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기후위기 외면하는 거대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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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12. 오후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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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살얼음판이다. 이 전쟁의 주범은 누구인가? 박쥐인가 우한인가 신천지인가.

과거 전 세계를 떨게 했던 에볼라 바이러스, 탄저병 그리고 코로나19 등등 각종 전염병엔 공통점이 있다. 2007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고 폴 엡스타인 박사는 2011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Changing planet, changing health)>에서 지금 우리를 떨게 하는 코로나19 같은 역병의 주범이 무엇인가를 방대한 연구와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풍토병인데 주로 모기를 통해 전파된다. 지구가 더워지면서 모기가 급증했고 결국 남미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인간에게 1도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기와 해충의 세계에서는 0.1도도 엄청난 변화라서 기후변화 때문에 모기가 ‘좀 더’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박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아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14년 서아프리카 지역에선 에볼라 바이러스로 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 가뭄 때문이었다. 지독한 가뭄으로 먹을 것을 찾아 야생동물을 사냥했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 2016년 시베리아 지역에선 75년 만에 탄저병이 발병하였다. 수십년 전 탄저균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지구 온난화로 해동되면서, 탄저균 포자가 지면 위로 노출된 탓이다. 북극의 동토 아래 어떤 숲속의 마녀가 잠자고 있는지, 언제 깨어나 발톱을 세울지 알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폴 엡스타인은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재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데, 동식물은 고통받지만 사람은 안 그럴 것이고, 피해를 보더라도 가난한 개도국 주민들일 거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 톰 행크스 부부도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NBA 리그도 전면 중단됐다. 선진국은 우수한 과학기술과 청결한 환경, 넉넉한 자본으로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으며, 한국 역시 그 편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전염병 앞에서는 국경이 없음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재난이 일상화되어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환경단체들이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를 언급한 건 1990년대부터다. 그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였지만 오늘 우리는 세계 최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금까지는 가난한 나라와 말 못하는 동식물들만 고통받았지만, 머잖아 우리 모두 희귀 바이러스, 식량부족, 기상이변 같은 기후전쟁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환경단체가 아닌 미국 의학협회마저 “기온이 0.5도만 상승해도 우리에겐 참혹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가장 보수적이라는 과학자들도 함께 나선 마당이다.

코로나19의 창궐 앞에서 모두 애태우고 있다. 병든 뿌리를 두고 이파리에 약 바른들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폴 엡스타인의 책은 절판되었지만, 모든 재난의 뿌리, 기후변화를 더 염려하고 대비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선거가 코앞인데 거대 정당들의 기후정책은 애매하기 짝이 없고 기후리더는 정녕 어디 따로 숨긴 것 같다. <재정의>에서 저자 한근태 박사는 정치인을 ‘표식(票食)주의자’라 재정의하였다. 우리 목숨값, 알고 드시는지….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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