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든 한다 수도권 철도 지하화…그런데 재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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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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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선 후보 SOC 공약 점검]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지하화①사업비 공식 추산만 24조원 육박, 4대강 ‘훌쩍’
②임기 내 착공만 해도 성공, 긴 사업 기간 변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등 여야 대선 후보들은 최근 수도권 교통 인프라 개선을 약속하면서 한목소리로 경인선과 경부선, 경원선 철도 가운데 현재 지상(地上) 구간들을 지하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에 따라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철도 지하화 사업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야심 찬 대선 후보들의 선언과 달리 철도 지하화는 막대한 사업비와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보니 실제 착수하더라도 난관이 한둘이 아니다. 이미 두 대선 후보가 추산한 사업비만 이명박정부 시절 국책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음 대통령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철도 지하화는 이번 대선에서 처음 나온 어젠다가 아니다. 이미 경부선, 경인선 등 해당 철로가 지나는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지방선거때 해당 지역 후보자들의 ‘단골 공약’으로 제시됐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에도 공약으로 나온 바 있다.

선거철마다 공약으로 나온 것은 그만큼 지상에 놓인 철도로 인해 인근 지역 생활권이 단절되고 철도 주변이 ‘슬럼화’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등 1호선 철로 주변 지역은 서울 내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힌다. 철도 지하화의 가장 모범 사례는 서울 용산구에서부터 마포구 연남동 일대까지 쭉 이어진 경의선 숲길이다. 옛 경의선 선로를 지하화하고 지상 대부분 지역을 녹지화한 뒤로 청년층을 비롯해 수많은 시민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경의선 숲길 주변 상권도 탄력을 받는 등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이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막대한 사업비가 드는 것이다. 여야 후보 중에는 윤 후보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소요 재원을 밝혔다. 윤 후보 측 추산 23조8550억원으로 4대강 사업에 들어간 22조원보다 많다. 이 후보 측은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나 사업비 추산치를 밝히지 않았다.

개별 지자체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막대한 사업비다 보니 철도 지하화 기본구상에 대한 연구용역은 이미 수년 전에 진행됐지만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철로 주변 지역에서는 이번 대선을 계기로 중앙정부 예산이 대거 투입되면서 지하화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디테일’ 측면에서는 복병이 많다. 우선 사업비 추산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윤 후보 측은 경인선 서울 구로역에서 인천 도원역까지 구간을 지하화하는데 4조7340억원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16년 서울 구로구와 경기도 부천시, 인천시 부평구, 남동구, 남구 등 경인선 구간에 있는 5개 기초자치단체의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총사업비가 7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6년 전 기준임을 고려하면 실제 사업비는 더 들어갈 수도 있다.

재원 조달 방안 역시 난제다. 윤 후보 측은 철도를 지하화한 뒤 지상 부지를 개발해서 그에 따른 개발이익으로 지하화 재원을 조달하면 막상 실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투입할 예산은 5조7150억원에 불과하다고 본다. 경부선과 경인선, 경원선의 지상권 개발이익을 합치면 18조140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이익이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7일 “철도는 기본적으로 길쭉한 선형(線形)이다 보니 공원 부지나 생활기반시설 일부를 넣을 수 있을 뿐 지하화에 따른 개발이익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철도 노선을 신설할 때 민간 사업자를 참여시켜 건설비를 조달하고 철도 노선 운영 수익을 일부 보장해주는 형태로 민자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철도 지하화는 노선 신설과 달리 이미 철도 운영 주체가 한국철도공사나 서울도시철도공사 등으로 정해져 있어 이런 방식을 적용하기도 어렵다.

결국 개발이익을 내려면 철도 지상부지뿐 아니라 철도 노선 주변 지역 개발도 병행하는 게 유리하지만, 인근 토지주와 건물주 등과 조율을 거쳐야 해서 사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민자 없이 막대한 국비를 투입하면 자연스레 “가뜩이나 수도권 집중 현상이 극심한 데 국비까지 투입해 수도권을 추가 지원하느냐”는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유 교수는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지역 개발까지 같이 결합해서 수도권의 철도 지하화는 민자로 추진하고, 국비로는 수익성이 낮은 지방 인프라 개선에 쓰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사업 기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큰 변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중앙 정부 차원에서 수도권 철도 지하화를 추진하려면 타당성 조사 등의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텐데 이런 절차를 거치고 나면 다음 대통령 임기 후반부일 것”이라며 “정치 상황이 달라지면 사업이 계속 탄력을 받을지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다음 대통령 임기 내에 착공만 해도 성공”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가 2014년 개최한 경부선 지하화 주민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대만은 타이베이 인근 철도 22.3㎞에 대한 지하화 사업을 1983년 시작해 2013년에야 끝냈다. 무려 30년이 걸렸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지하화하기로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구간만 합쳐도 구간 길이가 68.3㎞로 대만의 3배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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