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54.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 풀무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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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 호흡은 몸속의 찌꺼기와 독소를 씻어 내고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킨다. 편한 자세로 앉아 복부에 양손을 올리고 풀무질하듯이 코로 숨을 내쉰다. 들이마실 때는 배를 풍선처럼 부풀리고, 내뱉을 때는 수축시킨다. 시연 배수진.


‘풀무’는 대장간 등에서 쇠를 달구거나 녹여 땜질을 할 때 또는 가정집 부엌 아궁이의 장작불을 지피는 데 이용했던 기구를 말한다.

풀무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손잡이를 밀고 당기는 손풀무이고, 다른 하나는 발로 밟아서 바람을 내는 발풀무(골풀무)이다. 손풀무는 크기가 중형·소형으로서 소규모 대장간이나 금속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숯불을 피우기 위해 손풍금 같이 생긴 손잡이를 잡고 폈다 오므렸다 하며 바람을 일으키는 허풍선(虛風煽)도 손풀무의 하나다. 발풀무는 쟁기를 만드는 대장간이나 대규모 공사장의 임시 대장간 등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는 일을 풀무질이라 한다. 풀무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흡입구를 통하여 공기가 들어가고, 손잡이를 밀면 가죽박이에 의하여 압축된 공기가 풍로를 따라 화력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이 밀고 당기는 작업을 반복함으로써 화력의 불 온도를 조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손풀무는 덜 마른 연료로 불을 피울 때 마른 낙엽이나, 짚, 나뭇가지, 솔방울, 잘게 쪼갠 관솔을 불쏘시개로 이용하여 밑불을 만들고 그 위에 장작이나 소나무, 참나무, 낙엽송 등의 장작을 쌓아 올린 후 풀무질을 하여 그 바람으로 불길이 일어 장작에 불이 붙게 되는 원리이다. 특히 벼를 찧고 나오는 왕겨로 불을 피울 때는 반드시 손풀무가 있어야 했다.

손풀무는 쇠붙이로 만들어졌으며 형태는 원통 속에 바람개비가 있고, 바람개비로 돌리는 둥근 쇠바퀴 바깥으로 홈이 패어 있어 여기에 고무줄이나 가는 벨트를 걸고 쇠바퀴의 손잡이를 돌리면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풀무는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었다.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는 ‘불메’라고 하며, 제주도에서는 손풀무를 ‘불미’ 발풀무를 ‘발판 불미’라고 한다. 또한 농사짓는 쟁기를 주로 만든다 해서 ‘보섭(보습)불미’라고도 불렀다.

풀무의 발달과 활용으로 인해 철·구리 등 광물질을 추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실생활에 수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인격도야(人格陶冶)란 말이 있다. 인격을 피와 땀과 정성으로 마치 질그릇을 굽고 쇠를 풀무질하듯 닦고 가다듬음을 말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노력을 통해 발전과 성장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삶 속에서 훌륭한 인격은 저절로 갖춰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도야(陶冶)의 과정, 풀무질과 담금질을 거쳐야 비로소 성숙한 인격을 갖출 수 있다. 견디기 힘든 고통과 시련을 견디고 이겨내려고 하는 가운데 사람의 인격은 점차 완성되어 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풀무’가 등장한다.

조선시대 김홍도가 그린 ‘단야도(鍛冶圖)’에 동자가 발풀무를 밟고 있는 모습의 일부가 보이고 있다. 풀무질하는 사람을 풀무꾼이라 하는데, 규모가 큰 대장간에서는 화로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주야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장정들끼리 짝을 지어 교대로 작업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그림 속 장정들의 솟아오른 근육과 흐르는 땀방울을 통해 활기찬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도 ‘풀무’가 등장한다.

성경에서는 금속 덩어리를 풀무 불에 넣어 제련하듯 믿음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연단(練鍛)시키는 것을 시련이라 말하고 있다.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이사야 48:10)

또한 풀무 불 속에서 바빌론의 느부갓네 왕이 강요하는 우상 숭배 대신 죽음으로 믿음을 지키려 했다가 기적 같이 살아남은 세 젊은이 사드락·메삭·아벳느고의 얘기가 나온다. 이곳 모두에서도 ‘풀무’가 등장한다.

