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돼도 안죽어요” 마스크 벗고 뒤엉켜 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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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감염 다음날 클럽 6곳 가보니
8일 0시 30분경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인근 한 클럽이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가까이 밀착해 춤을 췄으며 아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거나 착용하더라도 턱에만 걸쳐 입과 코를 그대로 드러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빈칸에 차례대로 쭉 × 표시 하세요.”

7일 밤 12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클럽 앞. 직원은 줄을 선 20명에게 “빨리 표시하라”고 재촉했다. 이들은 클럽이 제시한 방문객 명부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고 고열, 호흡기 증상 여부, 해외 방문이력 여부에 ‘×’ 표시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수칙과 관련한 설명은 따로 없었다. 내부로 들어서자 100명이 넘는 젊은 남녀가 밀착해서 춤을 추고 있었다. 1, 2m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생활 속 거리 두기 방역 수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 클럽은 경기 용인시에 살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 A 씨가 다녀간 이태원 클럽과 도보로 3분가량 떨어져 있다. 클럽을 찾은 이들은 인근 클럽에 확진자가 다녀간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스크를 끼지 않은 한 20대 여성은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서 어떻게 즐기느냐. 걸려도 안 죽으니 걱정 말라”며 웃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7일 오후 10시부터 8일 오전 2시까지 서울 이태원과 강남, 홍익대 주변 유명 클럽 6곳을 둘러봤다. A 씨가 이태원 클럽과 주점 등 5곳을 다녀간 사실이 공개된 당일이지만 클럽 내부는 붐볐다. 6곳 모두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체온 확인, 방문객 명단 작성 등 유흥업소 감염병 예방수칙에서 빈틈을 드러냈다.

불특정 다수가 감염 위험이 높은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공간에 밀집해 있었다. 당일 DJ선곡을 따라 여러 클럽을 옮겨 다니는 이른바 클러버(cluber·클럽 애호가)들의 특성상 무증상 감염자가 다녀갔다면 집단 감염 우려가 크고 접촉자 추적도 어렵다.

클럽 입장에서부터 위험에 노출됐다. 강남의 한 클럽에선 접촉식 체온계를 사용해 체온을 측정하고 지문인식 장치로 신분을 확인했다. 수백 명의 목덜미에 체온계를 직접 대고 온도를 측정했지만 소독하지 않았다. 신분 확인을 위해선 턱 밑까지 마스크를 내려 얼굴을 보였다. 직원과의 거리는 30cm도 떨어지지 않았다. 방문객이 직접 작성하는 명단의 관리도 허술했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지만 확인하는 과정이 없어 허위로 작성해도 그대로 입장할 수 있었다. 최근 해외에 다녀왔는지, 호흡기 질환이 없는지 손님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클럽은 단 한 곳도 없었다. ‘×’ 표시를 하라는 안내만 했다.

방문객들은 클럽 입장과 동시에 마스크를 벗었다. 턱에 걸쳐 입과 코가 훤히 드러난 채로 춤을 췄다. 홍익대 주변의 한 클럽에서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방문객을 직원이 단속했다. 하지만 클럽 6곳 모두 마스크로 입을 가리지 않고 턱에 걸치고 있어도 그냥 넘어갔다. 일부 클럽에선 마스크 착용을 단속해야 할 직원과 손님들과 가까이 선 무대 DJ마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클럽 내부는 더욱 북적였다. 강남의 한 클럽에선 1m 거리 두기가 불가능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의 어깨가 맞닿았다. 껴안거나 뒤엉켜 춤을 추는 젊은이가 많았다. 대화를 할 때면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귀에 입을 바짝 가져다 대고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클럽 업계에선 “즐기러 온 손님들에게 방역수칙 지키라고 안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8일 오후 8시를 기준으로 전국 클럽, 유흥주점, 감성주점 등 유흥시설에 운영 자제를 권고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권고에 불과해 업주들이 예방수칙을 준수하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영업을 할 수 있다. 실제 서울 시내 대형 클럽들은 “8일 밤 영업을 한다”고 밝혔다. 강남구의 한 클럽 관계자는 “대규모 오픈 행사를 준비 중”이라며 “게스트도 많이 섭외했고 테이블 예약은 벌써 다 찼다”고 했다. 가천대 의대 엄중식 감염내과 교수는 “우려했던 클럽에서의 감염이 현실화됐다”며 “밀폐된 공간에서 신체 접촉이 빈번히 발생하는 클럽에서의 전파가 확인된 이상 강제로 영업을 제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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