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클래식 칼럼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로 활동 중인 박소현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프로그램 노트에 담긴 클래식'을 맛있게 각색하여 올리고 있으니 원글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베토벤과 스승이었던 슈만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교향곡 1번을 비롯한 4개의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헝가리 무곡, 대학 축전 서곡, 독일 레퀴엠, 200곡이 넘는 가곡 등을 작곡한 위대한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피아니스트였던 '요하네스 브람스 (Johannes Brahms, 1833-1897)'가 슈만의 문하생으로 있을 1855년, 그의 스승 '슈만 (Robert Schumann, 1810-1856)'은 정신분열에 시달리다 라인 강에 뛰어들어 자살 시도를 하게 됩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슈만은 정신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브람스는 '올림 다 단조 (C# Major)'로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피아노 사중주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남편의 정신병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던 슈만의 부인이자 세계적인 여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 (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 1819-1896)'에게 남몰래 연정의 마음을 품고 있던 청년 작곡가 브람스는 클라라와 슈만 가족의 정신적인 지주로 남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클라라에 대한 짝사랑을 깊은 마음 속에 갈무리하고 평생의 친구로 남길 결심한 브람스가 작곡한 곡이 바로 피아노 사중주 '베르테르 (Werther)'의 1악장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을 대표하는 대문호라면,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는 누구일까요?
바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바이마르 대공국의 재상직을 지내기도 했던 독일 낭만주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괴테는 '파우슽'를 비롯하여 '서동시집', '이탈리아 기행', '색채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괴테의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소설이 바로 1774년 출판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hters)'일 것입니다. 편지 형식의 서간체로 쓰여진 이 소설은 괴테의 경험담이 오롯이 녹아들어 당시 숨낳은 유럽의 젊은 청년들에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소설 속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대유행 하였으며, 베르테르의 자살을 모방하여 생을 마감한 사람도 당시 수천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집니다. 현재도 유명인의 사망에 동화되어 자살 시도나 자살율이 높아지는 현상을 '베르테르 현상', '베르테르 효과'라고 부르는 이유 역시 이 때문입니다.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기 시작한 1772년, 자신이 견습으로 일하고 있던 고등법원에서 '요한 케스트너 (Johann Chrtistian Kestner)'와 그의 약혼녀인 '샤를로테 부프 (Charlotte Sophie Henriette Buff, 1753-1828)'와 친분을 쌓게 됩니다. 괴테는 샤를로테에게 사랑에 빠져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때 괴테의 친구였던 철학자 '카를 예루살렘 (Karl Wilhelm Jerusalem)' 역시 유부녀였던 '헤르트 부인 (Elisabeth Herd)'를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견딜 수 없었던 예루살렘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고, 이 모든 사건들을 겪은 괴테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베르테르의 비극'을 쓰게 되었습니다.
청년 예술가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우연히 만난 '샤를로테 (로테)'에게 사랑에 빠졌으나, 이미 로테에게는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로테를 향해 커져만 가는 사랑을 참을 수 없었던 베르테르는 도시를 떠났고, 로테는 알베르트와 결혼을 합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도시로 돌아온 베르테르는 유부녀인 로테의 곁을 맴돌다 결국 구애를 하게됩니다. 로테는 사랑의 감정보다는 신분과 이성을 선택하고 베르테르를 거절합니다. 극심한 절망감에 빠진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총으로 머리를 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브람스 역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베르테르에 동화된 젊은 청년 중 한명이었습니다. 베르테르와 자신을 동일시 여기며 피아노 사중주 '베르테르'의 1악장을 완성시킨 브람스는 친구였던 유명 외과의이자 아마추어 음악가 '테오도르 빌로트 (Theodor Bilroth)'에게 악보와 함께 편지를 보냈으며, 이 편지를 보낸 후 미완성인 채 창작을 중단하였습니다.
미완성의 단악장 작품으로 남을 뻔 했던 이 곡은 17년이 지난 1873년, 브람스가 조성을 '다 단조 (C minor)'로 바꾸고 1악장을 수정하며 다시 작곡이 시작되었습니다. 1악장과 안단테 사이에 빠른 스케르초 악장이 작곡되며 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Allegro non troppo)', 2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Scherzo. Allegro)', 3악장 '안단테 (Andante)',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코모도 (Finale. Allegro comodo), 이렇게 4개의 악장으로 1874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이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3번 다단조 작품번호 60번 베르테르 (Piano quartet No.3 in c minor, Op.60 'Werther')'는 브람스가 처음 작곡을 시작하고 20년이 지난 1875년에서야 드디어 출판 및 초연이 되었습니다.
브람스는 이 악보를 출판업자에게 보낼 때 동봉한 편지에서 20년 전 빌로트에게 보냈던 내용과 동일한 자신의 속마음을 담았습니다.
"악보의 표지에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내 초상화를 보낼테니, 거기에 푸른 연미복, 노란 바지, 그리고 장화를 함께 그려넣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작품에 대한 음악적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 속 베르테르의 상징적인 의상을 20년이 지난 후에도 언급한 것에서 느낄 수 있듯, 브람스가 베르테르나 작곡의 배경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1악장을 들려줬을 때에도 클라라가 이 비극적인 음악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젊은 베르테르에 동화된 브람스의 고뇌와 절망감이 처절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소설 속 베르테르가 푸른 연미복과 노란 바지, 승마용 부츠를 신은 채 자살을 하여 마음을 먹는 상황에서 심장을 조이는 듯한 강렬함으로 시작하는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3번의 1악장은 강한 피아노의 화음과 그를 따르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슬픈 화음 진행이 인상적입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강렬한 불협 화음은 연주자가 잘못된 음을 짚은 것이거나 악보의 인쇄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란 의문이 들 정도로 격렬하여 젊은 베르테르와 브람스의 좌절과 비애가 점철되어 있음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런 구슬픈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음식은 뭐가 있을까요?
저는 생뚱맞게도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떠올렸답니다.
작곡가와 음악의 소재가 되었던 소설의 작가, 그리고 소설의 배경까지 모두 '독일'인 브람스의 '베르테르', 독일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소시지', '부어스트 (Wurst)'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맥주와 함께 먹기에 최고의 안주이기도 한 소시지는 독일에만 그 종류가 10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독일의 대표 소시지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소시지'와 함께 소시지의 양대 산맥이라 부를 수 있는 '프랑크 소시지'일 것입니다.
'프랑크 소시지'는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Frankfurter Wuerstchen)'의 줄임말입니다.
길쭉~한 소시지인 프랑크 소시지는 중세 시대 프랑크푸르트 지역에서 '브라트뷰르스트헨 (Bratwuerstchen)'의 형태로 탄생한 것이 원조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괴테의 고향이기도 한 프랑크푸르트는 12세기에 이미 도시가 형성된 유서깊은 도시로 독일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도시입니다.
이 '프랑크푸르트'에서 탄생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는 '베르테르', 브람스의 평생의 사람이 된 클라라가 숨을 거둔 도시이기도 한 프랑크 푸르트..
브람스의 피아노 사중주 '베르테르'를 들으며 맥주 한잔과 함께 잘 삶은 프랑크 소시지를 한 입 먹으면 또다른 독일의 풍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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