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신‘ 호로비츠 동네 어르신인줄 알고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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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8.10. 오후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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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호의 사진공부 뉴욕 1988~1994’전
유학시절 담은 98점…호로비츠 사진 눈길
피아노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타계 1년 전인 1988년 가을 미국 뉴욕 업타운 거리의 벤치에 앉아 쉬는 모습. 주민들이 데려온 반려견을 손짓하면서 웃고있다. 당시 뉴욕대에서 유학하던 최광호 작가가 포착한 사진이다. 작가는 “부근 국제사진센터의 전시를 보러 드나들다가 우연히 벤치에서 마주쳐 호로비츠와 말동무가 됐다”며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호로비츠가 타계 1년 전인 1988년 가을 미국 뉴욕 업타운 거리의 벤치에 앉아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온 주민들의 인사를 받고있다. 뉴욕대에서 유학하면서 그와 말동무가 되었던 최광호 작가가 당시 포착한 사진중 일부다.
“할아버지,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나? 피아니스트지. 당신은 뭐 해?”

“사진 찍어요. 먹고살 만하신가요?”

“그걸 왜 물어?”

“볼 때마다 똑같은 회색 양복만 입고 계시니까요.”

“아, 내가 똑같은 옷 세 벌을 갖고 있어서 그래.”

필름 없는 사진, 누드 자화상 등의 전위작업으로 유명한 최광호(65) 사진가는 32년 전 미국 뉴욕에서 ‘피아노의 신’으로 불렸던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1989)와 나눴던 대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1988년 8월 뉴욕대(NYU) 대학원에 입학한 최씨는 당시 날마다 뉴욕 거리를 설렘 속에 누비며 사진을 찍고 국제사진센터(ICP) 전시장을 들락거렸다. 오후 2~3시께 센터를 나올 때면 그 옆 업타운 거리 벤치에 앉아 행인을 지켜보던 말년의 거장과 눈이 마주치곤 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본 그는 존경받는 동네 할아버지로 생각했다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작가가 서툰 영어로 인사를 하며 낯을 익혔고, 몇번 만나 대화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레 사진도 찍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찍으려 하면 손사래를 쳤던 호로비츠도 작가가 촬영하는 것은 너그럽게 허락했다고 한다. “동양에서 온 낯선 유학생이 자기 명성도 모르고 어눌한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게 싫지 않았던 듯싶다”고 최씨는 회고했다.

1988년 가을 미국 뉴욕 업타운 거리의 벤치에 앉아 시민과 인사를 나누며 대화하는 피아노 거장 호로비츠. 당시 뉴욕에서 유학중이던 최광호 사진가가 찍었다.
벤치에 앉은 채 자신을 찍는 작가를 응시하는 피아노 거장 호로비츠. 1988년 가을 최광호 작가가 미국 뉴욕에서 포착한 80대 거장의 말년 모습이다.
‘최광호 타입 프린트’로 이름 붙인 독특한 인화기법의 전시 출품작들. 은염된 인화지를 현상액에 오래 담가두면서 표면이 다채롭게 변색하는 효과를 필름 이미지와 결합해 작업의 시간성을 부각했다.
32년 전 작가가 찍은 호로비츠의 휴식 사진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사진 전문공간 류가헌에서 만날 수 있다. 16일까지 열리는 ‘최광호의 사진공부 뉴욕 1988~1994’란 제목의 개인전이다. 호로비츠 사진 4점을 비롯해 유학 시절 찍은 뉴욕의 도시 공간과 현지인의 일상을 담은 사진 98점을 선보인다. 호로비츠는 강력한 타건과 유려한 선율로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등의 난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한 당대의 거장이었다. 하지만 사진 속 선글라스를 낀 그는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작가의 앵글을 응시하거나 반려견을 데려온 시민들과 인사하며 일상을 즐기고 있다. 89년 11월 호로비츠가 타계했다는 방송 뉴스를 본 뒤에야 그가 피아노 거장이었음을 알고 놀랐다는 작가는 필름 원본은 찾지 못하고, 당시 찍은 프린트 일부만 찾아 내놓았다고 밝혔다. 사진집 <미국인들>로 유명한 거장 로버트 프랭크를 그의 조수였던 이정진 작가의 알선으로 찾아가 같이 찍은 사진과 국제사진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또 다른 사진 거장 윌리엄 클라인을 찍은 사진도 보인다.

‘최광호 타입 프린트’로 이름 붙인 독특한 인화기법의 출품작. 은염된 인화지를 현상액에 오래 담가두면 표면이 변색하는 효과를 뉴욕의 다채로운 도시공간을 담은 필름 이미지와 결합시켰다.
‘최광호 타입 프린트’로 이름 붙인 특유의 인화기법을 구사한 출품작중 일부다. 은염된 인화지를 현상액에 오래 담가두면 표면이 변색하는 효과를 뉴욕의 도시공간을 담은 필름 이미지와 결합시켰다.
‘최광호 타입 프린트’로 이름 붙인 특유의 인화기법을 보여주는 작가의 뉴욕시절 연작중 일부. 은염된 인화지를 현상액에 오래 담가두면 표면이 변색하는 시각적 효과를 부각시켰다.
전시작 대부분은 뉴욕 시절 사진 거장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찍은 습작 성격의 사진들로, ‘최광호 타입 프린트’로 이름 붙인 독특한 인화기법을 구사한 것이 많다. 은염된 인화지를 현상액에 오래 담가두면 표면이 변색하는 효과를 필름 이미지와 결합해 작업의 시간성을 부각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최광호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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