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중매' 4년, 내 운명의 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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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1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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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제 이상형은 아주 분명했습니다. 저와 친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바로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우는, 기타를 치는 남자"였지요. 이걸 듣고 간혹 당황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내 "개를 참 좋아하시나 봐요" 하면서 웃어 넘기곤 했어요. 저의 '개 앓이'는 점점 심해졌어요. 결혼 전 혼자 살던 제가 리트리버 같은 대형견을 덜컥 입양해 키우는 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제 SNS는 점점 개로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면서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을 달랠 수 있었거든요.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하는 개가 수백 마리나 될 정도였답니다.

그렇게 개를 찾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을 알게 됐어요.

그곳의 유기 동물 공고 메뉴에 전국적으로 정말 많은 유기견이 매일 같이 등록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그 후 저는 점점 이곳에 들르는 횟수가 잦아졌고 언제부터인가 등록된 유기견들의 사진과 특징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어요. 그러다 이곳에서 본 정보를 SNS 상에 공유하기 시작했어요. 유기견 한 마리라도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실어서요. 사진을 보고 개 이름도 제 마음대로 지어서 올리곤 했어요. 주위에 개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열심히 소개하기도 하고요. 소위 '개 중매'가 시작된 거죠.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은 건 아니지만, 힘들고 지친 날이면 저에게 위로가 되는 의식 같은 일이기도 했어요. 벌써 4년째 ‘개 중매'를 하고 있답니다. 실적이요? 새 가족을 만난 유기견이 다섯 마리입니다. 그중 두 마리는 미국으로 해외 입양이 되기도 했지요. 참, 요즘에는 동물보호관리스템을 보다 편리하게 살펴볼 수도 있고 유기견 입양기를 공유할 수 있는 ‘포인핸드' 같은 앱(안드로이드용, 아이폰용)도 있어서 더 쉽게 유기견 정보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 화면이에요. 9월 1일부터 13일까지 전국적으로 등록된 유기견이 2726마리나 됩니다.

우리 개 살바토레를 만난 곳도 이곳이었어요. 그날도 눈에 띄는 유기견들을 SNS에 공유 중이었는데,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의 남편에게 '이 강아지 너무 예쁘지 않냐'면서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의 반응도 그때까지 보여준 것 중 가장 적극적인 편이었지요.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우고 싶었던 제 눈에는, 발이 큰 이 강아지가 래브라도 리트리버로 보이기도 했어요. 이틀이 지나선가 남편은 한 번 만나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오랜 시간 대형견을 키우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막상 가려니 덜컥 겁이 났어요. 오랫동안 마음으로 준비한 것과 현실로 맞닥뜨리는 건 또 다른 문제였거든요.

당시 서울 녹번동에서 발견되어 공고에 올라온 3개월 된 살바토레 모습입니다. 저는 살바토레를 입양하기 위해 총 104km을 이동했고 4시간 26분이 소요되었어요.

저와 남편은 각자 휴가를 내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보호소가 있는 경기도 양주로 향했어요. 서울에서 양주까지 웹사이트에서 사진으로만 본 작은 강아지를 보러 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강아지를 만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하지?’, ‘정말 입양하는 건가?’ 운전 중이었던 신랑은 어땠는지 몰라도 옆에 타고 가던 전 머릿속이 내내 분주했어요.  


미리 전화 약속을 하고 갔던지라 담당자분은 지체 없이 ‘발이 큰 그 작은 강아지’를 견사에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특징란에 ‘양 귀 처짐, 눈물 자국 약간, 몸 떪'이라고 적혀 있던 그 강아지는 구조 후 처음 철장에서 나왔는지 너무나도 분주했어요. 꺼내오신 분이 관심을 끌려고 개껌을 하나 물려줬는데, 멀리서 찾아온 우리에게는 정말 관심이 ‘1도' 없었고 허겁지겁 개껌을 먹기 바쁘더라고요.

솔직히 “이 강아지가 내 강아지다!”라는
드라마 같은 장면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직원분은 워낙 어린 강아지고 초겨울 추운 견사에 있었던 터라 감기 기운이 있어 오래 살지 못할 수 있으니 입양하려면 빨리 데려가는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맘 같아서는 한두 번 더 보고 교감을 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상황을 들으니 그건 어렵겠더라고요. 저와 남편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작고 흰 강아지를 입양하겠다고 결정했어요. 입양 서류를 작성하고 ‘개의 소유권은 협회에 있다. 혹시라도 키우지 못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 보내지 말고 보호소에 데려오라'는 설명도 누차 강조하시더라고요. 참고로, 개와 여러 번 만나면서 교감을 나눠본 뒤 입양을 결정할 수 있는 보호소도 있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에서 운영하는 '아름품' 이 그런 곳이죠.

살바토레와 처음 만난 순간이에요. 이렇게 탁자에 올려놓을 정도로 작은 강아지였어요.

지금 살바토레의 모습을 보면 상상할 수 없지만, 그날은 이 작은 강아지가 부서질까봐 마음을 졸이며 안고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살바토레도 태어나 처음 한 장거리 여행에 피곤했던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금방 곯아떨어지더라고요.

래브라도 리트리버만큼 큰 귀는 아니지만, 얼추 처진 귀, 두툼한 발을 보면서 '살바토레는 래브라도 믹스견이 틀림 없다'라는 믿음은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입양 다음 날, 기본 검사를 위해 동네 동물병원에 방문했는데, 수의사 선생님은 제 환상을 단박에 깨주셨어요. "얘는 진돗개 믹스인데요?" "아니에요, 선생님. 얘가 어떻게 진도예요. 보세요, 랩이에요 랩"이라고 철없이 답했던 게 기억나요. 당시 직장 상사에게 제가 진돗개 피가 섞인 개를 키우게 됐다고 설명하자, "나도 키워볼까 하는데, 뒷다리가 발달해 마당에 울타리도 2미터 이상 올려야 할걸? 괜찮겠어?”라고 묻더군요. 그 상사는 오랜 시간 여러 나라의 다양한 개를 키워온 분이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제 머릿속에는 ‘하핫, 하하핫, 이제 뭐 어쩔 수 없죠'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답니다.

살바토레가 처음 병원에서 검사를 받던 날, 수의사 선생님은 "얘는 '쌀'바토레예요, '살'바토레예요?"라고 물으셨어요(-_-;;). 처음 동물병원에 온 살바토레(왼쪽)와 세 살 반 무렵 살바토레(오른쪽) 입니다. 정말 많이 컸죠?

3개월이 채 되기 전에 공원에서 구조된 진돗개 믹스 살바토레가 이제 벌써 네 살이 되었답니다. 추운 밤 어둠 속에서 홀로 떨고 있던 작은 강아지에게 가족이 생기고 집이 생겼지요. 살바토레와 함께 좌충우돌하며 보내면서 느끼고 경험한 서울의 반려견 이야기, 살바토레를 시드니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면서 겪었던 반려견의 해외 이주 절차, 살바토레의 시드니 입성을 기다리며 열심히 들여다본 호주의 반려견 문화 등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연재하는 중에 살바토레가 시드니에 무사히 도착하면 참 좋겠다는 소망을 품으면서요.



· 사진 나윤희
호주 시드니에서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어요. 아직 서울에 있는 살바토레가 시드니로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어요. 살바토레 이야기를 통해 서울과 시드니의 서로 다른 반려견 문화를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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