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스]대한항공+아시아나③, 왜 한진칼 주식 12월22일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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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23. 오후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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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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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Numbers)로 기업과 경제, 기술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숫자는 정보의 원천입니다.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숫자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실을 보는 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숫자 이야기를 <넘버스>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왼쪽부터)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강성부 KCGI 대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각사)


빅딜 거래를 진행한 산업은행은 많은 해명자료를 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해명과 설명을 해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기 때문이죠.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 근본적으로는 설계된 거래 구조 탓이겠죠. 해석을 잘못해서가 아니죠. 그리고 논란이 된 거래구조의 핵심은 올해가 가기 전인, 12월22일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을 받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입니다.

한진칼이 지난 16일 공시한 '주요사항보고서(유상증자 결정)'에 따르면 한진칼이 실시하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대금 납입일은 12월2일이고 신주 상장 예정일은 12월22일입니다. 이사회 결의일(11월16일)로부터 약 한달 일주일만에 신주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는 거죠.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일반적으로 이사회 결의부터 신주 상장까지 대략 한달 정도 기간이 소요됩니다. 긴급함이 요구되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 특수성 상 빠르게 진행됩니다.

2020년 유가증권 시장 주요 3자배정 증자 현황.(자료=공시 종합)


올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제3자배정으로 신주를 발행한 10개 주요 기업 대부분이 약 한달 걸렸습니다. 한달이 채 안걸린 곳도 있고 한달 넘게 기간이 소요된 기업도 있습니다. 컨버즈, 메리츠화재, 케이씨텍, SK렌터카, 오리엔트바이오, 기업은행, 교보증권, 보령제약, 세화아이엠씨, 삼성제약 등입니다.

반면 일반공모 증자의 경우에는 보통 석달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두산중공업이 대표적이죠. 9월4일 일반공모 증자 결의를 했고 신주가 상장되는 날은 12월24일이네요. 석달이 넘게 걸렸죠. 주주의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는 날은 대금 납입일 다음날이므로 두산중공업의 증자에 참여한 주주는 신주의 권리를 12월12일부터 부여받게 됩니다. 상장 날짜는 24일이지만요. 주주의 권리란 배당받을 권리,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권리 등을 말하죠.

2020년 유가증권 시장 주요 일반공모 증자 현황.(자료=공시 종합)


이 외 엔케이물산은 약 5개월이 소요되고요. 포스코케미칼은 약 2개월 보름, 세화아이엠씨는 약 3개월 보름, 드림텍은 약 2개월 3일, 한진은 약 3개월이 소요됐습니다.

일반공모 증자가 제3자배정 증자보다 신주상장까지 평균 두달 가량 더 기간이 소요되는 이유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일반공모 증자는 우리사주조합에 신주의 약 20%를 배정해 우리사주청약을 따로 받아야죠. 실권주가 발생하면 별도의 절차를 거쳐 다시 주식을 배정해야 합니다. 대주주가 아닌 일반주주 청약도 별도로 실시 합니다. 증자가액 산출 방법도 달라 제3자배정보다 까다로운 가격 산출 절차를 두고 있죠. 그래서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한진칼 입장에서 보면 일반공모 증자를 할 경우 신주대금납입일이 내년이 되죠. 제3자배정 증자를 하면 올해 내로 신주상장까지 모두 끝마치고요. 여기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올해 내로 신주상장이 모두 끝나면 신주를 가져가는 곳(산업은행)은 올해말 주주명부 폐쇄 기간에 합법적으로 주주 명단에 올라, 내년 정기주주총회 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3개월 가량이 평균 소요되는 일반공모 증자를 해 내년에 신주가 상장된다면 신주를 가져가는 곳(산업은행)은 내년 정기주총 때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고요.

산은 참여 후 한진칼 지분 변화.(자료=공시 종합)


이 결과 한진칼 지분율 싸움은 KCGI에 매우 불리하게 전개됩니다. 산업은행이 제3자배정으로 증자에 참여하면 올해 주주명부 폐쇄기간 안에 주주명부에 오를 수 있게 되고, 한진그룹과 함께 거의 과반수에 육박(47.99%)하는 의결권을 가져갈 것으로 보입니다.

산업은행이 아무리 경영권 견제 장치를 만들었고 한진그룹에 우호적인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거라 말해도 이 거래 구조를 보면 한진칼 주총에서 한진그룹에 우호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너무 명백히 보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승적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추진하는게 명분이라면 한진칼 신주대금 납입일이 올해든지 내년초든지 별 상관이 없죠. 실제 한진칼과 같은날 유상증자를 공시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신주 대금납입일이 각각 내년 3월과 6월입니다.

시급하게 돈이 필요한 곳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인데, 시급하게 돈을 가져가는 곳은 한진칼인거죠. 돈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우호적 의결권을 가져간다는 특혜 논란은 이 때문에 나옵니다.

산업은행이 여러 해명자료에서 밝힌 한진칼 지분 참여 이유는 크게 △컨트롤타워론 △경영견제론 △실경영주와 협상해야 하는 현실론 △연내 긴급 필요성 등 4가지로 요약됩니다.

산업은행은 23일 보도자료에서 "컨트롤 타워인 한진칼에 투자해야 어떠한 형태의 통합·재편 방안 구조가 설계되더라도 그에 관계없이 소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위와 같은 상황에서 산은이 대한항공의 추가적인 자본 확충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익은 크지 않은 반면, 세부적인 통합·기능 재편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한진칼에 대한 신규 투자가 구조개편 작업의 전체적인 지원 및 감독에 있어 기대되는 의의와 효용이 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9일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경영권 분쟁 중인 회사와 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는데 사실 한진칼 관련 경영권 분쟁은 네버엔딩 스토리다. 지난번 벌써 한 차례 양자 싸워서 조원태 회장이 이겼지만 다음 주총은 또 누가 이길지 모른다. 이 네버엔딩 스토리가 끝날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그 엔딩을 기다리면 두 회사 모두 망한 다음 항공산업 재편을 해야 한다. 어디 끝날 기미가 있으면 기다리겠지만 시간여유 없다면 끝날 기미 없는 분쟁이다. 분쟁한다는이유로 중차대한 업무를 방기하는건 국책은행으로, 또 채권단으로서 책임회피라 생각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불가피하게 (딜이) 들어갔다. 단 산업은행은 10% 정도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편들지 않는 중립적 입장에서 양자를 견제하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양쪽 어디든 협력해서 나갈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들어보면 산업은행 해명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팬데믹 국면의 전개 양상에 항공사 명운이 달라지고 정부의 자금 투입 규모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양대 항공사의 운명을 거머쥐고 있는 산업은행의 고민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일정을 한달 뒤로 미루면 정말 두 항공사 모두 다 망하는지의 의문이 생깁니다. 불과 한달의 차이죠. 이 한달의 차이가 극명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불러오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KCGI는 지난 20일 보도자료에서 "사태의 본질은, 코로나위기와 아시아나항공 잠재부실 부담을 고민하던 산업은행과 일부 정책당국이 항공업 통합과 실업우려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동참하게 된 참사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진칼과 대한항공 주주들 및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은 희생되었고, 사회적 합의와 공정한 절차가 무시됨은 물론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었습니다"고 했습니다.

이어 "한진칼이 다양한 자금조달 방법으로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산업은행의 제3자 배정 보통주 증자가 안되면 합병이 무산되는 것으로 오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 딜은 조원태 회장측이 원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을 뿐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문병선 기자(mrmoon@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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