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정보가 있었다, 말씀은 나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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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1.19. 오후 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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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카오스’ 작가 제임스 글릭

북소리부터 양자컴퓨터까지

정보의 ‘빅히스토리’ 엮어내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척하지만 갈수록 의미가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다.”(프랑스 철학자·인공두뇌학자 피에르 뒤피) 동아시아 제공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김태훈 옮김/동아시아·2만5000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우리에게 말한다. “바벨의 도서관(그가 1914년에 쓴 단편 제목)이 모든 책을 소장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 모든 개인적이거나 세계적인 문제의 명확한 해결책은 도서관에 있는 육각형 진열실들 중 어딘가에 있었다. 우주는 해명되었다.” 그러고는 비탄이 찾아왔다. 찾을 수 없는 귀중한 책들이 무슨 소용인가? 박제된 완벽함 안에서의 완전한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카오스> 등 교양과학서 베스트셀러 작가 제임스 글릭이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 2011) 마지막에 쓴 이 구절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구글, 위키피디아, 유튜브, 전국 디엔에이(DNA)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 세상에 살게 됐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진짜 무엇을 아는지 회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글릭은 정보의 역사와 이론을 풍성하게 통섭적으로 풀어놓은 이 책에서 끝까지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구글, 위키피디아, 유튜브, 전국 디엔에이(DNA)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 세상에 살게 됐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진짜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을까. 동아시아 제공
1952년, 미국의 수학자·전기공학자 클로드 섀넌(1916~2001)은 기계(인공지능)가 인간과 체스 대결을 벌이면, 3명의 프로그래머가 6개월 동안 매달려야 대형 컴퓨터로 아마추어 수준 정도의 체스를 둘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어디까지나 추정이었다. 아이비엠(IBM)의 첫 체스용 슈퍼컴퓨터 딥소트(깊은 생각)가 등장한 것은 1989년이었다. 그 해에 딥소트는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러시아(소련)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에 도전했으나 4전 전패로 끝났다. 1996년에 등장한 컴퓨터 ‘딥블루’는 카스파로프에게 1승5패로 한 번 이겼고, 1997년 업그레이드 뒤의 재도전에선 2승3무1패를 거둬 마침내 인간을 꺾었다. 1950년대에 섀넌은 체스의 가능한 게임 수를 대충 10의 120제곱으로 계산했다. 그 반세기쯤 뒤에 딥블루가 인간을 이겼고, 그 20년 뒤 알파고가 체스보다 훨씬 더 경우의 수가 많다는 바둑의 한·중·일 최고수들을 연파했다.

<인포메이션>은 섀넌을 앞세워 이야기를 끌어간다. 1948년 벨연구소가 전자공학에 혁명을 일으킨 반도체,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해에 벨연구소가 내놓은 최고의 걸작은 수학부서 연구원 섀넌의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이었다. 글릭은 “이 논문을 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썼다. ‘정보이론의 아버지’라 불린 섀넌은 조지 불의 논리대수(불 대수)를 전기회로로 구현한 디지털 회로 이론을 창시했다. 정보 측정의 기본단위인 ‘비트’(bit)도 당시 32살의 섀넌이 혼자 만들었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구글, 위키피디아, 유튜브, 전국 디엔에이(DNA)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 세상에 살게 됐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진짜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을까. 동아시아 제공
책은 정보언어의 발명·발달, 그 역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먼저 아프리카의 북. 북소리의 고저장단만으로 먼 거리에 일상생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했던 아프리카인들의 정보전달 수준은 당시 유럽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다음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설형문자와 숫자, 알파벳의 등장이다. 파스칼과 라이프니츠를 거쳐 기계식 계산기를 처음 만든 찰스 배비지, 바이런의 딸로 뛰어난 수학자였던 어거스타 에이다 바이런 등의 기호 언어, ‘해석기관’, 인코딩과 프로세싱 정보 창안을 거쳐 전신과 모스 부호로 나아간다. 1845년 무렵 전신 때문에 신문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전화사용의 일반화는 전기와 전파의 정체를 규명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전자기방정식 이후에야 가능했다. 1860년대에 맥스웰은 전자파와 자기장, 그리고 빛 자체가 모두 단일한 힘의 발현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다비드 힐베르트, 앨런 튜링, 쿠르트 괴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 엔트로피 개념을 도입한 루돌프 클라우지우스, 계산기 에니그마와 에니악, 다시 조지 밀러와 섀넌의 정보 엔트로피 개념을 거쳐 ‘디지털 정보통신’이 등장한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구글, 위키피디아, 유튜브, 전국 디엔에이(DNA)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 세상에 살게 됐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진짜 무엇을 아는지 알고 있을까. 동아시아 제공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촉발한 분자생물학의 탄생과 디엔에이 이중나선구조 발견에 이르는 과정,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밈(meme)에 이르는 과정은 그들 세기적 발견·발명이 정보이론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도 밀접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슈뢰딩거에 따르면 생명이란 ‘우주의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을 거부하는 존재다. 생물이란 외부의 에너지, 질서, 낮은 엔트로피 상태(네거티브 엔트로피)를 빨아들이고 내부의 높아진 엔트로피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동안만 살아 있다.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우리는 생존 기계, 즉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 분자를 보존하도록 맹목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로봇 이동수단”이며, “몸은 유전자의 식민지”다. 그의 문화적 정보 복제자인 ‘밈’ 설에 따르면 “인간 두뇌는 밈이 사는 컴퓨터”일 뿐이다.

결국 생명 자체가 정보요 우주 진화의 주인이 정보란 말인가. 지식철학자 프레드 드레츠키는 말했다. “태초에 정보가 있었다. 말씀은 나중에 왔다.”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는 이를 일러 “비트에서 존재로”라고 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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