성경에서 풀무는 비유적으로 애굽의 혹독한 속박, 하나님의 불 같은 심판, 끊이지 않는 정욕, 혹독한 시련, 영적인 단련, 종말이 있는 불 심판과 지옥 등을 상징한다.

노자의 도덕경 5장에 “천지지간 기유탁약(天地之間 基猶橐籥) 허이불굴 동이유출(虛而不窟 動而兪出) 다언삭궁 불여수풍(多言數窮 不如守中)”이란 말이 있다.

천지간에 자연의 움직임은 마치 풀무가 작동하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나 피리와 같아서 텅 비어서 막혀 있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더 많은 것을 내어놓는다. 즉 너무 세게 움직이면 곡식 가루나 음(音)이 튀어나오는 것과 같다.

마음이 조용하지 못하고 망상(忘想)을 내면 낼수록 고요함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는 뜻이다. 망상을 내는 행위 자체가 풀무가 펌프질하는 모양으로 비유한 것이다. 여기에도 ‘풀무’가 등장한다.

“(중략)술은 부채이외다 술은 풀무이외다/ 풀무는 바람개비외다 바람개비는/ 바람과 도깨비의 어우름 자식이외다/ 술을 마시면 취케하는 다정한 술/ 좋은 일에도 풀무가 되고, 언짢은 일에도/ 매듭진 맘을 풀어주는 시원스러운 술!/ 나의 혈관 속에 있을 때에 술은 나외이다(중략).”

1939년 7월 ‘여성 40호’에 발표되었던 김소월의 ‘술’이다. 여기에도 ‘풀무’가 등장한다.

도깨비는 ‘풀무의 신’이기도 하다. 그래서 도깨비는 풀무를 생업으로 삼던 마을에서는 당산(堂山)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도깨비는 다양한 성격을 지닌 존재여서 제주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신앙된다. 도깨비는 놀기 좋아하고 술과 고기를 좋아하며 호색가로 나온다. 사람에게 범접하여 병을 일으키기도 하는 존재이며, 또한 도깨비는 풍어를 이루어 주고 해상 안전을 돌보아주는 선왕(船王)이기도 하다. 여기에도 ‘풀무’가 등장한다.

대장간에서 화덕 바람을 불어넣어 쇳물을 녹이거나 쇠를 달구기 위해 풀무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를 풀무질소리, 불매소리(경남), 쇠부리 노래(울산), 불미소리(제주), 풍구소리(황해·평북)라고 한다.

풀무노래는 각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불무불무야’라고 하는 곳도 있고, ‘불아불아야’, ‘불매불매 불매야’로 부르는 곳도 있다. 단동십훈(檀童十訓)에선 불아불아를 아니 불(不), 버금 아(亞)로 해석하여, ‘아기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 해석하고 있다.

풀무의 옛말이 불무이다. 불무질의 ‘무’는 무엇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인데, 불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불은 생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래서 제주도 삼신할미의 본풀이를 ‘불도 맞이 굿’이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불은 ‘아기’ ‘인간 생명’을 뜻한다. 불이 생명이란 뜻과 속살을 같이 하는 것은 남성 생식기를 ‘불알’이라고 하고 남녀 생식기 언저리 두둑을 ‘불두덩’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하늘 같이 소중한 아기를 불면 날아갈까 꺼질까 걱정하면서 그 생명의 불꽃이 더 힘차게 타오르도록 부채질하는 노래, 그것이 바로 ‘불무 노래’이다.

대장간이 거의 사라지고 없는 요즘 대장간에서 불리던 ‘불매불매’ 역시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불매불매’에 아기를 어르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자 손녀를 어르면서 많이 불러주고 있다.

적진에 들어간 사명대사 유정은 무쇠풀무의 화방(火房) 속에 들었어도 타 죽기는 고사하고, 뚜껑을 열어 보니 수염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으며 그 불구덩이 속은 온통 얼음으로 변한 채 도리어 큰소리로 왜장들에게 호통을 쳤다는 고사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천책 선사는 한 승려로부터 차(茶) 선물을 받고 ‘사선사혜다(謝禪師惠茶)’라는 다시(茶詩)를 남겼는데 그 내용 중 “맑은 바람이 겨드랑이에서 풀무질 한다”는 구절은 차 한 잔에서 신선의 경지를 맛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시대 성리학 이기론(理氣論) 학자인 서경덕은 자연운행의 기틀을 일러 “음과 양의 풀무는 숨을 불어내고 하늘과 땅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네”라고 했다. 여기에도 ‘풀무’가 등장한다.

