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캥카와 탕구리를 알고 있습니까?
두 포켓몬은 1세대부터 등장한 유서 깊은 포켓몬인데
재미있게도 둘다 이상한 공통점을 한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족과의 관계가 설정상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탕구리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탕구리는 보시다시피 머리에 해골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포켓몬입니다.
이것만으로도 탕구리는 굉장히 특색있는 포켓몬이지만
제작진들은 탕구리에게 더욱 특별한 설정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탕구리가 머리에 뒤집어쓴 해골은 바로 어머니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설정인데요.
그러나 우리는 슬픔을 뒤로 하고 이 설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탕구리는 세상에 한두 마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니까요.
탕구리는 1세대에선 포켓몬타워에서 등장하고 3년 뒤인 2세대에선 근처의 돌산터널에서 출몰합니다.
그외에도 4세대, 6세대, 7세대에서도 특정 지역에서 출몰하는 포켓몬인데
그렇다면 야생에서 등장하는 모든 탕구리들은 전부 어머니를 잃은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모든 탕구리가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그렇다면 당연히 어머니를 잃지 않아서 해골을 뒤집어쓰지 않은 탕구리도 존재해야할 것인데
여기서 더욱 이상한 것은 바로 2세대부터 등장한 교배 시스템입니다.
1세대는 교배 시스템을 상정하지 않고 설정을 짰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2세대에서 우리는 포켓몬을 교배시키고 알에서 부화하는 포켓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알에선 갓 태어난 새끼 탕구리가 해골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도감 설명에는 그것이 멀쩡히 살아있는 어머니의 해골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탕구리의 해골이 어머니의 것이라는 도감 설명은 무언가 이상합니다.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해골을 쓰고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당연히 알에서 갓 태어난 새끼 탕구리는 맨 얼굴을 보여야 하고
야생에서도 해골뼈를 쓰지 않은 탕구리가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정적인 모순을 지닌 포켓몬은 탕구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세대에 함께 등장한 캥카도 비슷한 설정 오류를 가지고 있거든요.
캥카는 굉장히 특이한 포켓몬중 하나입니다.
가족 포켓몬이라는 분류에 걸맞게 캥카는 항상 새끼 캥카를 데리고 다니는데
물론 여러마리로 군체를 이루는 포켓몬은 굉장히 많습니다만
이렇게 자신의 새끼를 직접 데리고있는 포켓몬은 흔치 않습니다.
캥카의 도감 설명 또한 새끼와 관련된 내용밖에 없습니다.
새끼는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지만 자립한다고 하는데 그전까지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새끼 캥카가 자립하면 과연 어떻게되는 것일까요?
당연히 주머니가 비어있는 캥카가 존재해야할 텐데요.
물론 새끼 캥카는 자립하기 전까지 주머니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에
캥카의 출산율이 높아서 확률적으로 야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캥카가 새끼를 데리고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억지스러운 가정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시나 2세대에서 등장한 교배 시스템입니다.
그렇습니다. 캥카는 진화형이 없는 단일진화 포켓몬이기 때문에
알에서 갓 태어난 캥카는 보란듯이 주머니에 새끼 캥카를 데리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새끼 캥카를 지닌 채로 태어나는 새끼 캥카라니,
이것은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제작진들이 캥카와 탕구리를 처음 제작했을 때
교배 시스템과 알 부화 시스템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게임 시스템에 의한 모순은 정말로 많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교배 시스템에 의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포켓몬 제작진들이 캥카의 새끼와 해골 없는 탕구리를 따로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두 포켓몬은 설정 문제을 일으키면서 까지 당연히 존재해야할 것들을 만들지 않은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탕구리 캥카 가족설을 떠올릴 수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매우 유명했던 이 가설은 탕구리와 캥카의 생김새가 굉장히 비슷하다는 사실에서 착안하여
사실 사고로 어미를 잃은 캥카의 새끼가 탕구리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확실히 캥카와 탕구리는 여러모로 닮은 부분이 많긴 하거든요.
