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아시아나 합병은 시장경제 주주자본주의에 어긋나" 학계 일부의 계속되는 비판...법원의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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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24. 오후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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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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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은 사기업…주주 권익 보호해야
해외 경쟁 당국, 기업결합심사도 지켜봐야

"아무도 인수하려 하지 않는 아시아나항공을 산업은행이 경영권을 잃게 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넘겨 그 회사를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로 우리 헌법이 보장한 주주 자본주의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왕상한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4일 오전 서울 서강대에서 기자와 만나 산업은행식 항공업계 재편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왕 교수는 2015년부터 3년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비상임위원을 지냈다. 국제경제법학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패널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50부는 오는 25일 사모펀드 KCGI(강성부펀드)가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첫 심문기일을 연다. 왕 교수는 "한진그룹이 실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을 서둘러 인수하려는 이유에 대해 재판부가 납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강대에서 왕상한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우영 기자

-내일 법원에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 심문기일이 열린다. 쟁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전망하는가.

"한진칼이 산업은행에 대해 결정한 3자배정 유상증자의 목적이 상법과 한진칼 정관에 부합하는지가 쟁점이다. 3자연합은 3자배정 유상증자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한진칼은 ‘자금 조달의 시급성’과 ‘경영상 필요’가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한진칼은 재무적으로 탄탄한 기업일뿐더러 3자연합 등이 유상증자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만큼 법리적으로 볼 때 한진칼이 주장하는 ‘자금 조달의 시급성’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결국 ‘경영상 필요’ 여부가 관건인데 누구도 인수하지 않으려 했던 부실기업을, 실사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서둘러 인수하려는 이유에 대해 재판부가 납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경영상 필요’는 산업은행이나 아시아나가 아니라 3자배정 유상증자를 하겠다는 한진칼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항공 인수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진칼 이사진이 상법에 명시된 선관주의 의무를 다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주식회사 이사진은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한진칼 이사진은 회사가 누구도 인수하려 하지 않은 부실기업 아시아나의 인수 결정을, 기존 주주의 권리를 무시하는 3자배정 유상증자라는 형식을 취했다.

한진칼이나 대한항공의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없어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실사 한번 없이 인수를 서둘러 진행하는 점은 한진칼 주주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조원태 회장과 대립하는 주주의 입장에선 더욱 그럴 수 있다. 게다가 사외이사 3명, 감사 1명을 보장하고 위약시 5000억원의 배상금을 조 회장이 아닌 한진칼이 물어주도록 확약했다. 연말을 넘길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이 더 떨어지는 탓에 산업은행이 급하게 밀어붙이는 점은 알겠다. 그러나 한진칼이 이렇게까지 불리한 협약을 체결하면서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매각하는 과정이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동의한다. 우리 헌법은 사유재산 보장과 시장경제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 중심에 주주 자본주의가 있고 주주 평등 원칙은 그 핵심이다. 주주들에겐 갖고 있는 주식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기대권이 있는데, 한진칼의 인수 결정은 주주 동의 없이 이뤄져 이런 권리를 침해했다.

산업은행은 ‘경영권 분쟁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의결권 없는 우선주를 달라고 하는 게 맞다. 전략적 재무투자자임을 명확히 해야 했음에도 주주가 뽑는 사외이사 3명과 감사 1명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했다. 10% 주식으로 40%가 넘는 주식을 가진 주주도 보유하지 못한 권리를 챙겨간 것이다. 산업은행은 아무도 인수에 나서지 않는 아시아나항공을 경영권 분쟁 중인 총수(조원태 회장)에게 넘기면서 그 회사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것은 중국식이다.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로 우리 헌법이 보장한 주주 자본주의를 무너뜨린 것이다."

(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강성부 KCGI 사장. /조선DB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 위원 출신이다. 두 항공사 결합에 대해 공정위 판단을 어떻게 전망하나.

"공정위에서 기업결합을 심사할 때 시장 지배자적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그래서 경쟁 제한적 효과는 어느 정도 발생할 것인지를 살펴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하면 시장 지배자적 위치에 서는 것은 분명하다. 경쟁 제한적 효과를 부정할 수도 없다. 이 두 가지만 보면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는 게 맞다.

물론 예외는 있다. ‘회생 불가능한 기업’을 인수할 경우가 그렇다. 아시아나 항공을 회생 불가능한 기업으로 판단하면 시장 지배자적 위치에서 경쟁 제한 효과가 있다 해도 기업결합을 승인받을 수 있다. 산업은행이 밀어붙이는 걸 보면 예외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길 기대하는 것 같다. 이런 측면이 부각되면 승인 또는 조건부 승인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인수자 입장에서 모순이 생긴다. 아시아나항공이 회생 불가능한 기업이라면 한진칼이 그런 기업을 인수해야 할 이유는 더욱 없기 때문이다."

-해외 경쟁 당국이 두 항공사의 결합을 승인해 줄 가능성은.

"쉽지 않다. 외국 공정거래위원회도 기업결합을 심사할 때 시장 지배자적 위치, 경쟁 제한성 등 두 가지가 핵심 검토 대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항공산업의 특별한 상황을 고려할 여지는 전무하다. 두 기업이 국내에서 결합 승인을 받는다고 해도 해외에서 승인을 받기까지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만큼 두 기업의 결합에서 얻으리라 주장했던 시너지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진그룹이 전날 ‘국내 항공산업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대승적 차원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항공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다. 하지만 한진칼은 민간기업이다. 주주가 주인이다.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항공업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지는 정부의 몫이다. 민간기업인 한진칼이 주주의 권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책임을 분담할 이유는 없다.

한진칼도 어려운 상황에서 ‘회생 불가능한’ 기업을, 그것도 사외이사 3명, 감사 1명을 보장해주면서까지 인수하는 게 합리적인 결정일까? 아니라고 본다. 산업은행은 경영권 분쟁 중인 총수(조원태 회장)를 10% 주식으로 좌지우지하면서 민간기업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리를 사실상 확보했다. 이것을 다른 주주들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라고 본다."

-산업은행과 한진그룹은 법원에서 가처분 인용이 나올 경우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급한 건 산업은행이다. 한진칼이 아니다. 그런 산업은행도 법원에서 가처분 인용이 나올 경우 ‘플랜B’가 마련돼 있다고 했다. 한진칼 입장에서는 아시아나항공을 반드시 인수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인수가 무산된다 해서 문제될 건 없다. 아시아나를 인수하는 게 정말로 경영상 필요하다면 인수 경쟁자가 아무도 없는 지금 이렇게 서둘러 인수를 진행하는 것보다 아시아나항공을 제대로 실사하고, 최대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서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게 한진칼 이사진이 해야 할 일이다."

[김우영 기자 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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