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나와 만남과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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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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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생사 만남과 헤어짐 -김인후 -백거이

버드나무 물가에 선 손님 -김인후
柳汀迎客(유정영객)

나그네가 찾아와서 사립문을 두드리니 有客來敲竹(유객래고죽)
몇 번 소리에 한 낮의 졸음을 깨었네 數聲驚晝眠(수성경주면)
한사코 벼슬 사양하고는 찾아올 이도 없더니 扶冠謝不及(부관사불급)
말을 매어놓고 버드나무 물가에 섰네 繫馬立汀邊(계마입정변)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움이란 만남을 그려서 우는 마음 아니겠는가? 만남이란 나 아닌 남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을 만나서 나를 먼저 내세우자니 사람살이가 힘들고 고달프다. 남을 먼저 맞이하면 슬프지 않고 헤어질 일도 없을 것을.

김인후(金麟厚 1510~1560)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장가. 본관은 울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河西), 담재(湛齋). 18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 등과 함께 수학하였고, 홍문관 부수찬 겸 경연 검토관,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을 맡아 세자(인종)를 가르쳤다. 35세 이후 부모의 간병을 이유로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에 내려가 수차 요청에도 전혀 나아가지 않았으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제자로는 조희문, 정철, 기효간 등이 있다. 서예와 조경에도 일가견이 있어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에 수시로 출입하며 시를 지어 '소쇄원48영' '면앙정30영' 등의 오언절구를 남겼으며, '청산도 절로 절로'하는 인생관이 '자연가'에 잘 나타나 있다. 시호를 문정(文正)으로 성균관 문묘에 배향되어 18현에 추존되었다. 저서로 '하서집', '백련초해' 등이 있다.

그런데 사람은 꼭 나를 먼저 내세우다가 힘을 잃으면 헤어짐을 강요당하고 물러나 서글퍼한다. 옛날의 유배나 좌천이 그러했다. 은퇴라는 것도 그러하다. 한 때는 세상사람들이 부러워하던 나였었는데.



비파에 시름 싣고 (琵琶行) -백거이(白居易)

潯陽江頭夜送客(심양강두야송객) : 타향에서 모처럼 맞은 사람을 밤에 떠나보내려니 
楓葉荻花秋瑟瑟(풍엽,물억새-적화추금금) : 주인은 강가 단풍잎 물억새꽃 가을은 쓸쓸하여라  

主人下馬客在船(주인하마객재선) : 말에서 내리고 손님은 배에 오르는데  
擧酒欲飮無管絃(거주욕음무관현) : 이별의 잔을 들어 마시려니 음악도 없구나 
醉不成歡慘將別(취불성환,참혹할-참장별) :  술로 달래도 기쁘지 않아 서글픈 이별은 다가오는데 
別時茫茫江浸月(별시망맟강침월) : 이별의 시간 아득한 강에는 달빛만 잠기어 있네 
忽聞水上琵琶聲(홀뭍수상비파성) : 문득 밤 강물 위로 굽이쳐 비파 소리 들려오니 
主人忘歸客不發(주인망귀객불발) : 주인은 돌아갈 것을 잊고 손님은 떠나지를 못하네 

궁벽한 시골로 좌천되어 머문지 2년, 도성에서 찾는 이의 발길도 뚝 그쳤는데, 참 오랜만에 지기가 잊지 않고 찾아주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가슴에 담은 말은 꺼내보지도 못했는데 언제를 다시 기약할 수 있을까.

갈 사람, 보내야할 사람, 배에 올라 이별의 술 한 잔을 나누는데, 허전함을 달래 줄 한 곡조가 아쉽다. 그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파소리.

백거이(白居易·772~846)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중국 당나라 중기(中唐時代·766~826)를 대표하는 시인. 그는 29세 때 최연소로 진사에 급제하여 관계에 입문했는데 43세(815년)에 정치 사건에 휘말려 심양강이 있는 구강군(九江郡) 사마(司馬)로 좌천되었다. 사마(司馬)라는 직책은 외딴 곳에 파견되어 어쩌다 출장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접대하는데 말이나 관리하라는 할 일 없는 관직이다. '비파의 노래'는 그 때 옛 장안기생을 만나 퇴락한 여인의 회한을 담아 지은 칠언절구다.

오언절구나 칠언절구는 한자 수를 5자나 7자로 한정하여 2, 4연 마지막 한자의 끝소리를 맞추는 운문시라서, 글자의 선택과 글자수의 늘림과 생략이 따르기 때문에 글자수가 적을수록 표현이 어렵다.

