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을 축하하며

로마네 콩티

Romanée-Conti

  와인 2 : 명작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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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
타닌 ●●●●○
단맛 ●○○○○
도수 ●●●●○
가격 ●●●●●

점과 선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이우환의 세 자매가 그의 결혼 기념 선물로 바친 로마네 콩티 1990년산 한 병. 자녀들은 부모님의 진주혼식을 위해 가진 돈을 몽땅 털었다. 와인 심미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와인을 받아 들고는 그 정성에 너무 감복한 나머지 병을 결코 딸 수 없었다고 그의 저서 『시간의 여울』에서 고백한 바 있다.

로마네 포도밭과 콩티 왕자

세상에서 가장 갖기를 열망하는 와인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를 꼽는다. 그 맛의 특징은 벨벳, 고혹, 미스터리로 요약된다. 비단 같은 질감은 벨벳에 해당되고 장미꽃 이파리 같은 신선한 식물성 내음은 너무나도 고혹적이다. 향과 맛이 도대체 몇 가지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바로 옆에 있는 다른 포도밭과는 사뭇 다른 특유의 우아함과 세련됨이 대체 어디서 비롯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로마네 콩티는 지명을 와인 이름으로 삼는 부르고뉴의 평범한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마을 최고의 와인에만 적용되는 원칙을 따르면 된다. 바로 포도밭 이름으로 라벨을 표시하는 것이다.

로마네 콩티란 이름은 원래 ‘로마네’라는 포도밭에서 비롯되었고, 그 남쪽의 상당 부분을 콩티란 사람이 사들여 그 구역 이름을 로마네 콩티로 바꾼 데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로마네 콩티가 분가해 나가기 전까지는 명칭이 ‘라 로마네’라는 와인으로 양조되었다.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까지만 해도 라 로마네로 불렀다. 하지만 콩티의 지분이 분할된 후에는 라 로마네가 라 로마네와 로마네 콩티로 나뉘었다.

그럼 콩티는 대체 누굴까? 어떤 인물이길래 자신의 이름을 포도밭에 붙일 수 있었단 말인가. 콩티는 정확히 콩티 왕자(Prince de Conti, 1717~1776)로 바로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장조카다. 콩티 왕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열 살의 나이에 왕자 칭호를 얻어 이후 49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 콩티는 출신지 콩티 쉬르 셀르(Conti-Sur-Selles)의 콩티를 따서 붙인 왕자의 칭호다. 풀어 쓰면 콩티 마을 출신의 왕자라는 뜻이다.

루이 15세의 애첩으로 베르사이유를 휘저었던 마담 퐁파두르는 콩티 왕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절대 권력을 탐한 그녀에게 왕의 장조카는 항상 걸림돌이었을지 모른다. 왕자는 이 포도밭을 구매할 때 퐁파두르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그녀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콩티 왕자는 그녀의 모함으로 베르사이유를 떠나게 되지만 길이 남을 최고의 와인엔 그의 이름이 붙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포도밭 문서는 1760년에 비싼 값(92,400리브르, 당시 주변 포도밭의 11배에 해당하는 액수)을 치른 후 왕자의 소유가 되었다. 포도밭 구매의 정황은 미국 음식 평론가 리차드 올네의 저서 『로마네 콩티』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1584년에 심은 피노 누와는 콩티 왕자가 밭을 차지했을 때도 그대로 유지되어 1945 빈티지까지 같은 혈통의 포도나무로 양조되었다. 16세기의 포도가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져 왔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 뿌리와 줄기 모두 프랑스산으로 360년 동안 순수 프랑스 토종 피노 누와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왕자의 식탁에 오른 로마네 콩티는 오늘날과는 좀 달랐다. 그 당시에는 피노 누와 외에도 피노 블랑(청포도 일종)을 같이 심어 포도를 혼합하여 만들었다(검은 포도와 청포도를 같은 밭에 심고 같이 거두어 발효하는 것은 오래된 관습으로 독일, 오스트리아에서도 그 전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로마네 콩티 포도밭과 양조장의 이모저모. 최고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모습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최고 와인의 나이는?