특히 탕구리가 진화한 텅구리의 경우 캥카와 색깔, 색조합, 배의 무늬,
꼬리의 두께와 비율, 눈매 등 굉장히 닮은 부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러한 공통점에서 착안하여 사람들은 캥카가 죽고 남겨진 새끼가
어미의 해골을 뒤집어쓰고 진화한 모습이 텅구리라는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유명한 가설을 그동안 포스트에서 다루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탕구리 캥카 가족설'이 분명히 매우 감성적이고 훈훈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나
두 포켓몬의 외모가 은근히 비슷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괴담에 가까운 가설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번에 우연히 교배 시스템에 의해 설정에 모순이 생긴 두 포켓몬에 대해
여러가지 자료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먼저 텅구리의 도감 설명을 보시면 '어미를 만날 수 없는 슬픔을 극복한 탕구리'가
늠름하게 진화한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미를 잃지 않아 슬픔을 극복할 필요 없었던 탕구리는 어떻게 진화하는 것일까요?
이 설명은 마치 탕구리에게 원래 정해져 있었던 평범한 진화과정이 있었다고 말하는것 같습니다.
두번째 의문점은 바로 탕구리의 서식지입니다.
저는 앞서 탕구리가 야생에서 등장하는 하나의 개체라고 했지만
사실 탕구리의 서식지는 전 세계적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매우 좁습니다.
1세대, 2세대에서는 보라타운 근처인 포켓몬타워, 돌산터널에서만 서식할 뿐이며
4세대는 특별 이벤트에 가까운 대량발생에서만 가끔 등장하며
6, 7세대도 반짝임의 동굴, 벨라화산공원에서만 등장하는 포켓몬입니다.
그러니까 탕구리는 사실상 보라타운 근방, 반짝임의동굴, 벨라화산공원에서만 서식합니다.
이것은 마치 탕구리가 야생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것이 아닌
무언가 특정한 상황에서만 야생에 한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리고 그 특정한 상황을 우리는 앞서 이야기했던 캥카에게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캥카의 6세대, 7세대 서식지는 탕구리와 완벽히 일치하거든요.
그렇습니다. 탕구리는 캥카가 등장하는 지역에서만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죽은 캥카의 새끼들이 해골을 뒤집어쓰고 탕구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고 제작진들이 이런 유명한 괴담에 영향을 받아
최근 작품에서 일부러 서식지를 이렇게 설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아내려면 우리는 포켓몬의 초창기 시리즈인 1세대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먼 과거의 작품이야말로 제작진들이 처음 기획한 근본적인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만약 정말로 탕구리가 어미를 잃은 새끼 캥카라면
우리는 1세대 게임에 등장한 두 포켓몬에게서 확실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1세대의 가장 유명한 사건중 하나인 로켓단의 보라타운 테러를 기억해야 합니다.
1세대 게임에서 우리는 로켓단의 수많은 만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로켓단이 오랜 시간 포켓몬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실제로 보라타운에서 로켓단이 탕구리의 어미를 죽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건은 로켓단이 딱 한마리의 포켓몬만 겨냥해서 사냥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포켓몬들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탕구리의 어미가 죽은 것인데요.
제가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놀랍게도 캥카가 학살당한 흔적이 1세대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포켓몬의 시작인 1세대에서 우리는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캥카의 서식지가 오로지 사파리존 하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사파리존은 유흥을 위해 인공적으로 포켓몬들을 풀어놓은 일종의 동물원과 비슷한 장소인데
그러니까 캥카는 야생에서 등장하지 않는 이상한 포켓몬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냥꾼들에게 남획당해 멸종위기에 처한 파오리도 1세대에서 야생 서식지가 없었습니다.
제작진들은 이렇게 포켓몬들의 서식지를 통해 생태를 묘사하곤 했는데요.
그런데 캥카는 도대체 왜 야생에서 자취를 감춘 것일까요?
파오리는 맛있어서 남획당했지만 캥카는 딱히 이유가 될만한 설정이 없었습니다.