백거이 시의 특징은 대중성에 있다. 시인으로서의 칭송과 비난도 다 여기에서 비롯한다. 이백이나 두보 같은 강한 개성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의식적으로 대중에의 길을 택했다. 백거이가 태어난 것은 시선이라는 이백이 죽은지 10년, 시성이라는 두보가 죽은지 2년이 되는 해였다. 막 시역사의 정점을 찍은 후다. 이백의 호방한 정열과 두보의 시대적 아픔을 쏟아낸 시적 감성들이 후배 시인들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만일 백거이나 한유가 이 위대한 선배들이 간 길을 따라서 시를 지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기괴하고 장대한 미를 찾아나선 한유는 난삽한 상징의 숲속으로 빨려들어 갔다고, 백거이는 대중의 호흡과 언어에 접근하려고 하였다.


尋聲暗問彈者誰(심성암문탄자수) : 비파소리 찾아가서 정중히 물었으나
琵琶聲停欲語遲(비파성정욕어지) : 비파 소린 멎었는데 대답이 더디기만 하다
移船相近邀相見(이선상근,맞을-요상견) : 배를 옮겨 타고 다가가 서로 마주보며
添酒回燈重開宴(첨주회등중개연) : 술을 더하려고 불을 밝혀 다시 자리를 마련하고
千呼萬喚始出來(천호만환시출래) : 몇 번을 부르고 청하자 비로소 나온다.
猶抱琵琶半遮面(유포비파반차면) : 머뭇거리며 비파를 안고 반쯤 얼굴을 가렸는데
轉軸撥絃三兩聲(전축발현삼량성) : 줄을 고르고 두 세 번 튕기는 소리에
未成曲調先有情(미성곡조선유정) : 곡조도 타지 않았는데 벌써 정감이 이는구나. 


絃絃掩抑聲聲思(현현,숨길/덮어가릴-엄,누를-억성성사) : 타는 여섯줄 현마다 소리소리 마음이 서려
似訴平生不得志(사소평생부득지) : 평생 이루지 못한 한을 하소연하는 듯
低眉信手續續彈(저미신수속속탄) : 머리 숙이고 손에 맡겨 연이어 튕겨가니
說盡心中無限事(설진심중무한사) : 마음에 서린 끝 없는 사연을 풀어내는구나 

輕攏慢撚撥復挑(경,쓰다듬을/누를-롱,게으를/오만할-만,비빌-연,현을탈-발,부,돋울/뜯을/드러낼-도) : 가볍게 누르고 살짝 비틀었다 다시 퉁기니
初爲霓裳後六絃(초위,무지개-예,치마-상후육현) : 먼저 곡은 슬픈노래요 나중 곡은 밝은 노래로고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의 준말.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꿈에 본 달 속의 선녀들의 모습을 상상하여 만들었다는 춤인데, 이 때 입었던 춤옷은 희고 긴 비단으로 만들어졌으며, 양귀비(楊貴妃)가 잘 추었다고 함. 또한 이 춤에 쓰이는 악곡인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준말로도 쓰임
大絃嘈嘈如急雨(대현조조여급우) : 큰 줄을 튕기니 소나기처럼 요란하고
小絃切切如私語(소현절절여사어) : 작은 줄은 잔잔하니 속삭이듯 애절하다 


嘈嘈切切錯雜彈(조조절절착잡탄) : 급하고 혹은 간절하게 타는 가락은
大珠小珠落玉盤(대주소주락옥반) :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지는 소리
閑關鶯語花底滑(한관앵어화저활) : 다정한 꾀꼬리 노래는 꽃속에서 노닐고
幽咽泉流水下灘(유열천류수하탄) : 흐느끼듯 샘물이 흘러 여울이 진다. 

