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빚에 쪼들리는 그가 왜 아버지 유산상속 포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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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11)
공무원으로 퇴직한 A는 2017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유족으로는 처 B와 자녀 C와 D 2명이 있고, 상속재산으로는 시가 7억 원의 아파트가 있다. 그런데 A의 장남 C는 젊은 시절부터 변변한 직업 없이 가족들의 속만 썩이면서 지내와 자기 명의로 된 재산이 전혀 없다. 게다가 2015년 A로부터 받은 돈으로 사업을 하려다가 망하고 결국 사채업자인 갑에게 4억 원가량의 빚까지 지게 되었다. C는 어차피 상속을 받더라도 그 재산을 모두 사채업자인 갑에게 줄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상속을 받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① C는 법원에 상속 포기 신고를 하고, 나머지 상속인인 B·D만 상속에 관해 협의하되 아파트 전체를 처인 B 소유로 하는 방안

② C를 포함한 A의 상속인들이 다 같이 모여 상속 자체는 모두 승인하되, 자녀들은 상속분을 갖지 않고 아파트 전부를 처인 B 소유로 하는 상속재산분할 협의를 하는 방안

③ A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짐을 정리하다가 A의 책상에서 아파트를 상속인들이 법정상속분(처 B 7분의 3, 자녀 C·D 각 7분의 2) 대로 나누어 가지라는 A의 유언장을 발견했다. C와 D가 유언으로 받을 부분(유증)을 포기함으로써 어머니 B에게 아파트를 몰아주는 방안

법률적으로 상속재산은 피상속인이 사망함과 동시에 상속인들 모두에게 포괄적으로 이전된다. 이러한 잠정적이고 과도적인 상태는 상속인들이 그 상속재산을 분할해서 나누는 것으로 종료된다. [사진 pixabay]

C의 채권자인 갑 C가 상속 포기(①), 상속재산분할합의(②), 유언에 의한 증여의 포기(③)를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아파트 지분(7분의 2)에서 자신의 채권을 변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C가 채권자인 자신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상속을 거부했으니 C의 그러한 행위는 취소돼야 하고, 그에 따라 B는 C의 상속분만큼의 아파트 지분을 C 명의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C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재산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피해가 되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숨기거나 제3자에게 줘버리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재산을 감소시키는 것을 ‘사해행위(詐害行爲)’라고 한다. 이러한 채무자의 재산 감소행위를 채권자가 취소하고 그 재산을 채무자의 재산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권리를 ‘채권자취소권’이라고 한다. 채권자는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해 재산을 다시 채무자의 명의로 돌려놓은 후 그 채무자의 재산에 경매와 같은 강제집행을 신청해 배당을 받는 방법으로 자신의 돈을 돌려받게 된다.

빚이 재산보다 훨씬 많은 채무자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증여하거나 매매해 버리는 것이 사해행위에 해당하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상속으로 받을 수 있었던 재산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C의 행위는 어떨까?

상속 포기는 사해행위 아냐
상속의 포기는 사망자(피상속인)의 재산을 일체 상속받지 않음으로써 상속인의 지위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고, 상속인이 상속이 개시(피상속인의 사망)되었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그런데 상속의 포기가 비록 포기한 사람의 재산 상황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상속을 포기한 사람은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취급된다. 또 상속 포기는 재산적인 고려 외에도 피상속인 또는 후순위 상속인 등 다른 가족이나 친척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고려한 결단이며, 상속인의 채권자 입장에서는 상속의 포기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속인의 재산이 현재 상태보다 더 악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해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증 포기도 합법
유증은 유언의 방법으로 하는 증여인데, 유언의 효력이 발생할 때(유언자가 사망할 때)에 유증도 효력이 생긴다. 그런데 유증을 받을 자는 유언자의 사망 후에 언제든지 유증을 받아들이거나 이를 포기한다고 할 수 있다. 그 효력은 유언자가 사망한 때로 되돌아가 그때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빚이 재산보다 많은 상태에 있는 채무자라도 자유롭게 유증을 받을 것을 포기할 수 있다. 채무자의 유증의 포기가 직접 채무자의 현재 재산을 감소시켜 채무자의 재산을 유증 이전의 상태보다 악화시킨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C의 상속 포기(①) 유증의 포기(③)는 사해행위로 취소되지 않기 때문에, B는 C의 법정 상속분(7분의 2)에 해당하는 아파트 지분을 C 명의로 돌려놓을 필요가 없다.

상속재산분할협의는 반드시 법에서 정한 상속분(법정상속분)에 따라 분할할 필요는 없고, 그 내용이나 분할 비율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속인 중 한 사람이 모두 상속을 받는 것도 가능하고, 상속인들 중 일부만 상속을 받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사진 pxhere]

상속재산분할협의는 사해행위
법률적으로 보면 상속재산은 피상속인이 사망함과 동시에 상속인 모두에게 포괄적으로 이전된다. 이러한 잠정적이고 과도적인 상태는 상속인들이 그 상속재산을 분할해 나누는 것으로 종료된다. 상속재산을 분할하는 방법으로는 피상속인의 유언이 있으면 그에 의하고, 유언이 없는 경우 상속인들 사이의 협의로 하며, 그러한 협의가 없거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상속인의 청구로 가정법원이 하게 된다.

그중 상속인들 사이의 상속재산분할협의는 반드시 법에서 정한 상속분에 따라 분할할 필요는 없고, 그 내용이나 분할 비율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상속인 중 한 사람이 모두 상속을 받는 것도 가능하고, 상속인 중 일부만 상속을 받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속재산분할협의는 상속인들이 상속 개시로 인해 일단 잠정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에 관한 처분이기 때문에, 빚이 많은 상속인이 자신의 상속분을 0으로 하거나 원래 받을 수 있는 상속분보다 적게 상속받는 것은 사해행위가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C가 자신의 상속분을 0으로 하고 아파트 전체를 B 소유로 하는 상속재산분할 협의는 채권자인 갑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어서 취소되고, 원래 C가 상속받을 수 있었던 부분 만큼의 아파트 지분은 C 명의로 회복되어야 한다. 한편 이러한 채권자취소권이 인정되려면, 그 행위로 재산을 취득하는 사람(‘수익자’, 여기서는 B)이 채권자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B로서는 C가 빚이 많은지, C에게 채무를 갚을 다른 재산이 없는지, 상속재산분할때문에 C의 채권자에게 피해가 갈 것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익자인 B가 증명해야 한다. 어머니와 아들인 B와 C의 관계 등에 비추어 보면 일반 사건보다 더 객관적이고 납득할 만한 증거가 필요하다. 사례에서는 B가 사해행위 사실을 몰랐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C의 법정상속분만큼의 아파트 지분이 C 명의로 회복된 후 갑의 강제집행 대상이 되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결론이 달라지는 것이 불합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목적과 경제적인 효과가 동일하다고 해도 구체적인 사실관계나 법률적인 평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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