
※ 풀버전 영상은 한국경제TV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부동산 불패 신화의 대한민국. 지금 이 시간 그 욕망의 열차 꼬리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한국경제TV 특별취재팀은 한 칸이라도 앞으로 가려는 사람들과 그런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을 추적했다. 서민들을 노리는 부동산 광고의 실체와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의 민낯을 들여다본다.



● 고수익 부동산 전단지의 실체는

‘1억에 3채, 월세 180만원’, ‘상가급매, 월세 49만원’, ‘3년 전 가격, 월세 40만원’.

세밑 한파가 매서웠던 얼마 전, 서울 지하철 1,2호선 몇 칸을 돌았을 뿐인데 이런 문구가 적힌 부동산 광고 전단지를 수북이 입수했다. 적은 돈만 있어도 안정적인 투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솔깃한 내용이다. 주로 노약자석이나 출입문 앞,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 붙어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믿을 수 없다”거나 “사기 같다”, “그렇게 좋은 투자정보라면 길바닥에 굴러다닐 리 없다”는 반응이었다. 취재 중 만난 역무원은 “누군가는 전단을 보고 전화기를 드는 사람이 있기에 떼도 떼도 계속 붙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광고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단지에 적힌 몇 곳에 전화를 걸고 관계자들을 만났다. 분양대행업체 직원이다. 이들이 소개하는 물건은 대부분 미분양 오피스텔이거나 지식산업센터, 공실인 상가였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세 시간 가량 해당 물건을 둘러싼 각종 부동산 호재를 읊었다.

공통적인 수법은 일단 계약금만 걸어놓고 가라는 것이었다. 1,2년간 임대료도 보장해준다는 것도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였다. 현장을 한 번 가보고 연락 주겠다 해도 “지금도 너무 늦게 왔다”, “마감임박이다. 놓치기 아까운 물건”이라는 말로 붙잡았다. “이렇게 좋은 물건이 왜 아직도 안 팔리고 남아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도 몇 개를 분양받은 물건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와 함께 이들이 소개한 물건 지역을 방문했을 때 현장 인근의 공인중개사들은 공실이나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등을 이유로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한 채를 팔면 분양업체 직원이 얻는 수익은 200만원에서 많게는 1,000만원 가량. 팔기 어려운 물건일수록 인센티브도 크다고 했다. 한 직원은 “부자들은 이런 물건에 관심 없다.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을 대상으로 영업한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분양업체는 더 교묘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20대 남성 박종민(가명)씨는 신종 영업방식의 피해자다.





● `소개팅 앱` 여자의 달콤한 유혹

“평균 외모 이상이었어요. 눈도 제법 크고 서클렌즈도 꼈고 그리고 볼륨감도 있고 호감형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그런 외모였죠.”

박종민 씨는 소개팅 앱을 통해 만난 여성 이은지(가명)씨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박 씨는 이 씨의 꼬임에 수 천만 원의 대출을 받고 부동산을 계약했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현재는 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들어간 1천만 원이 넘는 변호사 비용을 누가 낼지 법정다툼 중이다.

처음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대화를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박 씨가 보여준 당시 주고받은 메시지엔 청춘남녀의 설렘이 묻어났다. 그러다 약 1주일 만에 처음 만난 두 사람. 약속 장소는 여성이 근무하는 회사 근처였다. 박 씨는 여성이 일하는 분양업체에 가서 상담 한 번만 받아보자는 말에 이끌려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곳에선 여성의 직속상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료는 300만원. 아니다 싶으면 환불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내민 종이 한 장에 서명을 하는 순간 태도가 돌변했다. 박 씨는 “서명한 다음부터 요리가 시작됐죠. 저에 대한 요리가. 환불 안 된다. 너 이거 계약금 다 안 채우면 그냥 돈 날리는 거다. 이런 식으로 태도가 급변하는 거예요.”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그렇게 이어진 상담. 그들은 각종 호재와 월세 보장을 설명하며 박 씨를 안심시켰다. 그래도 돈이 없어 망설이는 박 씨에게 그들은 일명 ‘작업 대출’까지 시켜 총 두 채를 분양받게 했다. 박 씨는 그때까진 이은지 씨와의 만남에 기대감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박 씨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환불을 요구하자 이 씨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박 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모으던 중 또 다른 소개팅 앱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이 씨를 발견했다.

한국경제TV는 이 씨가 소속된 해당업체 측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업체 측은 별도의 입장을 전해오지 않았다. 대신 그 곳에서 3년간 일했다는 김주영(가명)씨를 만날 수 있었다.





● 분양대행사 직원의 고백

김주영 씨도 해당 업체에 다닐 때 까진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고객에게 수익을 안겨주고 본인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영업 할 때 첫 마디는 "3천 투자에 월 150 수익 어때요"였다. 그러나 이 믿음이 회사에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실시하는 이른바 마인드 교육에 세뇌된 결과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인드 교육은 다단계 사업장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강남에 빌딩을 샀다는 직원, 고급 외제차를 굴리거나 명품 시계와 가방을 두른 직원들이 강단에 서 열심히 일하면 자기들 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르메스 쯤은 다들 한 개씩 갖고 있었다. 한 채를 팔면 200만원. 한 달에 열 채 팔면 2,000만원. 강단에 선 그들은 서울 유명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도 이만큼 돈 못 번 다고도 했다.

그러다보니 소개팅 앱을 동원하는 건 예사였다. 사고 싶은 기색이 있어도 대출이 안 나와 망설이는 사람에겐 대출 서류를 조작해가며 무리하게 영업했다. 심지어 치매노인에 계약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실체를 알게됐다”며 “저를 통해 계약했던 분들에게 마음속으로 많이 미안하다”고 눈물을 터트렸다.

김 씨 역시 해당 업체가 수탁한 분양 물건을 여러채 계약했다. 김 씨는 해당업체가 “이렇게 좋으니까 네가 (계약) 한 번 해봐라. 네가 좋다고 생각해야지 그 물건 팔 수 있고, 다른 사람들도 좋다고 느낀다”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그렇게 본인과 가족 명의로 분양 받은 부동산에서 나오는 월세는 22만원. 분양받기 위해 받은 은행 대출이자로는 200만원 가까이 빠져나가고 있다. 그 역시 부동산 열차 꼬리칸에 올라탄 또 다른 승객이었던 셈이다.

이런 영업은 사회초년생이나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는 서민들에게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건 개인의 현명함만이 아니다. 관계당국의 책임 있는 대책도 요구된다. 부동산 꼬리칸을 움직이는 법칙이 언제까지 적자생존일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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