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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 사건은 선수를 너무 돈벌이용으로 삼은 게 문제”

기사입력 2019.12.27. 오전 12:06 최종수정 2019.12.27. 오후 02:02 기사원문
e스포츠 업계 ‘카르텔’ 관행 등 대대적 개혁 목소리국내 e스포츠는 세계적인 위상과 폭발적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그리핀 사건’ 등에서 드러났듯 제도 미비와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불공정계약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참에 다른 프로 스포츠처럼 대회를 총괄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 일관된 제도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 7월 서울 종로 LCK아레나에서 ‘2019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스플릿 경기가 열리고 있다. 라이엇 게임즈 제공

2부 리그에서 돌풍을 몰고 날아든 그리핀의 날개는 왜 꺾여야 했을까.

일명 ‘그리핀 사건’으로 e스포츠 내부의 만연한 불공정 문제가 폭로되면서 업계는 20년을 훌쩍 넘긴 국내 e스포츠의 역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핀 사건은 ‘카나비’(게임상 닉네임) 서진혁(19)군이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의 강압에 의해 중국 징동게이밍(JDG)으로 장기 이적이 추진됐다는 의혹이 지난 10월 제기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불공정 계약서, 에이전트 농단, 임금체불, 계약 허위 보고 등 문제들이 무더기 적발되며 e스포츠 업계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세계 e스포츠 시장은 날로 팽창하고 있다. 북미, 유럽, 중국 등에서 다양한 e스포츠 대회가 프로 스포츠 못지않은 규모로 열리고 있고, 제 3세계에서 이제 막 시작된 e스포츠는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뉴주’에 따르면 2018년 세계 e스포츠 매출액은 9억6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38.3% 성장했다. 이 업체는 오는 2021년 e스포츠 시장 규모가 16억 5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급성장하는 글로벌 e스포츠 시장에서 한국은 e스포츠의 초석을 놓은 선도국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게임 대회가 첫 걸음을 뗀 지 25년, 프로대회 출범 후로 따져도 15년의 시간이 흘렀다. 무엇보다 한국의 경쟁력은 선수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기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수를 수출하고 있으며, 세계 대회 최다 우승국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 한국은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정상 자리를 내줬지만 우승팀에는 최소 2명 이상의 한국 선수가 활약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연봉은 이미 다른 인기 프로 스포츠에 견주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그리핀 사건’은 e스포츠 팬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외형만 화려하고 내실은 없는 부실한 한국 e스포츠의 현실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또 관행을 이름으로 무대 뒤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얼마나 부당한 일들이 강요됐는지도 드러났다.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이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e스포츠 선수 권익보호와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마련 토론회’에서 발표를 앞두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관행을 이유로 행해진 일들

그리핀 사건을 거치며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는 ‘카르텔’ ‘관행’ 이었다. 제도는 없고 모든 건 좁은 인맥 안에서 주먹구구로 처리됐다. 이런 상황은 업계 관계자들도 대부분 인정했다.

20여년 가까이 게임단을 운영해온 한 관계자는 “e스포츠가 프로화 된 지 15년 가까이 흘렀음에도 제도적 장치가 매우 미비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급속한 성장세와 비교해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는 없었고 게임단의 대처 역시 매우 안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식의 문제가 크다. 업계의 인식부터 잘못됐다. 아직도 스포츠가 아니라 게임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시스템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고 대충 굴리면 돌아갈 거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리핀 사건의 경우에도 선수를 수단화하고 경제적 가치로만 생각을 하다가 그런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팀 입장에서 선수를 육성했기 때문에 보상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선수를 너무 돈벌이용으로 삼은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e스포츠 관계자도 “대회에 참가하는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팀을 띄워 시드권, 선수 장사를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중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자금이 도니 한철장사를 하고 빠지려는 사람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수들의 잠재력은 높은데 리그는 6년 전에서 아직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와의 시장 규모 차이를 말하는 데 잘못된 접근이다. 선진화 타이밍을 놓친 거다. 돈 벌 생각에 빠진 사람들의 인식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리핀 사건은 돈벌이에만 몰두한 방식의 민낯이 드러난 사건이다. e스포츠를 스포츠로 본다면 공정성과 투명성이 전제된 상태로 사업을 생각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 아닌가. e스포츠 관계자들은 똑바로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실 이도경 비서관은 “그리핀 사건은 곪은 상처가 터진 것”이라면서 “관행처럼 이어져왔던 불공정 문제가 이제야 터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스템이 잘 갖춰진 상태에서 이 문제가 터졌다면 특정 팀만의 문제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 시스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의 문제로 볼 수 없다”며 “전수조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열악한 팀 사정도 고려해야

한편으로서는 이번 사건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높다. 영세한 게임단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실제 게임단의 열악한 경제적 사정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게임단 관계자는 “대부분 선수들이 1년 계약을 한다. 그러다보니 매년 스토브리그 때마다 팀들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다”면서 “팀 입장에서 보면 선수를 키우기 위해 인풋이 들어갔는데 거기에 대한 아웃풋이 전혀 보장되지 않다보니 팀 운영이 정말 힘든 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야구나 농구에서는 드래프트 등 선수에 대한 팀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데 e스포츠는 그렇지 못하다. 팀 입장에서 나름대로 피해의식이 크다”고 전했다.

다른 게임단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대부분 팀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도 “조금 아쉬운 것은 모든 팀이 불공정 계약을 하거나 선수들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건 아닌데 모두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팀을 운영하면서 잘못된 행태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지금까지 열심히 한 사람들까지 같이 매도당하는 느낌이 있다”며 “팬들과 선수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정말 애쓰는 사람이 있다는 점도 팬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변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선진화 되지 않은 시스템과 성적 부진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는 근 2년 동안 롤드컵,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등 주요 국제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컵을 들지 못하며 ‘4부 리그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연으로 엮인 방식을 탈피하고 공정성·투명성이 보장되는 체계를 바탕으로 리그가 운영돼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질적으로 리그 운영이 중구난방으로 이뤄지면서 이번 사건이 벌어졌다고 본다”면서 “프로 스포츠의 연맹과 같이 대회를 총괄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거기에서 모든 종목에 대한 제도와 규정을 공정하고 일관성 있게 만들어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측은 “폭발적인 외형 성장에 걸맞게 리그 운영 시스템 등 내실을 다졌어야 했는데 그 부분에 부족했던 측면이 있었음을 반성한다”며 “팬들의 지적을 새겨듣고 있다. 운영위 운영 방식과 존립 여부에 이르기까지 팬들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 전수 조사를 위해 프로팀 유효 계약서를 모두 취합했으며 외부 로펌에 검토를 의뢰했다”며 “외부 로펌의 검토 결과와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해 내년 1월 중 LCK 표준계약서를 만든다는 게 현재 목표”라고 밝혔다.

한국e스포츠협회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쟁조정위 설치, e스포츠 표준계약서 도입, 선수 정례회의 개최, 법률 및 진로지원 확대 등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개선책을 준비 중이다. 이 계획들을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협회의 재정 자립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인지하고 있으며 논의 중이다. 공식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업계에서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의 ‘회전문 인사’ 우려에는 “다시 e스포츠 업계에서 일하는 것을 철저히 막겠다”고 공언했다.

이다니엘 윤민섭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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