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 킬러’ 대형차 경적… 차량 폭력 부른다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이달 초 서울 마포구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주변을 걷던 대학생 조현석(24)씨는 소스라쳤다. 대형 고속버스가 앞차에 내지른 육중한 경음기 소리 때문이었다. 폭발하듯 “빵” 하고 터진 굉음에 조씨는 귀가 다 얼얼할 정도였다. 버스 주변에 있던 승용차들도 놀라 신경질적으로 경음기를 울려댔다.

조씨는 “경음기 소리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버스 쪽으로 눈을 흘기고 인상을 찌푸렸다”며 “승용차들이 내지르는 경음기 소리까지 더해지면서 짜증이 확 났다”고 했다.

화물차나 버스 등 대형 차량이 울려대는 에어클랙슨 소리는 자칫 운전자와 보행자들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이어지는 민감한 문제다.

경찰 관계자는 “커다란 경음기 소리에 발끈한 운전자들이 서로 몸싸움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며 “심하면 일부러 접촉사고까지 내는 등 차량폭력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도시소음을 다루는 서울시 관계자는 “경음기는 운전자들이 분노를 드러내는 방식”이라며 “그래서 이 소리를 언짢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화물차나 버스 등 대형 차량이 달고 다니는 에어클랙슨은 일반 승용차에 달린 전자식 경음기보다 훨씬 소리가 크다. 화물차나 버스에는 공기를 내뿜는 에어탱크나 에어브레이크가 있는데, 이 장치의 기압을 조정해 소리 크기를 원하는 만큼 늘릴 수 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보통 화물차는 지붕 위, 고속버스는 차 바닥에 에어클랙슨을 다는데 이 위치에 따라서도 소리 크기가 달라진다”며 “또 450㎜, 750㎜ 등 에어클랙슨의 길이도 소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에어클랙슨을 쓰는 운전사들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화물차나 고속버스 등은 일반 승용차보다 소리가 큰 경음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화물차 운전사 장모(57)씨는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사고가 날 가능성이 일반 도로보다 높다”며 “특히 밤에도 움직이는 화물차나 고속버스는 소리가 큰 에어클랙슨을 써야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에어클랙슨을 다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현행법상 소리 크기가 90㏈을 넘고, 같은 소리가 일정하게 유지되면 정상적인 경음기 소리로 인정된다. 에어클랙슨이든 전자식경음기든 경음기의 종류는 상관이 없다.

다만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은 경음기의 최대 소리 크기를 제한하고 있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2006년 1월 1일 이후에 만들어졌고 현재 운행되고 있는 대형 화물자동차의 경음기는 소리 크기가 112㏈을 넘으면 안 된다. 경자동차의 기준인 110㏈과 2㏈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일이 측정하긴 어렵지만 에어클랙슨을 달고 다니는 대형차들의 경음기 소리는 대부분 이 기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도 “소리 크기가 120㏈이 넘는 에어클랙슨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음기 소음을 단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음주운전처럼 한 장소와 시간대를 정해 집중단속을 할 문제도 아닌 데다 경음기 소음만으로 운전자를 고발까지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식적으로 경음기 소리를 단속할 수 있는 기회는 자동차 정기점검 때가 유일하다. 검사원은 소리가 이상하다고 느끼면 소음 측정기로 경음기 소리를 재볼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단속 효과는 거의 없다. 검사원이 ‘이 경음기 소리는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측정기 검사를 생략할 수 있어 실제 측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게다가 운전자가 점검 때만 잠깐 경음기 소리를 줄여놓으면 단속에 걸리지 않는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특정 차량의 경음기 소리가 너무 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자체 관계자가 소리 크기를 재본 뒤 해당 차량을 처벌하는 게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경음기는 자동차 튜닝에 관한 규정에 따른 승인 대상도 아니라서 소음규제를 어기고 있는 차량의 실태조차도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국민일보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국민일보 꿀잼영상 바로가기]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