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 남진우

노인과 바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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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열, [어부가 된 이다], 2005 작품 보러가기

1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 | 남진우 글

“헤밍웨이에게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느냐 하는 것은 평생 따라다닌 관심사이자 문학적 주제였다. 그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 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정치 사회적 현안을 배격한 채 비극적 세계에서 고독한 영웅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을 소설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에게 그 외의 것들은 다 협잡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는 미국문학에서 아담적 전통(Adamic Tradition)을 가장 잘 계승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몇 달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가 있다. 마을에선 그를 따르는 어린 소년 하나만 그의 편이 되어줄 뿐 아무도 ‘운이 다한’ 그를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 날 홀로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간 그의 낚싯바늘에 거대한 청새치가 걸려든다. 그의 배보다 더 큰 그 물고기와 이틀 밤낮에 걸쳐 드잡이를 한 끝에 그 물고기를 끌고 항구를 향해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해안에 도착했을 때엔 물고기는 이미 피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들에 의해 다 뜯어먹히고 앙상한 뼈와 대가리만 남은 상태였다. 노인은 오두막집에 지친 몸을 누이고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 꿈을 꾸며 잠든다.

누구나 다 아는 이 이야기의 작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가없는 바다와 하늘이라는 자연의 원형극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는 좌절을 모르는 불굴의 인간 정신에 대한 찬양이자 광활한 우주 속에서 고독한 단독자로 존재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비감 어린 헌사이다.

상어와 사투를 벌이며 노인이 뱃전에서 되뇌는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는 단언 그대로 이 작품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 묵묵히 시련을 견디는 강인한 노인의 초상을 통해 고전적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준다.

눈부신 빛과 파도, 바람과 구름 같은 자연의 4원소가 진동하는 이 소설은, 비교하자면, 지중해의 태양과 소금기의 맛이 감도는 카뮈 같은 유럽 작가의 소설과는 다른 향일성의 감흥을 읽는 사람에게 제공한다.

거기엔 멕시코만 특유의 역사적 상흔과 생존을 위한 투쟁이 강렬한 피냄새와 뒤섞여 있다.

20세기에 행동주의 문학이란 것이 있다면 프랑스에서는 앙드레 말로를, 미국에서는 헤밍웨이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기 나라 일이 아닌데도 세계 어디선가 큰 사건이 터지면 바로 달려가서 몸으로 직접 참여하고 소설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되풀이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에서 박격포탄에 맞아 수백 바늘 꿰매는 대수술을 받고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전쟁 영웅, 스페인 내전에 의용군으로 참가, 2차 세계대전 동안엔 자신의 낚싯배를 개조해 독일 잠수함 U보트 수색, 노르망디 상륙작전 취재, 이 밖에도 여러 차례 아프리카 탐험대에 참가했다가 두 번이나 경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도 불사조처럼 살아남…

이런 작가 이력은 창백한 책상물림이 대다수인 문학판에서 이 작가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색깔을 잘 말해준다. 그가 즐겼다는 스포츠 역시 사냥, 바다낚시, 권투 등 거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것들이다.

작가 헤밍웨이. ‘파파(Papa)’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그는 건강하고 거침없는 미국 남성상의 상징이었다. 20세기를 통틀어서 그보다 더 뛰어난 미국 작가는 여럿 꼽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작가, 그보다 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작가를 찾기란 어렵다.

‘파파(Papa)’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그는 건강하고 거침없는 미국 남성상의 상징이었다. 20세기를 통틀어서 그보다 더 뛰어난 미국 작가는 여럿 꼽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작가, 그보다 더 미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부합하는 작가를 찾기란 어렵다(작가로서 그는 생전에 <타임> 지에 두 번, <라이프> 지에 세 번 표지 모델로 등장함으로써 유명세를 과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마릴린 먼로나 존 F. 케네디,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러하듯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도 해마다 7월이 되면 미국의 플로리다 반도에 위치한 키웨스트에서는 헤밍웨이를 닮은 사람을 뽑는 경연대회가 벌어진다.