188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기승을 부렸던 필록세라의 영향으로 프랑스 포도밭은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포도나무 뿌리는 다 시들어 죽었다. 진드기들의 공격에 유서 깊은 포도밭은 맥을 못 췄다. 필록세라에 내성이 있는 미국산 대목에 프랑스산 줄기를 접붙이는 방법만이 유일한 타결책이었다. 그러나 로마네 콩티는 미국산 대목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대신 포도나무의 번식을 달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상당 기간 동안 피노 누와의 순수성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들은 과연 로마네 콩티에 찾아온 필록세라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 지겹고 독성 강한 진드기가 창궐하는 동안에 그걸 박멸하려고 매년 이산화황을 밭에 뿌렸다. 이 방법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뿌리 파괴에 전매특허를 가진 필록세라에 의해 매년 조금씩 뿌리가 썩어 들어갔다. 마침내 양조장은 백기를 들었다. 1946년에 나무를 모조리 뽑아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1946년부터 1951년까지는 와인을 생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땅속을 완전히 갈아엎고 이듬해인 1947년에 포도를 다시 심었다. 이렇게 해서 2008년 기준으로 로마네 콩티의 나이는 거의 환갑이 다 되었다.

그렇다면 1880년경부터 60년 동안에 로마네 콩티에 심은 포도나무는 어떻게 번식했을까. 답은 휘묻이다. 가지를 휘어서 묻는 방법이다. 가지에 굴성(휘는 성질)이 있는 포도나 덩굴장미에 주로 쓰는방법인데, 땅을 길게 기는 가지를 선택해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을 땅속에 묻는 방식이다. 이후에 생장 조건을 잘 맞춰 주면 껍질을 벗긴 부분에서 뿌리가 나온다. 뿌리가 나오면 원래 나무와의 연결 부분을 잘라내 따로 키우면 된다.

에티엔느 그리보가 태워 준 헬기를 타고 내려다 본 로마네 콩티 포도밭

최초의 거라쥐 와인

왕자가 마신 와인을 찾는가. 그렇다면 1760년부터 1945년까지의 빈티지를 찾아보라. 이 기간 동안에 양조한 로마네 콩티는 왕자가 마신 와인 그대로다. 같은 곳에 심은 같은 포도나무로 포도밭 면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 당시 수확량은 지금보다 휠씬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은 보통 헥타르당 25~30헥토리터(100리터)를 짜낸다.

1.8헥타르(사방 135미터 내외의 면적)의 손바닥만한 밭에서 매년 평균 약 450상자(5,400병)를 생산한다. 거라쥐 와인, 컬트 와인이란 말은 90년대의 프랑스와 미국에서 생긴 신조어이지만 따지고 보면 로마네 콩티가 이들의 원조다. 로마네 콩티의 생산량은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쉴드의 오십 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연평균 3,000상자를 병입하는 보르도의 최고가 와인 샤토 페트뤼스의 육 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로마네 콩티를 최초의 거라쥐 와인, 최상의 컬트 와인이라고도 한다. 생테밀리옹의 발란드로(약 1,000상자), 라 몽도트(약 800상자) 혹은 나파 밸리의 스크리밍 이글(약 600상자)보다 적다.

수작업으로 하는 수확, 극심한 가지치기, 여름철의 열매솎기 등을 통한 품질 향상이 가장 큰 특징이다. 로마네 콩티의 포도나무 관리는 무척 세심하고 치밀하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포도가 좋아야 와인 맛이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07년 6월에 로마네 콩티 포도밭을 찾았을 때에 그곳에서 일하던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꽃망울이 터진 송이의 개수를 세고 나무 하나 하나를 일일이 살피고 있었다. 그는 아마 양조장으로 돌아가서 작년 수치와도 비교할 것이다. 이번 빈티지에는 어떤 결과를 얻을 것인지 예측도 하고 말이다. 계절이 지나면 그중의 상당 부분은 열매가 익기도 전에 잘려나간다. 남은 송이에 당분이 집중되도록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확할 때에 다시 한 번 선별 작업을 한다. 잘 익은 송이만을 거두어 다시 양조장에서 골라낸다. 고르고 또 골라낸 잘 익은 것으로만 로마네 콩티를 담근다.

