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시절 담은 98점…호로비츠 사진 눈길
“나? 피아니스트지. 당신은 뭐 해?”
“사진 찍어요. 먹고살 만하신가요?”
“그걸 왜 물어?”
“볼 때마다 똑같은 회색 양복만 입고 계시니까요.”
“아, 내가 똑같은 옷 세 벌을 갖고 있어서 그래.”
필름 없는 사진, 누드 자화상 등의 전위작업으로 유명한 최광호(65) 사진가는 32년 전 미국 뉴욕에서 ‘피아노의 신’으로 불렸던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와 나눴던 대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1988년 8월 뉴욕대(NYU) 대학원에 입학한 최씨는 당시 날마다 뉴욕 거리를 설렘 속에 누비며 사진을 찍고 국제사진센터(ICP) 전시장을 들락거렸다. 오후 2~3시께 센터를 나올 때면 그 옆 업타운 거리 벤치에 앉아 행인을 지켜보던 말년의 거장과 눈이 마주치곤 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본 그는 존경받는 동네 할아버지로 생각했다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작가가 서툰 영어로 인사를 하며 낯을 익혔고, 몇번 만나 대화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레 사진도 찍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찍으려 하면 손사래를 쳤던 호로비츠도 작가가 촬영하는 것은 너그럽게 허락했다고 한다. “동양에서 온 낯선 유학생이 자기 명성도 모르고 어눌한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게 싫지 않았던 듯싶다”고 최씨는 회고했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