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시대, 老교수의 행복에 대한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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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8.17. 오후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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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예습 /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 펴냄 / 1만6500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소확행'이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다. 행복을 계량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부를 쌓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안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을 얻고 명예를 쌓아도 불행할 수 있다. 없을 때는 이런 것들을 갖춰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걸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고 때로는 나쁜 일도 서슴지 않지만, 이제는 다르다. 먹고살 만한 시대여서 그런지 경쟁에 굳이 뛰어들지 않고 진짜 행복을 찾아 나선다.

'소확행'이라는 말을 꺼낼 때는 단순히 좋은 의미만 있지 않다. 모두 식물처럼 가만히 앉아 햇빛이 잘 들기만 바라는 젊은이의 모습에 기성세대는 혀를 차기도 한다.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생각이 다른 듯하다. 그는 인생을 살다 보면 시련도 있지만 하나둘씩 이겨내다 보면 행복은 찾아온다고 한다. 무엇을 더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또한 이웃과 이를 나눌 수 있어야 행복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김 교수는 그동안 살면서 자신이 내린 행복에 대한 소회를 모아 수필집 '행복 예습'으로 펴냈다. '소확행' 시대를 맞아 "나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노(老) 철학자 말은 여러모로 되새겨 볼 만하다.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이기주의로 변질하지 않도록 잡아주는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의 마지막 책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이 원고를 한 글자씩 꾹꾹 원고지에 눌러 썼다. 당장 눈앞의 이득보다 죽을 때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김 교수가 펼치는 행복론에 한번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행복론은 어찌 보면 특별하지는 않다. 그는 행복이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찾아갈 수도 없지만 언제나 우리 삶에 함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사랑하는 만큼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교수 말은 어떻게 보면 흔하디 흔한 종교서적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지만 그의 책에는 종교에 대한 편견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예로 들면서 "소유가 인생의 목적일 수 없듯이 무소유가 인생의 목적일 수도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또 "무소유의 삶의 가치는 소유욕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뜻"이라며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책은 '행복의 조건' '일하는 기쁨'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 '사랑했으므로 행복했노라' 등 네 부분으로 나뉜다. 어찌 보면 수많은 종교는 사랑을 각자 다른 언어로 말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김 교수가 말하는 행복은 법정 스님의 글처럼 종교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귀결한다.

물론 김 교수의 행복론을 들여다보면 현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력을 다해 절벽을 타고 올라도 떨어지는 것이 삶인데, 시련은 행복할 수 있는 과정이고 사랑이 행복의 열쇠라고 하니 한가하게 들린다. 그렇지만 김 교수의 삶을 돌아보면 생각이 바뀐다. 일제가 맹위를 떨치던 1920년 태어나 학도병 징집을 피해 도망다니던 김 교수는 30대를 전쟁과 폐허 속에서 보냈다. 어릴 때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병약했던 데다 남한으로 피란온 뒤로 6남매를 포함해 가족 10명을 부양해야 했던 그다. 살뜰히도 아꼈던 아내는 오랜 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20년 넘게 그는 홀로 방을 지켰다. 지독한 가난과 생계 속에서 빠져나올 때쯤 그는 고독과 싸워야만 했다. 제대로 퇴고도 하지 못하고 내놓은 수필집 '영원과 사랑과의 대화'가 60만부 넘게 팔리며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삶이 결과가 아니고 과정이었다고 담담히 털어놓는다. 과정 속에서 행복했지 100세 가까운 지금에 와서 행복을 만져보지는 못했다면서. '소확행' 시대에 무엇이 행복인지 회고하는 김 교수의 말은 그래서 의미 깊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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