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무더위 쉼터도 폐쇄” 골목길 그늘에서 폭염 버티는 쪽방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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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7.28. 오전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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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열질환자 작년보다 1.4배 늘어
“폭염·열대야 당분간 이어질 듯”


21일 오후 1시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 마을 입구에 임시로 마련된 그늘막 아래 모여 앉은 다섯 명의 주민이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 쓰레기처리장이 있어 아스팔트 바닥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악취가 풍겼지만 주민들은 “더위를 피할 곳이 이곳뿐”이라며 자리를 지켰다.

구룡마을 주민 이현규(77)씨는 “보름 전에 할머니 한 분이 더위에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갔다”며 “지붕이 기와도 아니고, 천이나 판자라서 열기를 감당할 수가 없다. 이 동네는 에어컨이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들며 올해 최악의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쪽방촌과 판자촌 주민 등 주거취약계층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그간 지자체에서 제공하던 무더위 쉼터에서 에어컨과 샤워시설을 이용하며 더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운영이 제한됐다.

21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들이 그늘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윤예원 기자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일 장마가 끝난 뒤 연일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등 강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벳고기압, 6호 태풍 등의 영향으로 22일과 23일엔 중부내륙을 중심으로 38도까지 기온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계속해서 높은 기온이 유지되면서 열대야를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상청과 서울시 등은 온열 질환 발생을 우려하며 야외활동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지만, 쪽방촌과 판자촌 주민들은 “전기세는 비싸고, 바닥은 뜨거우니 집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0일 영등포 쪽방촌의 풍경도 비슷했다. 주민들은 문을 열고 있거나 한낮에는 아예 거리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서울 최고기온이 34도로 치솟은 오후 2시쯤 주민들은 그늘 아래 앉아 손바닥 만한 부채에 의존해 더위를 버텨내고 있었다. “집 안에선 열기를 견딜 수 없다”며 바닥에 가스버너를 놓고 라면을 끓여 먹는 주민도 있었다.


이곳에서 다섯 번째 여름을 보내고 있다는 박민성(가명·58)씨는 찬물에 적신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천막 아래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박씨가 살고 있다는 쪽방에 가보니 보통 체격의 성인 남성이 새우잠을 겨우 잘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고 작은 창문과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내부 온도는 34.5도까지 올라 취재진이 박씨의 방에 머무르는 5분 동안에도 땀이 줄줄 흘렀다. 박씨는 “오늘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어제(19일)는 38도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문을 활짝 열어둔 채 방 안에서 쉬던 60대 여성 B씨는 “문을 닫으면 찜질방보다 더워져서 문을 열고 지내고 있다. 오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발소리 때문에 신경이 쓰이지만 너무 더워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20일 방문한 서울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 모습. 더위를 피해 그늘 아래에 모여 부채질을 하고 있다. /김효선 기자

무더위 쉼터도 ‘그림의 떡’이었다. 구룡마을 마트 앞에서 만난 김주희(가명·70)씨는 “여기는 전기요금, 수도요금이 다 비싸다. 연립주택 수준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섣불리 틀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집 안과 밖 모두 뜨거우니 구룡산 밑으로 가서 쉬는 주민들이 많다. 근처엔 딱히 찾아갈 만한 쉼터도 없다”고 말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또 다른 주민 김모(79)씨는 “옆 동네에 무더위 쉼터가 있어서 이전까지는 폭염 때마다 그곳에서 더위를 나곤 했는데,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운영을 안 하더라”며 “여름이 되면 열기와 집 바닥에서 나는 곰팡내 때문에 안에 있을 수가 없어 결국 밖에 나와 앉아있는 게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21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의 집 내부. /윤예원 기자

강한 더위에 온열질환자 수는 지난해보다 늘고 있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20일부터 7월 19일까지 전국 응급실로 이송된 온열질환자는 총 343명이었다. 사망자는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같은 기간 온열질환자는 131명 늘어난 474명을 기록했고, 추정 사망자도 6명이 나왔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는 쪽방, 판자촌 주민 등 재난취약계층 특별보호 대책을 지난 20일 발표했다. 시는 서울역과 남대문 인근에 야외 쉼터 2곳, 실내 무더위 쉼터 20곳을 운영하고, 15개 자치구에 공공·민간기관 교육원 숙소나 관광호텔 등을 활용한 안전숙소 37곳을 연다.

또 쪽방주민 등 보호를 위해 특별대책반을 마련해 순찰과 상담을 강화하고 후원물품을 배달한 예정이다. 노약자나 기저질환자의 경우 간호사가 주 2회 가정을 방문해 건강을 확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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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은영 기자입니다. 중소·중견기업과 엔터·콘텐츠 기업, 스타트업을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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