로마네 콩티 밭에서 나무에 달린 송이 숫자를 파악하고 있는 젊은 일꾼

맛의 비밀은 존재하는가

로마네 콩티의 양조 과정의 특징을 살펴보자. 오랜 세월 동안 포도를 밟아서 즙을 냈다. 이 방법은 1989년까지 계속되었지만 지금은 기계로 즙을 낸다. 혹자는 이런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 와인의 신비감이 유지되었다고도 하지만 사실 양조상의 비밀은 없다. 양조 방식보다는 포도밭 그 자체가 와인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포도송이에서 포도 알을 골라 내지 않고 전체를 양조 통에 집어 넣는다. 그러면 가지에서 비롯되는 타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네 콩티는 품질이 좋지 않은 송이를 골라내기 위해 일찌감치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했다. 양조장과 빈티지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포도 알의 타닌이 충분하면 가지를 제거하고 알만 골라내 발효시키기도 한다. 발효 후에는 통 바닥에 침전된 효모 찌꺼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 한 번 정도만 거두어내고 그대로 둔다. 그러면 효모 찌꺼기에서 비롯되는 아로마와 힘을 얻을 수 있다. 맑은 와인을 얻기 위해 여과를 하지는 않지만 달걀 흰자로 정제를 한다. 오크 통을 만들 때도 색다르다. 3년 동안 건조시킨 오크 널빤지를 묵혔다가 사용한다. 와인에 지나친 오크 향이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양조장에서는 되도록이면 공정에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와인이 숙성되도록 놔둔다. 자유방임형이라고 할까. 어찌 보면 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까다롭지만 가장 효과적이라고 이들은 믿고 있다.

로마네 콩티에 쏠리는 관심은 사실 작명 방법이나 양조 특징에 있지 않다. 바로 가격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이 바로 로마네 콩티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우선 공급을 휠씬 뛰어넘는 수요에 있다. 한때 코스닥에 벤처 열풍이 불었었다. 보수적인 투자자조차 코스닥에 발을 담그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시절이다. 어떤 투자자들은 벤처 주식 매입보다는 공모주에 기대를 걸었다. 소규모 회사의 기업 공개에 수조 원이 몰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경쟁률이 수백 대 일에 이르니 고작 몇 주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로마네 콩티도 이와 마찬가지다. 매년 수천 병을 병입할 뿐인데 전 세계 와인 중개상들은 서로 사겠다고 아우성이니 가격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경쟁이 치열한 발행 시장인 셈이다. 두 번째 이유는 유통 시장에서조차 매물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투자 등급 와인을 구매한 애호가들은 일부는 소비하고 일부는 경매장에 내다 팔지만 로마네 콩티는 그렇지 않다. 소량이다 보니 재판매보다는 직접 음용을 목적으로 한다. 결론적으로 발행 시장에서 한껏 부풀려진 가격은 매물 부족이란 매력을 지니고 다시 유통 시장에서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로마네 콩티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

로마네 콩티 2001 ⓒ Acker Asia

로마네 콩티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경매장에 가는 것이다. 2005년 맨해튼에서의 일이다. 1999 빈티지 36병에 해당하는 다양한 용기에 담긴 구성이 출품되었다. 낙찰가는 211,500달러. 병당 대략 6백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국내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2005년 조선 호텔에서 행한 아트옥션 와인 경매에서 로마네 콩티 1999년산 한 병이 출품되었다. 350만 원부터 입찰을 받았다. 주위가 좀 소란해지면서 가격이 비싸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로마네 콩티 한 병이 그것도 세기의 빈티지라 할 만한 게 고작 350만 원이라니 정말 놀랄 일이 아닌가. 불과 4년 전인데도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 같다. 그러나 경매에 임한 응찰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입찰 경쟁은 시시했고 결국 로마네 콩티는 370만 원에 중년의 한 신사에게 낙찰되었다. 이 가격은 맨해튼 와인 경매 결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아주 저렴한 값이다. 와인 정보가 빈약한 서울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이런 해프닝은 얼리어댑터인 애호가들에게는 횡재로 작용한다.