水星冷澁絃凝絶(수성냉삽현응절) : 물방울이 차갑게 엉기듯 비파 줄 엉키 듯
凝絶不通聲暫歇(응절불통성잠헐) : 엉기고 흐르지 않자 소리도 잠시 들리질 않네
別有幽愁暗恨生(별유유수암한생) : 따로이 깊은 슬픔이 일어 남모를 한이 흐른다.
此時無聲勝有聲(차시무성승유성) : 이 때는 소리 없는 것이 소리 있는 것보다 좋구나

銀甁乍破水漿迸(은병사파수장병) : 어느새 은병이 깨어지며 물 쏟아지고
鐵騎突出刀鎗鳴(철기돌출도쟁명) : 철기병이 튀어나와 칼과 창 부딪는 소리가 나 듯
曲終抽撥當心畫(곡종추발당심화) : 곡이 끝나자 비파를 가슴에 안고 발을 빼어 주욱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사현일성여열백) : 네 줄에서 울리는 소리가 마치 비단을 찢는 듯하구나 

東船西舫悄無言(동선서방초무언) : 동쪽 서쪽 배에서는 사람들 서글퍼져 할 말 모두 잊고
唯見江心秋月白(유견강심추월백) : 강물에 뜬 가을달만 처량히 바라보네.
沈吟收撥揷絃中(침음수발삽현중) : 격정의 곡을 끝내며 줄사이에 발을 끼우고
整頓衣裳起容(정돈의상기렴용歛) : 옷을 여미고 일어나 얼굴을 가다듬었는데.

自言本是京城女(자언본시경성녀) :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본래 장안 여자인데
家在蝦蟇陵下住(가재하마릉하주) : 집은 하마릉 아래에 있어 거기서서 살았지요
十三學得琵琶成(십삼학득비파성) : 열 세 살에 비파를 배워 익혔고
名屬敎坊第一部(명속교방제일부) : 이름이 교방 제1부에 속해 있었는데
曲罷常敎善才服(곡파상교선재복) : 곡이 끝나면 항상 선생들도 모두 감탄시켰고
粧成每被秋娘妬(장성매피추낭투) : 몸단장을 끝내면 늘 주위의 질투도 받았습니다 

五陵年少爭纏頭(오릉년소쟁전두) : 오릉의 소년들이 앞다투어 선물을 갔다주었고
一曲紅綃不知數(일곡홍초부지수) : 한 곡이 끝나면 받은 비단 헤아릴 수 없었지요. 


鈿頭銀蓖擊節粹(전두은비격절수) : 머리에 꽂은 은비녀로 장단 맞추고
血色羅裙飜酒汚(혈색나군번주오) : 붉은 색 비단 치마도 술에 얼룩졌답니다. 

今年歡笑復明年(금년환소부명년) : 금년도 기뻐 웃으며 내년에도 이럴거라 믿었지요
秋月春風等閒度(추월춘풍등한도) : 가을 달과 봄바람에 무심하게 지냈습니다.
弟走從軍阿姨死(제주종군아이사) : 동생은 군대에 가고 양어미마저 죽고
暮去朝來顔色故(모거조래안색고) : 저녁 가고 아침 오니 얼굴빛도 늙어가더이다. 

門前冷落鞍馬稀(문전냉락안마희) : 문 앞은 쓸쓸해지고 찾는 이도 뜸해
老大嫁作商人婦(노대가작상인부) : 늙어가자 결국 장사꾼의 아내로 넘겨졌지요. 


商人重利輕別離(상인중리경별리) : 잇속에만 밝고 이별은 가볍게 여기는 자였는데
前月浮梁買茶去(전월부량매다거) : 지난 달에 부량으로 차를 사러 떠났습니다. 

去來江口守空船(거래강구수공선) : 강 어구를 오가며 빈 배를 지키고 있노라면
遶船明月江水寒(요선명월강수한) : 뱃전에 달은 밝고 강물은 차갑기만 합니다.
夜深忽夢少年事(야심홀몽소년사) : 깊은 밤에 문득 젊은 시절 떠올라서
夢啼粧淚紅闌干(몽제장루홍난간) : 꿈속에서 울고 나면 화장얼굴 눈물자국 났지요
我聞琵琶已歎息(아문비파이탄식) : 내 그대 비파 소릴 듣고 이미 탄식하였는데
又聞此語重喞喞(우문차어중즉즉) : 또 이 말 들으니 더욱 슬퍼지는구려 


同是天涯淪落人(동시천애륜락인) : 그대와 나는 똑같이 하늘에서 떨어진 외로운 몸
相逢何必曾相識(상봉하필증상식) : 이렇게 서로 만남이 어찌 아는 사이만의 일이랴 

我從去年辭帝京(아종거년사제경) : 나도 지난 해에 장안을 떠나와서
謫居臥病瀋陽城(적거와병심양성) : 귀양 와 심양에 몸져 누운 몸이라
瀋陽地僻無音樂(심양지벽무음악) : 심양은 궁벽해서 음악도 없어
終歲不聞絲竹聲(종세불문사죽성) : 해가 다 가도록 악기소리 한 번 듣지 못했소. 