풀무 호흡은 범어로 ‘바스트리카 프라나야마(bhastrika pranayama)’라고 한다. 프라나(prana)는 기(氣)다. 중국에서는 치(chi), 일본에서는 키(ki)라고 한다. 바람, 생명력을 가진 공기라 불리기도 한다.

프라나를 설명하는 것은 신(神)을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들 한다.

성경에서는 창조의 묘사를 ‘신의 숨이 물 위를 떠돌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프라나는 신성(神性)의 숨이다. 그것은 모든 차원에서 우주에 두루 스며 있는 에너지이다.

프라나는 물질적, 정신적, 지성적, 성적, 영적, 우주적 에너지이다. 또한 모든 진동하는 에너지는 프라나이다. 열·빛·중력·자력·전기 같은 모든 물리적 에너지도 프라나이다. 프라나는 모든 존재에 감추어진 또는 잠재하는 에너지이다. 이것은 모든 활동의 활동력이며 창조하고 보호하고 파괴하는 에너지이다. 정력·힘·활기·생명·영혼은 모두 프라나의 형태들이다.

우주의 존재들은 프라나를 통하여 태어나고 프라나에 의해 산다. 프라나는 삶의 바퀴의 중심이다. 모든 것은 그 일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생명을 주는 태양·구름·바람·땅 그리고 모든 형태의 물질에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존재(sat)인 동시에 비존재(asat)이며 모든 지식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프라나는 인격화된 우주정신이다.

17세기 신비주의자인 카리바에켄은 “만일 당신이 고요한 영혼을 갖고자 한다면 먼저 호흡을 조절하라. 호흡이 잘 조절되면 마음은 평온해질 것이다. 호흡이 불규칙하다면 항상 걱정 근심으로 불안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시도하기에 앞서 당신의 기질을 부드럽게 하고 당신의 영혼을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호흡을 조절하라”고 조언한다.

감정의 흥분은 호흡수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호흡의 신중한 조절은 감정의 흥분을 제어한다. 요가의 목적은 마음의 조절과 안정에 있다. 그러므로 요가 수행자는 프라나야마(호흡법)를 중시 여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뭇잎이 바람에 움직이듯 마음이 호흡과 더불어 움직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호흡이 조절되고 평화로워지면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생긴다. 그리고 호흡을 멈출 때 자신의 영혼을 지니게 된다. 숨을 가득 들이마신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우리들은 자신 속에 신성(神性)의 무한성을 지니게 된다”고 현대 요가의 대가인 아이엥가는 말하고 있다.

“갓난아이의 약한 첫 호흡부터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헐떡임까지, 그것은 지속적인 호흡에 대한 하나의 긴 이야기들일 뿐이다”라는 말은 프라나의 의미를 잘 함축시키고 있다.

앞에서 ‘바스트리카 프라나야마’를 ‘풀무 호흡’이라 했다. 호흡 시 공기를 풀무처럼 강하게 불어 넣었다가 뺐다 하게 되므로 이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하타요가에서 이 호흡법보다 더 강렬하게 기(氣)를 돌리는 방법은 없다고 할 정도이다.

편한 자세로 앉아 복부에 양손을 올린 채 복부를 이용해 풀무질하듯이 코로 숨을 내쉰다. 들이마실 때는 배를 풍선처럼 부풀리고, 내뱉을 때는 수축시킨다. 들이 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을 같은 비율로 하여, 규칙적으로 리드미컬하게 반복한다. 소리가 날 정도로 다소 과장되게 해도 좋다.

엉덩이에 방석 등을 받쳐 꼬리뼈를 약간 높인 상태에서 행하는 게 좋다. 기초 단계에서는 처음 2초간 마시고 2초간 뱉는다. 다음에는1초간 마시고 1초간 뱉는다. 숙련이 되면 조금씩 더 빠르게 1초에 2회 정도 마시고 뱉고를 진행한다. 물고기 자세(마시야 아사나)에서도 할 수 있다. 다 마친 후에는 사바 아사나로 휴식한다.

