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레이와시대와 ‘쇼군’ 아베의 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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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5.01. 오후 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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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왕, 개헌 견제 기대 크지만… ‘실세 총리’ 냉혹한 현실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 즉위와 함께 일본에서 레이와(令和)시대가 시작됐다. 연호(年號)는 동아시아 군주제에서 신민(臣民)의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지배하려는 제도적 장치라서 현대 민주공화국 국민으로서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일본에서는 역사의 한 장(章)이 넘어가고 새시대의 막이 오른다는 점에서 국운일신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신일왕이 평화 수호에 대한 부친의 관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로 대표되는 개헌 세력의 무한폭주를 견제하기 바라는 기류가 있다.
김청중 도쿄 특파원
일왕이 일본 국민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에서 평화 수호자로서의 입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역할이 제한된 일왕의 한계를 냉철하고 균형감 있게 인식해야 한다. 소위 일본의 평화헌법은 상징(象徵)일왕제를 채택하고 있다. 헌법은 일왕에 대해 “일본국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며 “(일왕의) 국사(國事)에 관한 모든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다”고 규정한다. 일왕은 마음대로 1엔 한푼 못 쓰고, 국사와 관련해 말 한마디 못 하는 존재인 것이다.

아키히토(明仁) 상왕 퇴위식이나 일왕 즉위식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나 호헌에 대한 입장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국 국내에 있었던 듯하다. 퇴위나 즉위 소감 내용도 헌법에 따라 아베 총리가 수장인 내각 결의로 승인됐다는 점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 경시(輕視)가 외교정책의 기본이자 우익사관(史觀)이 지배적인 현 정권에서 국사행위와 관련된 일왕 발언에서 과거사 사죄 내용이 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작금의 상황에서 맹자가 논한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본다. 고결한 존재인 천자의 이상적인 덕화(德化)형 정치를 왕도, 권력자인 패자(覇者)의 인의(仁義)경시와 무력·권모술수형 정치를 패도라 불렀다. 과거 고대 중국의 천자와 실력자 군웅제후, 메이지(明治)유신 이전 일본의 신성 존재인 덴노(天皇)와 무력집권자 쇼군(將軍)을 거칠어도 이런 개념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왕도와 패도가 현대 일본에서 재현되는 듯하다. 일왕은 고귀한 평화를 말하고, ‘쇼군’ 아베 총리는 개헌론을 앞세워 국민을 현혹한다.

문제는 언제나 패자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아베 총리는 전범국가였던 쇼와(昭和)시대에 이은 과도기 헤이세이(平成)시대를 마감하고 전후(戰後)세대들이 주도하는 레이와 시대에 세계적인 정치군사 대국 부상을 꿈꾸고 있다. 자위대 존재 근거를 마련하도록 헌법을 개정하고, 주변국 위협을 부각해 무력을 강화하며, 러시아와 평화조약을 체결해 전후체제에서 완전히 탈피하려는 것은 준비과정이다.

여불위가 자신의 씨앗(진시황)을 잉태한 조희를 장양왕에게 보냈다는 속설을 신연호에서도 볼 수 있다. 국서(國書)인용을 강조하고, 1차 선정 후보 외 추가 후보 고안을 요구했다든지 레이와 선택 과정 자체에서 아베 총리의 ‘DNA’가 드러나는 실정이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연호에 명령을 뜻하는 레이(令)와 일본이라는 의미도 있는 와(和)를 택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일본에서는 ‘아베 다음은 아베’라는 말이 돌고 있다. 임기에 따라 2021년 9월 퇴임해도 비슷한 인물이 승계할 것이라는 의미다. 일본의 우경화·군사대국화는 도도한 흐름이다. 레이와 시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쇼군들이 일본(和)에 어떤 영(令)을 내릴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김청중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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