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신고제’ 이번엔 국회 문턱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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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15. 오후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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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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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민간 임대 시장 부정적 영향 우려에…번번이 무산
ㆍ보증금 보호·임대인 투명 과세…‘임차인에게 세부담 전가’ 반론도
ㆍ일각선 “임대 시장 수급 원활 ‘상한제’ 해도 임대료 상승 압박 적어”



정부와 여당이 올해 연말 시행을 목표로 전·월세 거래 시에도 주택 매매처럼 30일 이내에 실거래 신고를 의무화하는 ‘전·월세 신고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임차인(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고 임대인(집주인)의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과세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임대인들이 세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해 전·월세 가격이 뛸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택 매매 거래 신고제는 2006년 도입됐지만 전·월세 신고제는 민간 임대주택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도입이 번번이 무산돼 왔다.

■전세 48%, 월세 23%만 임대차 정보 확인

전·월세 시장은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전·월세 시장에 대한 정보는 임차인이 확정일자를 받거나 월세 세액공제를 신고해야 파악이 가능하다. 혹은 임대인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전·월세 시장 규모보다 확인할 수 있는 임대차 정보는 훨씬 적었다. 변세일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센터장이 지난 2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한 ‘주거안정정책 인프라 구축방안’을 보면 주거실태조사를 통해 파악한 전체 임대주택 규모는 전세 292만, 월세 447만 등 총 739만가구로 추산됐다. 그러나 전·월세 실거래를 통해 확인된 규모는 전세 140만가구, 월세는 102만가구에 불과했다. 실제 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 중 전세는 47.9%, 월세는 22.8%가량만 임대차 정보가 확인되는 것이다.

전·월세 거래 정보가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임차인들은 보증금이 적은 경우에는 손실 부담이 크지 않아서, 보증금이 많은 경우에는 증여세 조사 등을 이유로 동사무소에 확정일자를 신고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임차인들에게 이익이 되는 월세 세액공제의 경우도 근로소득자가 아닌 경우에는 받을 수 없어 약 13%가량만 신청하고 있다고 국토연구원은 지적했다. 임대인 입장에서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굳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전·월세 거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적정한 임대료 수준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떼이거나 이중 계약, 사기 계약에 빠질 위험도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임대주택정책을 수립하는 자료가 부족하고 정책효과를 검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전·월세 거래 정보가 없기 때문에 임대소득에 세금을 부과하기도 어렵다.

■전·월세 자동 신고하는 호주·영국

해외 주요국들은 임대차 계약을 자동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보증금 예치를 통해 자동으로 임대차 계약을 신고한다. 임대 보증금 예치 홈페이지를 통해 임차인이 보증금을 입금하면 자동으로 임대차 계약이 신고되는 것이다. 영국은 임대인이 보증금을 30일 이내에 지정기관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하고 있다. 등록하지 않은 임대인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부동산 관리회사가 주로 임대차 계약을 대행하는 일본은 임대차 계약에 대한 신고나 등록제도가 없다. 다만 임대인은 1년에 한 차례씩 의무적으로 국세청에 임대소득 확정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때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임대차 계약의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제도가 개선되는 추세”라며 “월세 중심 시장인 해외에서도 보증금 보호제도가 엄격한 만큼 보증금 규모가 큰 한국은 더욱 보증금 보호제도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전·월세 거래 정보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거래가가 공개되면 임차인의 협상 능력을 높일 수 있고, 전·월세 확정일자 신고와 연동하면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소득에 대한 투명한 과세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임대인들이 늘어난 세 부담을 이유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주장에 막혀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되면 장기적으로는 민간 임대주택의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월세 상한제 도입으로 이어지나

전·월세 신고제에 대한 반대 여론의 밑바탕에는 정부가 단순히 신고를 넘어 가격을 통제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있다. 실제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임대료 현황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월세 신고제 도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전·월세 상한제는 말 그대로 전세와 월세의 인상률을 정부가 제한하는 제도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취임 직후부터 “임대사업자 등록제를 먼저 정착시키고 단계적으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전·월세 신고제가 전·월세 상한제 도입으로 이어지기까지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임대인들이 제도 시행 전 임대료를 미리 올려 단기적으로 전·월세 가격이 급등할 우려가 제기된다. 최근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 완화 등으로 서울 주요 지역의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어 전·월세 시장은 더욱 불안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의 고액 임대주택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점차 전국 단위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전·월세 상한제가 임대료 급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는 의견도 있다. 변세일 센터장은 “전·월세 시장에서 수요가 과다하다면 일각의 우려대로 집주인이 세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길 수 있는 부작용이 있다”면서도 “지금은 수급 상황이 좋기 때문에 전·월세 상한제 도입이 임대료 상승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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