그저 단순히 가족 포켓몬에 불과했던 캥카는 도대체 왜 야생에서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로켓단이 보라타운 근처에서 학살한 포켓몬이
바로 야생에서 자취를 감춘 캥카일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로켓단이 멸망하고 생태 회복이 이루어진 3년 뒤에는 캥카가 다시 야생에서 등장하거든요.
캥카는 서서히 개체수를 회복하였는지 이제 야생에서도 충분히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위치가 하필이면 돌산터널인데 놀랍게도 이 지역은
바로 앞서 말한 로켓단의 대량학살이 일어난 보라타운의 북쪽과 바로 맞닿아있습니다.
그러니까 보라타운 근처에서 서식하던 캥카가 로켓단에 의해 잠시 멸종 위기에 처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탕구리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캥카의 학살이 일어난 장소가 매우 가까운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1세대의 탕구리 서식지도 정말 특이하다는 것입니다.
탕구리는 야생에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위치는 자연스러운 야생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 구조물인 포켓몬타워 내부입니다.
탕구리는 캥카의 서식지인 돌산타워 근처에 있는 포켓몬타워에서만 등장하는데
이렇게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서식지를 탕구리가 지니고 있다는 것은
마치 1세대 시점에서 로켓단에게 무수히 남획당한 캥카의 새끼들이 해골을 뒤집어쓰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포켓몬 세계의 묘지인 포켓몬타워에 서식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탕구리의 2세대 서식지인데
탕구리는 캥카와 동일한 돌산터널에서만 등장하는 포켓몬이었습니다.
이렇게 두 포켓몬이 수많은 연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한가지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는 기존에 알고 있었던 매우 단순하고 시시한 괴담으로 치부할 수가 없습니다.
포켓몬 세계는 틈만나면 외형이 변질되는 진화가 일어나는 특이한 세계관입니다.
그리고 캥카의 새끼는 3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돌봐줘야만 성장을 마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미가 죽어서 홀로 남겨진 새끼 캥카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요?
분명 그 외형은 기존의 캥카의 모습과는 굉장히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게임에서 새끼 캥카라는 독립적인 포켓몬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해골을 뒤집어쓰지 않은 탕구리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어미를 잃어야지만 존재가 가능한 탕구리는 캥카의 서식지 근처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며
우리는 마침 캥카가 학살당한 흔적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보라타운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탕구리 어미는 보통 텅구리의 외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도감 설명에 의거하면 저 텅구리 또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극복했을 것입니다.
로켓단은 1세대 시점에서 이미 오랜 시간 활동했던 단체이기 때문에
탕구리가 세대를 거듭할 정도로 오랜 시간 학살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여기까지 조사하고도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해석의 여지에 따라 사실이 될 수도 거짓이 될 수도 있었거든요.
만약 이야기가 여기에서 그쳤다면 저는 이번 칼럼을 쓰지 않았겠지만
최근 공개된 1세대의 삭제된 포켓몬 목록에서 저는 확실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텅구리는 사실 한번더 진화하는 포켓몬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라진 포켓몬은 마치 보란듯이 새끼 포켓몬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주머니에 새끼를 지니고있는 캥카처럼 보이는데요.
어쩌면 텅구리는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했어도 캥카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것 같습니다.
비록 주머니가 없을지라도 자신의 새끼를 품에 꼭 안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오늘 알아본 캥카와 탕구리의 모든 미스테리를 해결해주는것 같습니다.
오늘은 탕구리와 캥카를 둘러싼 미스테리를 한번 알아보았습니다.
기존의 괴담으로 치부되던 캥카와 탕구리 이야기는 근거가 매우 빈약했지만
오늘 여러가지 조사를 거치다보니 탕구리와 캥카의 기묘한 관계는 어느정도 사실로 보입니다.
물론 제작진들이 공인하지 않는 이상 그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들이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요?
괴담은 괴담이기에 매력적인 것이며 미스테리는 해결되지 않기에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미스테리의 진위여부가 아닌
그 안에 숨겨진 메세지와 이야기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간에게 학살당해 죽은 캥카와 어미를 그리워하며 홀로 단련하는 탕구리의 이야기는
그 진위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가치있는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될 것입니다.
-고북손의 포켓몬도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