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년 전 동학 민중들 마음이 오늘 촛불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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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5.30. 오후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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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은 동학 취회‘ 124돌 맞아

동학과 촛불집회 공공성 조명

동학 서당·동학길 순례 등 행사 다채



지난해 열린 123동학보은취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동학혁명군위령탑 앞에서 동학 영령의 넋을 기리는 제를 올리고 있다. 삶결두레 아사달 제공


“124년 전과 어쩜 이리 같을까요? 그때 동학 민중들의 마음이 오늘 촛불 민심이지요.”

그랬다. 동학혁명 한 해를 앞둔 1893년 3월 교조 해월 최시형 선생의 신원 운동을 위해 전국의 농민들이 충북 보은 장안으로 몰려들었다. 이른바 ‘보은 취회’다. 보은은 해월 선생이 1885년 5월 은거한 데 이어 1887년 6월 육임소가 설치되면서 동학의 구심체로 떠올랐다. 이어 동학혁명의 출발이 된 취회까지 열리면서 소통과 연대의 중심이 됐다.

당시 보은 취회에 모인 수만의 민중들은 ‘보국안민, 척양척왜’를 외쳤다. 암울하던 시기 백성들은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외세를 몰아낼 것을 몸으로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촛불집회는 또 다른 동학혁명이죠. 촛불민심은 탐관오리를 닮은 국정 농단 세력 등의 ‘적폐청산’을 외쳤고, 외세의 위세를 걱정했으니 너무 같죠.” (124동학보은취회 접주 아시반(박달한))

30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보은군 성족리 동학 농민혁명기념공원 등에서 열리는 124돌 보은 동학 취회는 궤를 같이하는 동학과 촛불집회의 공공성을 조명한다. 2일 문을 여는 동학 서당에선 박맹수 원광대 교수(원불교학과)가 ‘보은 취회와 촛불집회의 공공성’, ‘주체적 시민으로서의 실천’ 등을 강연한다. 전국에서 몰려든 시민들은 동학 혁명군처럼 천막 등을 치고 들살이(야영)를 하면서 강연을 듣고, 때론 토론을 통해 촛불과 동학의 뜻을 새길 참이다. 적폐에 맞섰던 촛불민심의 거대한 행진 물결처럼 권력에 맞서다 스러진 동학군을 추모하는 행진도 한다. 1894년 11월 우금치(공주) 전투에서 패한 동학군은 보은 종곡리 북실에서 최후의 격전을 벌였다. 시민들은 종곡저수지-수철령-매장지 등 7㎞를 순례한다.

동학 접주 낭랑(조정미)은 “그때 민초들이 동학을 통해 희망이라는 대안을 찾았듯이, 지금 시민들이 촛불을 통해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맥상통 과정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123동학보은취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동학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삶결두레 아사달 제공
보은 취회에는 전국의 이야기와 재주가 모인다. ‘건달 할배’ 채현국, ‘동학 언니’ 고은광순씨 등은 시민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극단 꼭두광대는 탈놀이극 <왼손이>로, 보은 다문화 공연팀은 공연으로 시민과 만난다. 누군가는 장승을 깎고, 누군가는 차를 내리고, 누군가는 주막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전국의 장삼이사와 하나가 된다. 형식과 제재는 없지만 ‘단순’과 ‘소박’이 대세란다.

자유로움 속에 뜻있는 만남도 도모한다. 전국에서 모인 동학실천시민행동은 3일 밤 신만민공동회를 열 참이다. 현장에서 토론을 통해 주제를 만들고, 결론이 모이면 공동 선언문도 낼 계획이다. 이들은 다음달 경북 성주 사드 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동학 접주 무산(박무열)은 “동학이 그랬듯, 촛불집회가 그랬듯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다양한 모양의 민심이 한 데 어울리는 자리다. 보은 취회가 새 세상의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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