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밖 청소년 누가 보호하나...사라지는 강남구청소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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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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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강남구청소년쉼터. 유선희 기자

2011년 16살 찬혁군(가명)은 쫓기듯 집을 나섰다.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도망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지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현역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집 밖으로 나와 고시원을 전전하던 찬혁군은 서울역까지 찾았다. 노숙인을 돕는 사회복지사를 만나 강남구청소년쉼터를 소개받고 입소했다.

지훈군(가명. 당시 17살)은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기억이 나는 순간은 유치원 즈음이다. 이유도 모르고 이어지는 학대였다. 몽둥이와 둔기, 쇠파이프. 폭력의 강도도 세졌다. 견디지 못한 지훈군은 고등학교 1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직접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다. 지훈군은 경찰의 소개를 받고 쉼터에 들어갔다.

강남구청소년쉼터는 만10~19세 남자 청소년을 위한 단기 쉼터로, 1998년 서울의 1호 구립시설로 문을 열었다. 최장 9개월간 머물 수 있다. 수용인원은 15명이다. 23년 동안 3260명의 아이들이 쉼터를 거쳤다. 찬혁군이나 지훈군처럼 아동학대로 거리에 내몰렸다가 입소한 청소년이 상당수다.

단기간이나마 가정 밖 청소년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이 시설이 올해 말 문을 닫는다. 강남구가 대체 부지를 찾지 못했다며 ‘시설운영 종료’ 방침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강남구의회는 시에서 운영하는 쉼터가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강남구청소년쉼터 내에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 유선희 기자

강남구는 지난해 말 태화복지재단이 쉼터와 위탁운영을 종료하겠다고 밝히자 대체부지를 찾았다. 그러나 지난 8월 말 ”임대인들이 시설이 들어오는 걸 강력히 반대했다”며 ‘시설운영 종료’를 알렸다. 재단 측이 9월에 다시 이사회를 열고 ‘재위탁’ 방침을 세웠으나 강남구의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강남구 관계자는 “재단에서 재위탁 의사는 밝혔지만 장소는 차후에 논의하자고 했다. 장소가 있어야 위탁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강남구가 지난해 말 구의회 심의를 통해 책정한 쉼터 임차보증금 예산 9억원은 불용액이 됐다.

강남구의회 복지도시위원회 안지연 위원장은 23일 기자와 통화에서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강남구에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쉼터가 있어 구민들이 내는 예산을 중복으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구립 운영 쉼터는 시설이용 청소년들이 정원 미달이어서 운영비로만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가정 밖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예산이 들어가는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시설을 없애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기는 어렵다. 강남구에서 시립으로 운영하는 단기 쉼터는 남여 공용이어서 남자청소년을 수용하는 공간은 줄어들게 된다. 박건수 강남청소년쉼터 소장은 “강남구는 쉼터 이미지를 이야기 하는데, 그럼 누가 이 아이들을 보호할 것인지 묻고 싶다. 당장 이곳을 떠나게 될 아이들이 걱정”이라며 “쉼터가 사라지는 것은 결국 지자체 의지의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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