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을 입으면 야구단 소속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쓰인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 근처를 돌아다녀도 먼저 아는 척하는 사람이 없다. 선수 출입구로 오갈 때에만 어린 팬들의 관심을 받을 뿐 별다른 특이사항도 없다. 하루 종일 투수들의 공을 받는 불펜에서도, 심지어 경기 중에도 카메라에 얼굴이나 이름이 비춰지는 일이 없다. KIA 불펜포수 이동건(27) 얘기다.
이동건은 매년 12~1월마다 정든 포수용 글러브를 내려놓았다. 프로야구 규약상 비활동 기간인 만큼 투수들의 공을 받아줄 필요도 없었고, 불펜포수이기에 다른 선수들처럼 몸 관리에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KIA가 11월 말까지 마무리캠프를 소화한 이후부터 2월 스프링캠프 출국하기 전까지는 야구장으로 출근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거나 대형마트에서 짐을 날랐다.
올해는 달랐다. 1월부터 신인 투수들의 볼을 받기 위해 종종 광주 KIA챔피언스필드로 출근해 공을 받은 것이 야구와 관련한 일과의 전부였다. 그 전까지는 ‘백수’로 지내면서 펜을 들었다. 컴퓨터 활용 능력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이동건은 “남들은 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많이 활용해서 자격증이 많을텐데 나는 계속 야구만 해서 그런 쪽과 관련이 없었다”며 “늦은 것 같아서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을 위해서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컴퓨터 자격증 공부로 반나절을 썼다면 나머지 반은 인터넷 영어 강의에 할애했다.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이동건은 지난 11월 도영빈 매니저와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 영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맷 윌리엄스 감독을 비롯해 외국인 코치, 선수들도 새로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부를 결심했다. 이동건은 “코치님들이나 선수들과 내가 직접 얘기하면 바로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불펜포수라면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며 “혹시 나중에 불펜포수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을 때에도 영어 회화 능력이 필요하지 않나.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약 두 달간 야구를 내려놓았던 이동건은 “역시 야구가 제일 쉽고 재미있네요”라며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그리고 오늘도 미국 플로리다 포트마이어스에서 투수들의 공을 받고 있다.
ymin@sportsworldi.com 사진=KIA 제공
사진설명: 이동건은 비시즌 컴퓨터자격증과 영어 공부를 하면서 미래를 구상했다. 사진은 2017년 이동건(왼쪽)과 팻 딘이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