폐 안에서 빠른 공기 교환으로 인해 혈액 흐름의 안팎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증가한다. 몸속의 열기를 더해주고 찌꺼기와 독소를 씻어 내리며,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킨다. 횡격막의 빠르고 리드미컬한 운동이 소화체계를 조율하는 내부기관을 마사지하고 자극하게 되어 소화능력이 향상된다. 명상을 하기 전 평온한 의식과 집중을 유도하며, 신경체계의 균형을 돕는다.

수련 도중 약간 어지러운 느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는 뇌에 갑작스레 산소가 공급되어 뇌기능이 향상되고 있다는 증표이다. 이럴 때는 잠시 쉬었다 하면 된다.

인도의 의학서 ‘아유르베다’에서는 “풀무 호흡을 100회 정도 했을 때 체내 지방과 노폐물, 점액질을 태우고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풀무 호흡은 ‘불의 호흡’이라는 명칭도 얻었다.

화가 났을 때, 집중이 안될 때, 급격하게 감정이 올라갈 때 그것을 고요히 할 때, 이렇듯이 감정의 기복을 안정시킬 때 활용하면 좋은 호흡법이다. 뱃살 제거 및 복부 탄력성 향상에도 좋다. 영적인 수행자에게는 사고력과 통찰력을 불러일으킨다. 임산부는 물론이고, 귀와 눈·폐·혈압에 트러블이 있을 때는 자제한다.

간절한 열망을 담아 그간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 더없이 지난하고도 더없이 고단했던 풀무질로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의 불길을 일으키며 연단하고 또 제련하여 드디어 추출한 결과물의 탄생을 본다. 얼마나 인내하며 기다려 왔던가.

황홀한 이 순간 오, 보아라! 영롱한 저 광채를 뿜으며 마음껏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 때문에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조차 오늘은 그냥 감내하리라, 지켜보리라, 아니 마음껏 쏟아 내리라.

부디 정제된 추출물이었기를, 부디 바라고 얻고자 하던 광물질이었기를, 부디 꿈꾸던 보석이었기를 갈망하면서.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에는 그 사람에게 맞는 각기 다른 보석의 기운으로 질병을 예방·치료한다는 ‘보석요법’이 있다. 이처럼 오늘 추출된 보석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한겨울 바닷바람 같이 신선하기를 기대해 본다.

옆에만 있어도 그 보석의 기운으로 인해 그간 막혔던 기혈(氣穴)이 봇물처럼 뚫리고, 바라만 보아도 그 보석의 기운으로 삶 속에 생활 속에 하늘 마음이 강물처럼 와 닿기를 흐르기를 기원한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또 다른 보석들을 얻고 추출해야만 한다. 펼쳐질 산신(酸辛)한 험로를 헤쳐 나가려면 쉬지 않고 풀무질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풀무질은 더욱 치열하게 해야만 되리라. 그것이 손풀무든 발풀무든, 작은 풀무든 큰 풀무든 가리지 않고.

그리하여 누구나 탐내고 부러워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마니푸라(보석의 도시)’의 건설도 꿈꾸어 보리라.

어디선가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아니 에드 윈 호킨스 싱어즈의 ‘오 해피데이’ 같기도 하고, 베르디의 ‘축제의 노래’ 같기도 한 음률들이 약동하는 이 봄날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고 있다.

오늘따라 ‘바스트리카 프라나야마(풀무 호흡)’ 수련에 더욱 맹렬하게 지극 정성으로 그리고 행복한 마음으로 임해본다.

웅크려 있던 가슴 활짝 펴며, 폐는 최대한 확장시킨 채 그간 오염(contamination)된 탁기나 삿된 기운을 마음껏 배출시켜 본다. 심산계곡 산(産) 청정한 공기를 온몸 구석구석 가득 채운다.

마치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근 채 두 손 모으고 하늘을 우러르며 간절히 축원하는 그들처럼, 몸과 영혼의 정화(purify)가 끝없이 펼쳐진 히말라야 설원(雪原)의 풍경처럼 순백색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면서.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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