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연금저축신탁에 묻어두고 있는 분들은 노후 대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봐야죠.”
한 금융회사 임원은 은행의 연금저축신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연금저축 상품을 취급하는 국내 은행·보험사·자산운용사 88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은행 연금저축신탁의 평균 수익률은 -0.01%이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 연금저축펀드의 수익률(평균 13.45%)은 쳐다보지도 못할 수준이고, 보험사의 연금저축보험(손해보험사 1.63%, 생명보험사 1.83%)에도 뒤처진다. 은행들이 연금저축 상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간 납입액 400만원까지 최대 16.5%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연금저축은 작년 말 기준 160조원 규모로 불어났지만, 수익률이 낮아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은행들이 굴리는 연금저축신탁이 문제다. 예전부터 낮은 수익률이 도마에 오르면서 2018년부터 신규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그래도 아직 17조원 정도가 남아있다. 상당수 가입자가 아직 다른 연금 상품으로 옮기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있지만, 금융업계에서는 “은행들이 방치하다시피 하는데 수익률이 높아질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연금저축신탁 수익률은 2019년 2.34%에서 2020년 1.72%로 낮아지더니, 지난해엔 -0.01%로 떨어졌다. 평균 수수료율(0.73%)을 감안한 결과다. 이런 수익률은 저축은행 1년 만기 금리(21년 말 기준 평균 2.37%)나 물가 상승률(21년 2.5%)보다도 낮은 것으로, 원금 보장형이라고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노후 자금이 쪼그라든 것이나 다름없다.
각 은행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 특성상 채권에 주로 투자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설명한다. 은행마다 세부 비율은 달라도 대부분 연금저축신탁 상품이 국공채나 투자 등급 이상 우량 채권 등에 80~90%가량 집중 투자하고 있는데, 금리 상승기라 채권 운용에 불리한 상황이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올 들어선 이 상품들의 수익률이 작년보다 떨어지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NH농협은행 ‘연금저축신탁 채권형1호’ -2.94%, 신한은행 ‘연금(저축)신탁 채권형1호’ -1.79%, KB국민은행 ‘KB실버웰빙연금신탁’은 -0.84% 등 작년보다 수익률이 악화됐다.
그렇다고 원리금 보장형 상품 수익률이 전부 이런 지경인 것은 아니다. 은행권이 치열한 영입 경쟁을 벌이고 있는 퇴직연금의 경우, 지난해 수익률이 평균 1.06%로 연금저축보다는 나았다.
국내외 주식에 적극 투자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경우, 지난해 연금저축 수익률이 43.7%를 기록해 금융사 중 가장 높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장 규율에 의해 수익률이 제고될 수 있도록 2020년부터 수익률과 수수료율 비교 공시를 시작했지만, 상품 구조적으로 개선이 쉽지 않은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면서 “기존 신탁 상품 가입자들이 다른 연금저축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안내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저축신탁 가입자들은 중도 해지보다는 계좌 이체 제도를 통해 다른 연금저축 상품으로 갈아타는 게 유리하다. 세액공제를 받았다면 중도 해지할 때 기타소득세(16.5%)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계좌 이전 신청은 기존 금융회사 방문 없이 이전받는 금융회사에만 1회 신청하면 된다. 금융사 홈페이지나 모바일 앱에서도 이전 신청이 가능하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장은 “950조원에 달하는 국민 노후 자금을 맡고 있는 국민연금도 작년 10%대 수익률을 거뒀다”면서 “연금 가입자들이 저조한 수익률을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