2004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돈만 넉넉하다면 로마네 콩티를 구하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돈만 있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애호가들로 이미 예약자 명단이 꽉 차 있다. 대기자 명단도 꽤 길다. 예약자들은 로마네 콩티 한 병을 얻기 위해 다른 종류의 와인 열한 병을 부담 없이 함께 구입한다. 즉 한 병을 사려면 한 상자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상자엔 로마네 콩티가 한 병 밖엔 없지만 말이다. 2009년 3월말 홍콩에서 개최된 와인 경매에서는 1999년 한 세트가 출품되었는데 몇 차례의 경합을 통해 결국 30,250달러에 낙찰되었다.

최고의 와인답게 로마네 콩티는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극상의 맛을 지닌 존재뿐 아니라 극상의 사치품으로 욕망을 상징하는 소품으로도 소개된다. 불타는 건물 속의 아비규환을 리얼하게 그려낸 〈타워링〉에 등장한 1929년산 로마네 콩티 한 상자는 새로 개관한 초고층 건물의 높이보다 더 높은 인간의 출세욕과 물욕을 상징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06년에 개봉한 〈포세이돈〉에서는 한 노신사가 유람선 카지노에 앉아 1988년산 로마네 콩티를 주문한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여 더 이상 금액 따위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소믈리에는 5천 달러라고 반갑게 대꾸한다. 이 영화에서는 인생 마지막에 미련을 남기지 말고 좋아하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하라는 대상으로 로마네 콩티가 등장한 것이다.

로마네 콩티 포도밭은 구역별로 안식년을 실시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마침 리슈부르 포도밭과 경계되는 구역이 쉬고 있었다. 지력을 회복하면 그 공터에는 다시 나무를 심는다. 텅 비어 있다 보니 토끼가 출몰해도 금방 눈에 띈다. 토끼는 어린 포도나무 가지를 굉장히 좋아한다. 로마네 콩티 포도밭에 갔을 때 녀석은 몸집이 꽤 컸다. 여러 해 동안 그 녀석이 먹어 치운 포도 알도 상당하리라.

포도밭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부르고뉴에서 로마네 콩티의 포도밭을 찾기는 식은 죽 먹기다. 본 로마네 마을 뒷산으로 이어지는 경사길을 조금만 걸으면 십자가가 보인다. 높이 솟아올라 있어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십자가의 왼편이 로마네 콩티다. 여행자라면 그 길을 놓칠 수가 없다. 날이 흐리거나 비가 와도 그 근처엔 항상 여행자들이 붐빈다. 십자가 주변에 서서 포도밭을 응시하는 각양각색의 여행자들은 마치 순례자 같다. 그들은 성지에 온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무와 땅만 마냥 바라보고 있어도 표정엔 기쁨이 넘친다.

높이 솟은 십자가 주위에 관광객들이 몰린다.

* 같은 매력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면 로마네 콩티가 아니다.

[All That Wine]

로마네 콩티 한 세트를 구성하는 와인은 다음과 같다. 각각 그랑 크뤼급 레드 와인이며 피노 누아 100퍼센트로 만든다. 모두 합쳐 12병으로 한 상자에 담겨 팔려나간다.

 

포도밭
면적

평균
수명

평균
생산량

특징

1. 로마네 콩티
Romanée-Conti

1.8헥타르

54년

450상자

모노폴(monopole), 동일 밭을 다른 생산자와 분할 소유하지 않고 전체를 다 소유한다.

2. 라 타슈
La Tâche

6.06헥타르

48년

1,870상자

모노폴(monopole)

3. 리슈부르
Richebourg

3.51헥타르

43년

1,000상자

 

4. 로마네 생 비방
Romanée-St-Vivant

5.28헥타르

35년

1,500상자

 

5. 그랑 에세조
Grands Echézeaux

3.52헥타르

53년

1,150상자

 

6. 에세조
Echézeaux

4.67헥타르

33년

1,340상자

 

몽하쉐
Montrachet

0.67헥타르

63년

250상자

DRC가 만드는 유일한 화이트 와인으로 역시 그랑 크뤼급이다.

* 1~4는 본 로마네 마을에 속하며 5~6은 플라제 에세조 마을에 속한다.
가격은 번호의 오름차순으로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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