住近湓江地低濕(주근분강지저습) : 사는 곳이 분강이라 땅이 낮고 습하여
黃蘆苦竹遶宅生(황로고죽요택생) : 갈대와 대나무만 집 둘레에 우거져 있소이다. 


其間旦暮聞何物(기간단모문하물) : 이 속에서 아침 저녁으로 무엇을 듣겠는가.
杜鵑啼血猿哀鳴(두견제혈원애명) : 두견새 울음 피를 토하고 원숭이 애절하게 울어댈 뿐 

春江花朝秋月夜(춘강화조추월야) : 봄날 강가 꽃피는 아침 가을 달밤에도
往往取酒還獨傾(왕왕취주환독경) : 때때로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지낸다오
豈無山歌與村笛(기무산가여촌적) : 어찌 나뭇꾼 노래와 시골아이의 피리소리 없겠는가마는
嘔啞啁哳難爲聽(구아주찰난위청) : 가락이 어설프고 조잡하여 들어줄 수가 없었소이다. 

今夜聞君琵琶語(금야문군비파어) : 오늘 밤 그대의 비파소리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여청선악이잠명) : 신선의 가락을 듣는 듯 잠시 내 귀가 밝아졌소. 


莫辭更坐彈一曲(막사갱좌탄일곡) :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조 더 타준다면
爲君飜作琵琶行(위군번작비파행) : 그댈 위해 비파에 대하여 시를 짓겠소이다.
感我此語良久立(감아차어양구립) : 내 말에 감복되어 한참을 서 있더니
卻坐促絃絃轉急(각좌촉현현전급) : 도로 앉아 줄 잡고 급히 비파를 타는데
凄凄不似向前聲(처처불사향전성) : 처절함이 좀 전 소리와도 달라
滿座聞之皆掩泣(만좌문지개엄읍) :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다 눈을 감고 흐느낀다. 

就中泣下誰最多(취중읍하수최다) : 그 중에 가장 많이 울고 눈물 흘린 자는
江州司馬靑衫濕(강주사마청삼습) : 청삼을 흠뻑 적신 강주 사마였네. 

▲ 비파행도 작자 미상, 27×30.7㎝, 모시에 색, 선문대박물관

‘비파행도’는 백거이의 ‘비파행’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그림은 경물이 한쪽으로 쏠리게 그린 편파 구도로 이야기의 내용이 왼쪽에 치우쳐 있다. 대신 오른쪽에는 넓은 수면이 펼쳐져 있고 하늘 위에는 흐릿한 달이 떠 있다.
강안(江岸)에는 숱한 이별을 지켜보았을 네 그루의 버드나무가 안개 속에 잠겨 있고 나무 아래에는 두 척의 배가 정박해 있다. 두 척의 배 중 작은 배에는 사공을 제외하고 텅 비어 있다. 백거이와 친구가 비파 소리를 듣기 위해 기녀가 있는 큰 배로 옮겨 탄 것이다.
두 사람은 의자에 단정히 앉아 기녀가 타는 비파 소리를 들으며 회상에 잠겨 있다. 사공은 깊이 잠들어 있다. 말을 몰고 온 마부도 졸고 있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주인은 돌아갈 것을 잊고 손님은 떠알 줄을 몰랐다(主人忘歸客不發)'

비파의 노래 속에 기녀가 없다

지금 배 안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관복차림으로 엄숙하게 앉아 있다. 비파를 타는 여인의 모습도 한 때 장안에서 이름을 날린 최고의 기생이었던 것 같지가 않다.
그나마 이 작품은 나은 편이다. 이 작품과 비슷하게 그린 ‘비파의 노래’가 삼성리움미술관의 ‘만고기관첩(萬古奇觀帖)’에도 실려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아예 기녀의 모습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림 제목 또한 ‘비파행’ 대신 ‘심양송객(潯陽送客)’으로 되어 있다.

▲ 장득만 ‘심양송객, 만고기관첩’, 종이에 연한색, 38×30㎝ 삼성리움,

이것은 그림을 그린 장득만(張得萬·1684~1764)의 개인적 생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만고기관첩’이 지닌 목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기생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고기관첩’은 왕세자의 문인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그려졌다.
왕세자라해서 ‘화(畵)’만 보고 ‘서(書)’는 안 볼 것인가? 좀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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