전국 각지에서 허연 수염을 기른 건장한 마초들이 몰려와 그들의 영원한 우상인 헤밍웨이를 경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노먼 메일러를 포함해서 많은 후배 작가들이 헤밍웨이의 이런 측면, 즉 문학이란 울타리를 뛰어넘어 한 시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획득하는 과업에 도전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흔히 헤밍웨이의 문학세계를 말할 때 언급되는 것이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초연함을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다.

때로 스토아적 극기나 용기에 비견되기도 하는 이런 강인한 남성의 모습은 현실 공간에서든 문학 공간에서든 점차 만나기 힘든 자질이 되어가고 있다. 헤밍웨이에게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느냐 하는 것은 평생 따라다닌 관심사이자 문학적 주제였다.

그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 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정치 사회적 현안을 배격한 채 비극적 세계에서 고독한 영웅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을 소설에 구현하고자 했다.

그에게 그 외의 것들은 다 협잡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가는 미국문학에서 아담적 전통(Adamic Tradition)을 가장 잘 계승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쿠바의 한적한 어촌의 오두막에 누워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를 꿈꾸며 잠든 초라한 늙은 어부의 모습에서 우리가 오랜 시련에 단련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위엄을 보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작품 소개

[노인과 바다]는 20세기 미국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이자 지금까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작품 중 하나.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 원숙한 인간관을 바탕으로 실존적 인간상을 등장시켜 비극적이고 환멸뿐인 삶이지만 인간이 가져야 할 용기와 믿음, 인내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기에 ‘20세기 미국문학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그만의 서사 기법과 문체가 성공적으로 더해지며 헤밍웨이 문학 인생이 응축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헤밍웨이 자신도 [노인과 바다]를 가리켜 “평생을 바쳐 쓴 글” “지금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노인과 바다]는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다가 뼈만 남은 잔해를 끌고 돌아오는 늙은 어부의 이야기다. 헤밍웨이가 실제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 근처에서 청새치 낚시를 하며 구상한 이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는, 감정을 절제한 짤막한 대화와 독백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시적 함의와 상징성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감정과 수식이 담긴 어떤 묘사보다 더 극명하고 생생하게 노인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잘 보여준다.

헤밍웨이 특유의 이 압축과 절제야말로 “서사 기법에 정통하고 현대문학의 스타일에 간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거대한 물고기와 상어를 상대로 벌이는 노인의 싸움은 인간 삶과 자연의 본질적 존재와 행위를 대변하는 상징 내지는 우화적 이미지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인간과 삶과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성찰을 목격하고 경험하고 또 자극받는다.

 
작가 소개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년 미국 일리노이에서 태어났다. 제1차세계대전에 적십자사의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했고, 1926년에 전쟁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상실과 허무감을 그린 [태양은 다시 뜬다]를 발표하여 피츠제럴드, 포크너와 더불어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작가로 주목받았다. 이후에도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하여 전쟁문학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플로리다에 살면서 바다낚시에 몰두하던 경험과 구상을 바탕으로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으며,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작품이 실린 [라이프]지가 불과 이틀 만에 5백만 부 이상이 팔려나갔고, 일주일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그 인기를 입증한다.

[노인과 바다]의 성공으로 출간 이듬해인 1953년에 퓰리처상,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건강 악화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61년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헤밍웨이의 다른 작품들
 

  • 무기여 잘 있어라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 킬리만자로의 눈
  • 발행일2013.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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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남진우

    1960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했다. 내외경제신문사 문화부 기자이며 <문학동네> 편집위원이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이,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연금술사의 꿈-정현종의 시세계]가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사랑의 어두운 저편], 평론집 [나사로의 시학] [폐허에서 꿈꾸다], 산문집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작업은 시라고 하였다]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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