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후보 캠프 간 ‘매관매직’ 문서화…특정인이 오가며 수정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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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6.04. 오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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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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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최성 측 작성 ‘이행각서’에 무슨 내용 담겼나[경향신문]

2018년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고양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당시 예비후보자였던 이재준 현 고양시장을 ‘컷오프’ 된 최성 전 고양시장 캠프가 지지하는 조건으로 인사·사업권 등을 나누기로 하고 작성했다는 주장과 함께 공개된 이행각서 사본. 최 전 시장은 “조작된 문건”이라며 고발인 등을 맞고소한 상태지만 최근 검찰의 압수수색에서 이행각서가 작성된 증언과 정황이 녹취된 파일이 나오면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경선 컷오프 직후 15개 항목 작성…최성 측 ‘대리인’ 명의
“비서실장·‘정, 김, 박’ 자리 보장·민원 통로 양측 1인” 명시
일부 실제로 이행…최 전 시장은 “조작된 것” 법적 대응 중

경향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확보한 증언과 증거물을 종합하면 이재준 고양시장과 최성 전 고양시장 측 대리인이 2018년 지방선거 당내 경선을 앞두고 권한을 나누는 이행각서를 실제로 작성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최 전 시장이 이행각서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최 전 시장은 현재 “이행각서는 조작된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벌이고 있다. 확률은 낮지만 이행각서가 최 전 시장에게 보고되지 않은 채 측근 참모들이 당내 경선 ‘컷오프’에 반발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진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검찰 수사에서 ‘이행각서’가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지면 이는 최 전 시장의 직접 관여 여부를 떠나 지방자치 역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게 된다. 그간 지방선거에서 후보자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권력과 자리를 나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이처럼 각서를 통해 인사권과 사업권은 물론 민원처리 업무까지 구체적으로 분배한 문건이 공개된 것은 첫 사례로 봐야 한다.

현재까지 고소·고발 과정에서 공개된 이행각서는 최종본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보에 따르면 이행각서는 경선을 앞두고 특정인이 양측을 여러 차례 오가며 수정본을 전달했다. 수정 과정에서 유출된 복사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검찰이 압수한 휴대전화 통화녹음 파일에는 ‘페이퍼’가 분명 존재하고, 이행각서 작성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이에 대한 법적 처벌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 공소시효인 6개월이 이미 지났다. 뇌물죄 등 다른 형법을 적용하려 해도 최 전 시장 대리인으로 지장이 찍힌 당사자 1명은 외국인 신분이어서 검찰의 범죄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행각서는 2018년 4월30일 작성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더불어민주당 고양시장 경선을 앞두고 최 전 시장이 ‘컷오프’된 직후다. 이후 양측은 선거사무실을 통합해 경선을 준비했고 당시 이재준 예비후보가 다른 예비후보 3명을 제치고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이 시장의 경선 승리는 지역에서 ‘이변’으로 평가됐다.

당시 민주당 고양시장 경선에는 모두 4명의 후보가 올라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역구를 지지기반으로 한 예비후보 중 한 명이 유력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예상을 깨고 경기도의원 출신의 이 시장이 최종 후보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했지만 고양지역 당내 지지기반이 일부 예비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최 전 시장 측은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이 고양 일산지역(동·서구)이 지역구인 두 장관과 자신의 불협화음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들과 무관한 예비후보인 이 시장 지지를 선택했다는 게 정설이다. 검찰이 진위를 수사 중인 이행각서 내용 중에 ‘동·서구 의원실 중요 민원은 반드시 우리 측(최성 전 시장 측)과 협의 진행한다’는 조항이 들어간 것도 바로 두 장관의 민원을 차단하거나 파악하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행각서는 총 15개 항으로 돼 있다. 각서에서 ‘우리’는 최 전 시장 측을 말한다. ‘비서실장을 포함 3인을 비서실에 채용한다’ ‘감사담당관 2인을 추천하여 1인을 채용한다’ ‘○○○씨는 비서실은 물론 어떠한 자리도 챙겨주지 않는다’ ‘승진 인사는 우리 측과 긴밀하게 협의 후, 진행한다’ ‘7월 보직 인사는 소폭으로 한다’ ‘킨텍스 지원(C4) 부지는 을측과 협의 후 무조건 매각하는 것으로 한다’ ‘우리 측 공무원들은 최대한 오해가 없는 선에서 인사를 단행한다’ ‘정, 김, 박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적당한 자리를 보장한다’ ‘문화재단 대표, 킨텍스 감사, 체육회 사무국장, 자원봉사센터장 등 우리가 채용한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한다’ ‘선거 정책은 캠프와 긴밀하게 협의하며 우리가 전수 지원하며 진행한다’ ‘공무원들의 우리 측 사람들에 대하여 긴밀한 사안의 첩보는 우리 측과 반드시 협의하여 처리한다’ ‘기타 민원사항을 처리하는 통로를 추후 양측 1인씩으로 정한다’ ‘동·서구 의원실 중요 민원은 반드시 우리 측과 협의 후 진행한다’ ‘통과 후 최성 시장에 관하여는 어떠한 일이라도 우리 측과 협의한다’ ‘이후 우리 측의 모든 동력을 경선 과정에 투입, 반드시 필승한다’ 등이다.

이 중 일부는 이행각서대로 실제 인사가 이뤄졌고, 일부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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