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 웨딩컨설팅 세워도 '이상 무'

입력
수정2019.06.09. 오전 9:37
기사원문
류인하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쪽 업계에 있으면서 컨설팅 업체에 사기 한 번 안 당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한 드레스 업체 대표의 말이다. 또 다른 청담동 소재 스튜디오 대표는 “예비부부들에게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비용을 받은 뒤 폐업하거나 잠적하는 컨설팅 업체가 정말 많다”고 했다.

결혼에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바꿔 말하면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은 웨딩업계와 관련된 정보를 잘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겪어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웨딩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업계에서 자행되는 각종 이전투구는 상상 이상이다. 그들끼리의 싸움일 뿐 ‘소비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들어맞지 않는다. 업체들의 갖가지 이해 갈등 싸움은 결국 가장 무지한 결혼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대법원이 제공하는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통해 ‘웨딩 컨설팅’으로 검색해 나온 2013~2018년 판결문 15건을 분석했다. 피고인은 대부분 웨딩 컨설팅 업체 대표 또는 플래너였다. 이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모두 ‘사기’다.

일러스트 김상민

실형 선고 받고도 또다시 업체 운영

판결문에는 웨딩 컨설팅 업체가 ‘스드메’ 업체를 상대로 사기를 치거나, 예비부부를 상대로 사기를 친 범죄 사례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방식은 유사하다. 결혼 컨설팅비를 지급받은 뒤 잠적하거나 폐업하는 방식이다. 피해액은 피해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문제는 결혼식 자체가 망가진다는 데 있다. 결혼식 당일 웨딩드레스를 입지 못하거나, 촬영 앨범을 받지 못하고, 신혼여행 계약비용을 지급했는데 예약이 돼 있지 않은 채 대표가 잠적하는 식이다.

청담동의 중견 스튜디오 업체 대표 ㄱ씨는 “현재 업계 상위권에 드는 업체 의 ㄴ대표는 과거 웨딩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면서 고객과 ‘스드메’ 업체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복역까지 한 인물”이라며 “출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웨딩 컨설팅 업체를 차려 운영하고 있지만 고객들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고 말했다. 과거 5년간 웨딩 컨설팅 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작가로 전향한 ㄷ씨는 “웨딩업계는 한 번 사기 치고 폐업한 인간이 또다시 개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무법지대”라고도 묘사했다.

여기에는 너무나 쉽게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현 시스템이 한몫을 하고 있다. 통상 법인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대표이사는 회사를 건전하게 운영할 수 있을지 여부를 증명할 수 있는 각종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업종에 따라 초기자본금이 있어야 하고, 법무부에 법인등기도 해야 한다. 불량업체를 걸러낼 수 있는 사전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웨딩 컨설팅 업체는 전부 개인사업자다. 즉 아무 조건 없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영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개인사업자가 과거 업계에서 사기 등의 범죄전력이 있는지, 사업을 안전하게 이끌어갈 만한 자본금이 충분한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스드메 업체 및 혼수업체, 신혼부부를 상대로 사기를 친 뒤 폐업하고 또다시 컨설팅 업체를 세워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업종에 따라 인·허가를 받아야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있는 업종이 있으나 해당 업종은 대상이 아니다”라며 “또 범죄경력이 개인사업자 인·허가 요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사업자는 법인과 달리 별도의 등기를 요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사기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도 또다시 컨설팅 일을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금전적·물질적 피해보전 기대 어려워

#1 서울 강남구에서 결혼 컨설팅 업체를 운영했던 ㄹ씨는 2007년 4~10월 18건의 결혼식 촬영 및 스튜디오 촬영을 의뢰한 뒤 촬영비 총 735만원을 업체에 지급하지 않았다. 또 여행사에 신혼여행 상품을 제공하게 한 후 63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드레스 업체들에는 드레스 대여를 위탁하면서 1455만원을 주지 않는 등 ‘스드메’ 업체에 2820여만원의 손해를 끼쳤다. 또 예비 신혼부부들을 상대로 ‘스드메’ 및 폐백 등 일체를 준비해주는 비용으로 300만원을 요구하는 등 신혼부부 5쌍을 상대로 합계 600만원을 지급받았지만 실제 아무런 준비도 해주지 않고, 신혼부부 121쌍을 상대로 촬영비 명목으로 7120여만원을 받은 뒤 잠적하는 등 7860여만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2015년 7월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2 서울 강남구에서 ○○물산 사무실을 운영하던 ㅁ씨는 2009년 12월 웨딩드레스 대여업체에 “국민은행 임직원 중 예비 신혼부부 명단을 매월 50개 이상 줄테니 선지급금 5000만원을 달라”고 한 뒤 돈만 받고 명단은 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돼 2016년 10월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3 인터넷 네이버 카페에서 프리랜서 웨딩 플래너로 활동했던 ㅂ씨는 2016년 11월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대여, 메이크업 비용을 선입금하면 비용을 할인해주겠다”고 속이는 방식으로 91명의 예비부부들로부터 합계 2억9800여만원의 돈을 받아낸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기소된 웨딩 컨설팅 업체 대표나 플래너들에게는 대부분 실형이 선고됐다. 사기범죄에서 중요한 형량 감경요소인 ‘피해보전’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플래너 ㅂ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결혼을 준비하는 피해자 91명을 대상으로 결혼비용을 할인해준다는 명목으로 약 3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편취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고, 피해회복도 되지 않아 피고인은 그에 상응한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양형이유를 적었다. 나머지 판결문에서도 공통적으로 “피해회복이 이뤄지지 않았고”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판결문 대로라면 일단 사기 피해를 당하면 금전적·물질적 피해보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피해는 스튜디오 및 결혼식 촬영 앨범 미회수다. 컨설팅 대표가 스튜디오에 촬영비 지급을 하지 않거나, 스튜디오 자체가 폐업을 해버리면서 신혼부부들이 앨범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결혼식 당일에 가봉한 드레스를 입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청담동의 한 드레스 업체 대표는 “컨설팅 업체가 드레스 발주는 해놓고 결제를 해주지 않아 결혼식 당일 오전까지 신부에게 드레스를 주지 않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행복해야 할 날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해드린 것은 죄송하지만 컨설팅 업체로부터 한두 번 사기를 당해보면 마냥 신랑·신부의 입장만 헤아릴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네이버 메인에서 경향신문 받아보기
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주요뉴스해당 언론사에서 선정하며 언론사 페이지(아웃링크)로 이동해 볼 수 있습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