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금리 공습…유럽선 예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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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2.22. 오후 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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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스웨덴·스위스 등
예금금리 0%대…돈 안맡겨
시중자금 떠돌자 부동산 급등

韓기준금리도 0%대 진입 눈앞
투자는 안늘고 자산거품 키워


◆ 2020신년기획 / 지구촌 제로금리 공습 ① ◆

"은행에는 입출금 통장만 갖고 있어요. 금리가 워낙 낮다 보니 예·적금 상품은 아예 본 적조차 없습니다. 마이너스 대출 금리 상품도 나왔다고 하는데 주위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은 거의 못 봤어요."

지난달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중심가에 있는 위스케은행에서 만난 고객 프리다 애나센 씨의 얘기다. 30대 직장인인 애나센 씨의 유일한 은행 상품은 수시입출식 통장이다. 월급통장으로 만들었고, 체크카드의 결제 계좌이기도 하다. 그는 예·적금은 존재조차도 잘 모른다. 금리가 0.1% 수준이라 돈을 맡길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 중에서 예금이나 투자를 위해 은행을 찾는 사람도 거의 못 봤다고 한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제로금리'의 공습을 받고 있다. 만성적인 저금리가 이제는 제로금리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다. 유럽연합(EU)과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 일본과 스위스는 제로금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살고 있다.

제로금리의 대표적 피해 사례는 부동산값 급등이다. 지난 5년간 이어진 유럽의 제로금리는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낳고 있다. 프랑스 파리나 독일 뮌헨 등 주요 도시 집값의 경우 제로금리 이후 30~40% 이상 뛰었다. 국토 면적이 좁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시내 부동산 가격이 아직 런던이나 파리 수준은 아니지만 상승률로는 EU 국가에서 뮌헨 다음으로 가장 높다.

윤참솔 UBS은행 런던법인 애널리스트는 "유동성은 넘치는데 주식시장도 좋지 않아 부동산으로 돈이 꾸준히 몰리고 있다"며 "기준금리보다 대출 금리가 낮아지면서 자산가격 버블은 훨씬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끊어진 것에 대한 불만도 높다. 스웨덴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엘린 씨는 "부모 세대만 해도 1억원을 맡기면 연 1000만원의 이자를 받아 손쉽게 재산을 늘릴 수 있었다"며 "우리는 세금을 제외하면 10만원을 손에 쥐기도 벅차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제로금리는 금융 상식도 바꿔놓고 있다. 덴마크 위스케은행은 지난 8월 1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0.5%의 고정금리를 매긴 상품을 출시해 화제가 됐다. 1억원을 빌리면 9500만원만 갚으면 된다. 반면 750만크로네(약 13억원) 이상의 돈을 이 은행에 맡긴 사람은 매년 0.6%의 보관료를 내야 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이자를 내고,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제로금리 장기화는 경제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더 이상의 재테크가 불가능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치면서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차장(샌프란시스코·LA) / 김강래 기자(도쿄) / 정주원 기자(런던·암스테르담·바우트쇼텐) / 이새하 기자(스톡홀름·코펜하겐·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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