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칼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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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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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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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 특히 소수자의 문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자유 확대가 아니라 자유 축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설사 아주 공평하게, 진보와 보수, 강자와 약자, 좌파와 우파의 표현의 자유를 모두 축소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제약받는 정도가 커질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강자다. 서로 할 말을 못 하는 상황은 현상 유지를 바라는 강자의 입장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 반면 소수자의 입장은 정확히 그 반대다. 소수자에게는 더 많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고 그들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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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에 관하여 대중강연을 하다 보면 남혐(남성혐오)도 문제 아닌가", "개독도 혐오표현 아닌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핵심은 남혐이나 개독이라는 표현이 소수자 혐오의 경우처럼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는지의 여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성이나 기독교도와 같은 다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 소수자들처럼 차별받아온 과거와 차별받고 있는 현재와 차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라는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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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대략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이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둘째, 혐오표현은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셋째, 혐오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이며, 실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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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비가시화 요구는 종종 너그러운 태도로 위장된다. “다 좋은데, 퀴어문화축제 같은 것만 안 하면 안 되겠나"고 하거나 내 눈에 띄지만 않으면 괜찮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존재를 향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관용이 아니다. 드러내지 말고 살라는 요구 자체가 차별이다. 게다가 어떤 소수자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 받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동성애자임을 드러내지 않으면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 즉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등의 비가시화 요구는 그 자체로 차별이며 비가시화가 관용이나 평등과 양립할 수는 없다.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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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메갈리아의 미러링에 대해 일부 남성들은 심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남성들이 집단적으로 매도당하는 현실이 물론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혐오를 혐오로 맞받아치는 것 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여성혐오도 나쁘고 남성혐오도 나쁘다는 식의 양비론도 등장했다. 악에 대해 악으로 되갚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제법 그럴듯한 논리지만, 이것은 미러링의 취지를 오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러링은 뒤집어서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로 혐오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 또한 그 사회적 효과를 보면,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똑같은 문제를 낳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여성혐오적 말이 여성차별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러링 차원에서 발화되는 남성혐오적 말이 남성차별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볼 수는 없다. (211)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출판 어크로스

발매 20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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