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남 아파트는 안전자산"…골드만삭스, 이주비 대출시장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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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27. 오후 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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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6 조합에 400억원 투자…연리 5.9%·수수료 2% 조건
자금 부족 가구에 내달초 집행…非은행 이주비대출 첫사례
"강남 부동산 신뢰할만" 골드만 글로벌 본사도 인정
정부의 재건축 규제 강화로 국내 은행 등 대출길 막히자
`저위험-고수익` 이주비시장 외국계 IB 속속 진출 노려


세계 최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강남 재건축 단지의 이주비 대출시장에 진출했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6구역 재건축조합에 이주비 대출 400억원을 해주고 이자를 받는 투자로, 다음달 초 시행될 예정이다.

골드만삭스의 이번 투자건은 시중은행이 아닌 증권사 등 IB가 재건축조합에 이주비를 대출해주는 첫 사례다.

정부가 재건축 단지에 대한 제1금융권의 이주비 대출을 시세의 20~30% 선으로 막으면서 다수 글로벌 IB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주비 대출 과정에서 IB들은 신탁사를 통해 시중은행에 이어 2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하는데, 강남 부동산의 현재 자산가치를 안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가능한 투자다.

재건축 정비업계와 IB업계에 따르면, 하나금융투자는 다음달 초 골드만삭스 자금을 끌어와 방배6구역 재건축조합에 400억원 규모 이주비 추가 대출을 지급한다. 방배6구역 재건축조합은 이달부터 본격 이주에 돌입했지만 일부 조합원은 정부의 조합원 양도 금지 조치로 집을 팔지 못한 채 이주비 대출이 막혀 이사를 갈 수 없는 처지다.

골드만삭스를 끌어들인 하나금융투자는 재건축 사업시행인가 시점 감정평가액(이하 종전 평가액)의 20%를 이주비로 추가 대출해주기로 했다. 이자는 4년간 연 5.9% 고정금리로, 금융사 수수료 2%(1회 납부)를 감안하더라도 경쟁사 대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나금융투자는 골드만삭스가 신탁사에 자금을 투입하고 이주비 대출을 수탁한 신탁사에서 다시 채권을 넘겨받는 채권인수 방식의 금융 구조를 짰다. 골드만삭스가 NH투자증권 신탁 파트에 400억원의 자금을 넣고, 신탁사가 이 돈으로 재건축조합에 이주비를 대출해준다. 조합은 이주비 추가 대출이 필요한 조합원에게서 토지에 대한 2순위 근저당권을 넘겨받아 신탁사에 넘긴다.

골드만삭스는 대출 실행 직후 신탁사가 갖고 있는 원리금상환채권과 근저당권을 인수하면서 사실상 대출 주체로서 원리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하나금융투자와 골드만삭스는 한국은행에 채권매매를 신고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외국계 회사가 수출과 관련되지 않은 국내 채권을 매입·매각하면 한은 외환심사부서에 미리 신고하게 돼 있다. 이 절차가 끝나면 다음달 초 이주비 대출이 실행되고 방배6구역 이주 작업도 마무리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 전 지역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에서 이주비를 포함한 금융권 대출을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 미만으로 낮췄다. 일선 은행에서는 재건축 이주비 대출을 종전 평가액 기준으로 최대 40%까지 내주고 있다. 재건축 사업시행인가 시점과 실제 이주 시점 차이로 인해 조합원이 실제 받을 수 있는 이주비 대출은 현재 시가의 20~30% 수준이다. 물론 기존 주택담보대출을 갚아야만 이만큼의 이주비 대출이 모두 나온다. 종전 평가액이 10억원인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조합원은 은행에서 최대 4억원까지 이주비를 대출받을 수 있는데, 하나금융투자는 여기에 2억원을 추가로 내주겠다는 얘기다. 추가 대출까지 받으면 현재 시가의 30~50% 수준까지 이주비가 나오는 셈이다. 과거에는 시공사(건설회사)가 자사 신용 대출로 이주비를 빌려줬지만, 정부는 올해 2월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고시변경을 통해 재건축 시공사의 이주비 대출까지 원천 봉쇄했다.

하나금융투자는 올해 2월부터 골드만삭스 등과 접촉해 재건축 이주비 대출 신사업을 발 빠르게 준비해왔다. 메리츠투자증권도 중간에 특수목적회사를 세우고 외국계 자금을 끌어들여 이주비를 대출해주는 구조로 다수 재건축 조합과 딜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이 금융구조를 짜고, 외국계 자금이 돈을 대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대부업체와 고액자산가가 투자한 사모펀드도 규제에 묶인 재건축 시장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강남 부동산 자산 가치가 워낙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하다고 글로벌 본사를 설득해 이번 투자건을 승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 이주비 대출을 검토 중인 다른 외국계 IB 관계자는 "정부가 1금융권의 재건축 이주비 대출을 사실상 막으면서 다수 외국계 IB도 이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며 "고수익·저위험 구조의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방배6구역은 기존 건물 약 250가구를 헐고 16개 동 1111가구를 새로 짓는 소규모 재건축 단지다. 웬만한 강남 재건축 단지는 3~4년간 1000억원이 넘는 이주비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강남 재건축 단지 전체로는 1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다.

이주를 앞두고 있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 조합장 A씨는 "정부가 조합원 지위를 양도하지 못하게 하고 이주비 대출도 사실상 막혀 있어 30%에 가까운 조합원이 이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외국계 자금을 받건, 대부업체 돈을 받건 결국 은행대출보다 높은 이자를 주고 이주비를 빌려야 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부동산 규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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