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강산』의 시 세계가 고독과 적막, 자연친화 및 허정과 달관의 세계로 짜여져 있다면, 「낙화」는 그 모든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가령, 결별 뒤에 오는 슬픔에서 찾을 수 있는 고독과 적막의 세계라든지, 온갖 세속적인 욕심을 떨쳐 버리고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함을 강조하는 달관의 태도가 그것이다.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와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과 같은 시 구절은 그 중 고독과 적막을, 결별 뒤에 오는 슬픔을 나타낸다.

그리고 세속적 계산과 이해를 떠나 존재의 무상한 물결에 그대로 몸을 싣는 초탈의 면모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나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와 같은 구절에서 잘 드러난다. 이 시에는 한자어가 적지 않게 구사되고 있다. 그러나 전혀 낯설거나 관념적인 느낌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격정, 낙화, 결별, 성숙 등은 이 시의 분위기와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마치 이 시를 위해 만들어진 언어와 같은 느낌을 준다. 6연 19행의 자유시이며 4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3행으로 되어 있다. 꽃잎이 지는 모습에 착안하여 이별과 죽음을 생각하고, 또 그들 이별과 죽음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여유를 그린 시다.

자연의 순리처럼 세상사도 순리에 따라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것이 아름다운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에서의 성숙한 삶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을 뜻한다. 곧, 시인에게 성숙함이란 사소한 미련과 애착에서 벗어나 훌쩍 떠날 줄 아는 여유로운 인격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