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예쁜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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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9.07.04. 오후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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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여자는 몇 살 때 가장 아름다울까?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아홉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녀를 ‘님펫’이라고 부르며 찬양한다. 미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주위 사람들을 감탄하게 할 만큼 빛이 나는 스물두세 살쯤을 꼽을 수도 있다. 친척 여동생, 초등학교 동창생, 아파트 같은 계단의 여학생 등등 항상 보던 여자들이 어느 순간 달라 보이는 나이가 이때인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삼십대 초반의 여자들이 매력적이라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고 우왕좌왕하는 이십대를 지나 나름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차분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는 나이.

그러나 역시 여자가 가장 예쁜 건 10대 후반의 학창시절이 아닐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가볍고 날렵한 움직임, 살짝 짓는 눈웃음. 남원에서 그네를 타던 성춘향이 열여섯이었고, 수없이 리메이크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가장 매력적인 배우는 10대 후반의 올리비아 허시였다. 이때는 정말 뭘 해도 밉지 않다. 운동을 잘하는 여학생, 책에 빠진 여학생, 심지어 수학을 좋아하는 여학생마저 아름다워 보인다. 심지어 수학 교과서 여백에 그려 넣은 X축, Y축 좌표까지 귀엽지 않은가.

한때 아무리 이 시절의 여학생이라도 화학을 잘하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인데,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화학자 아보가드로 선생님의 초상이 너무나 아름답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면 내 주위의 그 찬란한 여학생들이 설마 화학을 좋아하리라곤 상상이 안 되는 것이었다. 왜 교과서에 그런 사진을 실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그 편견이 깨진 것은 언젠가 연수원 동기 여성 변호사 두 분과 ‘분자요리’를 맛보러 갔을 때였다. 처음 분자요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모르는 어떤 종류의 음식, 어감으로 봐서는 일본 요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화학 시간에 배웠던 그 분자라는 것이다. 아니 맛 못지않게 미관도 중요하다는 요리에 웬 화학이? 오래전에 배철수가 나와서 선전을 했던 ‘못생겨도 맛은 좋아’라는 초코바를 주는 곳인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니 가르시아라는 요리사가 개발한 기법으로 맛과 향은 그대로 유지하되 형태를 변형시킨 음식을 말한다고 한다. 분자 단위까지 잰다고 할 정도로 세밀하고 정확하게 음식을 만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의외로 분자요리는 맛도 좋았지만 모양도 아주 예뻤다. 화학에도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이다. 같이 가신 분들도 즐거워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최근의 국제정세와 첨단 과학계의 동향에 대해 잠시 논한 후, 쇼핑과 육아에 대해 끝도 없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정보교환을 했다. 수다를 떨면서 유쾌하게 웃는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다. 그러고 보면 여자는 사십대가 되어도 역시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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