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치 이자 내드립니다"…세입자 유혹하는 빌라 꼼수 주의보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최근 자취방을 알아보던 직장인 박소라(27) 씨는 부동산 공인중개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박씨는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로 최대 1억원을 마련할 수 있는데, 중개인은 박씨에게 전세 보증금 1억2000만원짜리 집을 소개하면서 박씨가 2000만원을 추가로 대출할 경우 이에 대한 2년치 이자금을 집주인이 부담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 등 무주택자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전세자금대출 상품 종류가 많아지면서 박씨처럼 ‘이자지원’이라는 조건을 내거는 임대인이 늘고 있다. 청년 전용 상품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다는 점을 이용해 집주인들이 목돈을 만들거나, 공실 비중이 높은 신축 빌라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청년 및 신혼부부 대상 전세자금대출 상품 안내 카탈로그. /권유정 인턴기자

◇2030 저금리 대출 노려 ‘업 계약’ 가능성도

지난 27일 부동산 직거래·중개사이트를 통해 서울 지하철 5호선 화곡역 인근에 전세로 나온 원룸과 투룸을 검색하자 2000여개 물건이 쏟아졌다. 이 중에서 전세 보증금 1억~2억원대 원룸과 투룸 대부분은 신축 빌라였고, 상당수는 ‘이자지원 포함 금액’, ‘건물주 이자지원 문의’ 등이라는 문구가 달려있다.

화곡동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집주인에게 이자를 지원받고 신축 주택으로 이사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며 "추가로 대출을 받더라도 월 납부이자는 25만~30만원 수준이고, 이 중 일부는 집주인이 부담하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청년세대가 받을 수 있는 전세대출은 크게 시중은행 자체 대출과 정부 지원 대출 두 가지로 나뉜다. 이때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 등의 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 신혼부부 전용 전세자금대출 등 버팀목 정책대출의 금리는 연 1.2~2.9% 수준으로 은행 자체 대출보다 낮은 편이다.

자격 조건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만 34세 이하 중소기업 재직 중인 청년이거나 신혼부부 등의 경우 조건만 맞는다면 기금에서 지원하는 저금리 대출 상품을 통해 자금을 빌릴 수 있다"며 "전세 보증금을 실제 거래액보다 높이는 ‘업(up) 계약’과 같은 꼼수를 써서 상대적으로 적은 이자금을 지원하고 목돈을 마련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모든 임대인이 목돈을 굴리기 위한 수단으로 금리가 낮은 청년 대출 상품을 이용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임차인과 임대인이 서로 합의해 이자지원 등의 편법을 이용하는 사례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인근 다세대주택 단지. /권유정 인턴기자

◇"비워두기 싫지만 가격 내리기는 더 싫어"

이 같은 이자지원은 신축빌라가 몰려 있는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강서구 화곡동, 금천구 가산동 등이 그렇다. 지난해 9·13 대책 발표 이후 아파트 규제가 심해지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적고 투자금액이 낮은 시장을 찾아나선 투자자의 발길이 닿은 곳이 바로 다세대 주택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빌라 시장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세 세입자를 끌어오면서도 가격을 낮추지는 않는 전략의 하나로 이자지원이 등장했다고 보고 있다.

마포구 동교동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홍대나 신촌 같은 지역에는 이자지원 사례가 거의 없다"며 "신축빌라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한 5호선 까치산역이나 화곡역 등 강서구 주변에서 공실을 줄이려고 분양팀이 직접 부동산에 이자를 지원하는 등 혜택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 정보를 공유하는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자 지원이 끊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글도 자주 눈에 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한 이용자는 "까치산역 근처 풀 옵션 신축빌라 전세를 알아봤다"면서 "1억8000만원 중 5000만원에 대한 이자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는데 의심스럽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자지원을 제안하는 거래를 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등포구청역 인근 B공인 관계자는 "이자지원을 얘기하면서 신축 빌라로 유도할 때는 경계해야 한다"면서 "공실이 늘어나니 어떻게든 세입자를 들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전세금을 떼일 우려도 있다. 문래동 W공인 관계자도 "빌라 집주인도 빚을 내 투자를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자칫 전세금을 떼일 우려도 있다"며 "계약이 끝난 후 임대인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는 전세보증보험 제도를 활용하는게 좋다"고 말했다.

[이진혁 기자 kinoeye@chosunbiz.com]

[권유정 인턴기자 yjkwon1123@gmail.com]



chosunbiz.com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