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도 모자랄때" 이기적 女탁구,15살 신유빈이 뭘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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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1.22. 오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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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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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리아오픈 여자단식 8강에서 전지희에게 작전지시를 내리고 있는 유남규 여자대표팀 감독.

사진제공=월간탁구 안성호 기자
#.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여자탁구는 '퇴보'했다. 선배들이 굳건히 지켜온 세계 4강권마저 무너졌다. 이에리사, 현정화, 양영자, 김경아 등 역대 대한민국 여자탁구 톱랭커들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단언컨대 2012년 이후 현역 한국 여자선수들 중 세계 무대에서 상대가 두려워할 만한 선수는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기회를 받은 중국 출신 귀화선수들도 답을 주지 못했다. 도쿄올림픽의 해, 2020년 1월 현재 10위권 내에 한자릿수 톱랭커 하나 없다. 지난해 무려 18번의 오픈대회에 출전한 전지희(포스코에너지)가 가장 높은 랭킹 16위다. '이웃' 일본은 10위권 내에 이토 미마(3위), 이시카와 카스미(9위) 등 2명이 포진해 있다.

#. 도쿄올림픽과 부산세계탁구선수권의 해, 새해 벽두부터 여자탁구판 분위기는 흉흉하다. 제자가 스승의 말을 녹취했고, 녹취 파일을 협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1988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남규 감독이 고심끝에 사표를 냈다. 사제간에 절대적인 신뢰가 깨졌다. '무한경쟁'을 강조하며 불거진 선수들과의 갈등이 문제였다고 한다. 톱랭커인 귀화 선수는 올림픽 경기력 향상을 위해 중국 출신 개인코치의 대표팀 코치 선임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중국 선수들이 주로 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욕설 섞인 글은 또다른 대표팀 코치를 '저격'한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한탁구협회는 여자대표팀 선수 및 지도자들에 대한 1대1 면담 후 감독과 선수를 대표팀에 함께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단 유 감독의 사표를 수리했다. 추교성 감독을 후임으로 내정했다. 결국 '레전드' 안재형 전 감독에 이어 유 감독까지 줄줄이 물러나며 여자탁구 분위기는 '막장'으로 치달았다.
사진제공=대한탁구협회
사상 초유의 대표팀 녹취 사건, 잘못은 분명한데, 잘못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계속 서로를 탓하고 비난한다. '자신의 정당성'만을 주장한다.

이유야 어떻든 대표팀에서 잡음이 나온 것, 선수들을 아우르지 못한 것부터 일단 감독의 책임이다. 선수 인권이 화두인 세상이다. 선수와 감독 사이에 불만과 불화는 있을 수 있다. 의도야 어땠든 대화와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제자의 허물은 곧 스승의 허물이다. 소속팀 감독 역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녹취 파일을 제출하기 전에 지도자 동료이자 후배인 유 감독과 선수의 관계를 중재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었다. 탁구는 '매너 스포츠'이고, 피 튀기는 승부 후엔 '호형호제'하며 축하하고 위로하던 탁구인들 사이의 일이라 뜻밖의 상황 전개는 더욱 충격적이다.

대다수 현장 지도자들은 국가대표 선수가 수시로 녹취하고, SNS로 불만을 에둘러 드러낸 행위에 대해 불법 여부를 떠나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공분한다. 한 실업팀 감독은 "정말 잘못됐다. 유남규, 현정화는 한국 탁구 레전드다. 아무리 톱랭커 선수라고 해도 선생님을 존중하고 대화로 풀어야지, 어떻게 이렇게 행동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의 성적도 나오지 않는 마당에 '중국 귀화 에이스'에 휘둘리는 대표팀 운영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이참에 싹 바꾸고 한국 어린 유망주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강경론, 쇄신론도 때맞춰 불거졌다.

부산세계선수권과 도쿄올림픽 세계 예선전을 앞두고 진행된 12~14일 두 차례 선발전(성적순 3명, 2명 추천). 유 감독과 불화를 빚었던 톱 랭커들의 탈락 이변속에 그간 기회에 굶주렸던 이은혜(대한항공), 이시온, 최효주(이상 삼성생명), 신유빈(수원 청명중 졸업) 등이 발탁됐다. 이은혜, 최효주 등 귀화선수 2명이 성적순으로 우선발탁되면서 '톱랭커' 귀화선수는 추천 기회도 사라졌다.

새로 꾸려진 여자대표팀이 도쿄올림픽 단체전 티켓을 따기 위해 포르투갈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 단체예선에서 분투중인데, 한국 탁구계는 여전히 '이전투구', 반목과 갈등으로 연일 시끄럽다. 추교성 감독내정자는 "대표팀은 절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홍순화, 현정화, 홍차옥 등 내로라하는 레전드 선배들도 주장 역할을 하면서 팀원들을 잘 이끌었다. 그 끈끈한 힘이 전통적인 우리나라 여자탁구의 힘이고 정신이었다"며 대표팀 선수들의 투혼을 애써 독려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출전권도 장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시기, 냉정하게 말해 전력을 총동원해 '원팀'으로 똘똘 뭉쳐도 쉽지않은 난제다. '지면 떨어지는' 넉아웃 토너먼트 16강서 '난적' 북한과 맞대결이 예고된 마당, 여자대표팀 선수들이 부담감 속에 외롭고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다. IOC선수위원인 '후배'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공정성''선수, 지도자 인권'을 강조하며 부산세계선수권 성공 개최를 위해 국내외를 오가며 고군분투하는 상황, 오로지 자기 생각뿐인 일부 탁구인들의 행태는 안타깝기 짝이 없다.

스포츠는 결국 팀워크이고 분위기다. 자기 팀만 앞세우고, 자신의 꿈만 앞세우는 이기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대표팀이 좋은 결과를 거뒀다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 어떤 종목에서도 듣지 못했다. 한국 탁구의 미래, '15세 최연소 국가대표' 신유빈이 이런 대표팀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울까.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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