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 중고로 팔아 매출 1200억···거래선만 4000개인 ‘이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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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22. 오후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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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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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찾은 경기도 오산시 갈곶동에 있는 서플러스글로벌 본사. 2만5000㎡(약 7500평) 규모의 전시장에는 각종 반도체장비 1500여 대가 전시돼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중고 반도체장비 전시장이다. 한 대에 수억~수백억원 하는 반도체장비로, 시가로는 2000억원대에 이른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대형 반도체 업체(일명 ‘퍼스티어’ 업체)가 10~15년 정도 사용한 중고 장비를 스마트폰‧TV 등에 들어가는 전력반도체(PMIC) 등을 생산하는 일반 반도체 업체(일명 ‘레거시’ 업체)에 판매한다. 국내에선 DB하이텍 같은 회사가 고객이다. 반도체장비 시장의 ‘중고나라’인 셈이다.

이 회사 김정웅(55) 대표는 2000년 중고 반도체장비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중고 반도체장비 거래 분야에서 세계 1위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을 타고 지난해 이 회사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지난해 매출 1255억원, 영업이익 15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467% 늘었다. 다음은 김 대표와 일문일답.

중고거래 22년째…누적 3만 대 판매
중고 반도체 장비 업체 서플러스글로벌 김정웅 대표가 18일 오전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전시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산=장진영 기자

Q : 반도체 같은 첨단 업종도 중고 장비가 거래되나.

A : “수요가 꾸준하다. 반도체장비 가격이 보통 30억~60억원이다. 대기업이 아니면 이런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나 중소업체는 새 장비 가격의 30~70% 수준인 중고 장비를 찾게 된다. 대기업도 어차피 사용하지 못할 장비를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다. 아직 중고 장비 시장은 규모가 작다.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된다.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이 연간 70조원 규모인데 중고 시장은 6조원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장비 3만여 대를 40여 개국에 팔았다. 거래 업체가 4000곳 정도 된다.”


Q : 주로 어떻게 거래하나.
A :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구매자가 필요하다고 요청한 장비를 찾아서 연결한다. 수익은 가장 적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두 번째는 상태가 좋거나 수요가 많을 것 같은 장비를 일단 사서 보관하고 있다가 새 주인을 찾아주는 방식이다. 마진이 제일 좋지만, 재고 부담이 있다. 구매자가 원하는 상태로 개조해서 팔기도 한다. 중요한 건 미래 수요 예측이다. 한 번은 100만 달러(약 11억원) 주고 산 장비를 3년간 재고로 쌓아두다 20만 달러(약 2억2000만원)에 겨우 판 적도 있다. 어떤 때는 30달러(약 3만3000원) 주고 산 장비를 손질해 15만 달러(약 1억6700만원)에 팔았다.”
중고반도체 장비 거래 세계1위 서플러스글로벌 김정웅 대표가 18일 오전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전시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산=장진영 기자

Q : 어떻게 중고 반도체장비 거래에 뛰어들게 됐나.
A : “반도체 산업과 인연은 전혀 없었다. 무역회사에 다녀서 제품을 사고파는 데 익숙했다. 회사를 세우고 칩마운터(소형 전자제품의 인쇄회로기판에 정밀부품을 장착하는 장치)부터 돼지고기까지 세계 각국에 내다 팔았다. 그러다가 미래 산업으로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한 우물만 파자고 결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회사 부채비율이 400%까지 올랐지만,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하며 견뎠다. 이 시기에 경쟁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했고 2011년 세계 1위에 올랐다. 11년째 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Q : 삼성전자와 한국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활성화를 내걸었다.
A :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0% 수준이다. 나머지 70~80%가 시스템 반도체다. 규모가 다르다. 더 큰 시장을 노리는 것이 좋지 않겠나. 이를 위해서는 생태계가 잘 갖춰져야 한다. 예컨대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1위 업체인 TSMC가 있는 대만은 생태계 자체를 성장시키는 분위기다. TSMC가 수주하면 그 협력업체가 든든하게 받쳐준다. 한국은 ‘반도체 사업=대기업 산업’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이런 생태계 구축이 미흡했다. 최근에서야 정부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중고반도체 장비업체 서플러스글로벌 김정웅 대표가 18일 오전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오산=장진영 기자
반도체 생산도 공유 오피스처럼

Q :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강국이 되려면 뭐가 가장 필요할까.

A : “대표적으로 테스트베드(새로운 기술·제품의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설비 등을 갖춘 시스템)가 있다. 예컨대 반도체와 관련해 어떤 기술을 개발하면 테스트할 수 있는 장비, 그 장비를 운용할 전문인력, 그리고 그 결과를 분석할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연구개발(R&D)에 큰 비용을 쓸 수 있는 업체는 한 손에 꼽힌다. 그래서 오는 6월 완공하는 경기도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 안에 9900㎡(약 3000평) 규모의 ‘공유형 팹(반도체 연구·생산시설)’을 조성하려고 한다. 20~30개 업체가 입주해 공유 오피스처럼 반도체 장비나 시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와 협의하고 있고 5곳 정도는 입주가 확정됐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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