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MSI 럼블 스테이지 4일 차는 LCK 팬 입장에선 숨막히는 하루였다. T1이 1승 1패를 거뒀기 때문이다. 경기력이 흔들리고 있던 와중에 또 패배를 기록하자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것도 패배한 것이 상대적 약팀으로 평가받는 EG였기에 충격이 더했다.
그래도 T1은 다음 경기였던 G2와의 대결에서 파괴적인 면모를 오랜만에 보여주면서 승리를 챙겼다. 이 승리가 더욱 반가웠던 건 그동안 MSI 럼블 스테이지 들어 T1이 흔들렸던 경기력과 밴픽에 큰 변화를 준 채 이겼기 때문이다.
■ T1은 시간에 쫓겼다
T1이 럼블 스테이지 들어 패배했던 경기들을 곱씹어보자. T1은 항상 초반에 강력한 조합을 토대로 글로벌 골드 격차를 크게 벌렸다. 첫 경기였던 G2전에 T1은 20분 직전까지 글로벌 골드 격차를 5천 정도 벌린 바 있다. 초반부터 좀 더 많은 교전이 나왔던 RNG전에도 T1은 유리한 고지에 먼저 올랐다. 이때도 T1이 글로벌 골드에서 2~3천 정도 앞섰다.
4일 차에 열렸던 EG전에도 초반에 유리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15분쯤 됐을 때 양 팀의 글로벌 골드 격차는 5천 가량. '클템' 이현우 해설위원이 최근 언급했던 것처럼 LCK였다면 T1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T1은 2022 LCK 스프링 스플릿에서 초반부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이를 힘으로 굳히는 플레이로 전승 우승을 거둔 바 있다.
하지만 LCK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럼블 스테이지에서 T1은 꼭 한 번씩 경기 중반에 크게 한 번 넘어졌고 끝내 이를 복구하지 못했다. 1일 차 G2전에는 20분경 탑 라인 합류전에서 한타 패배를 맛봤고, RNG전에서는 탑 2차 포탑 다이브 과정에서 무리하다가 킬을 다수 내줬다. EG전에는 상대 바텀 억제기를 파괴하다가 상대의 저력에 대패하기도 했다.
이게 T1을 급하게 만들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현상금' 시스템 때문이었다. 불리한 팀이 유리한 팀을 상대로 킬을 올리면, 킬과 어시스트로 얻는 기본 골드 외에 추가적인 현상금 골드를 획득한다. 이에 양 팀의 격차가 한 번에 크게 줄어든다. 유리했던 팀 입장에선 초반부터 착실히 벌려놨던 격차가 단박에 좁혀지는 셈이다.
T1이 급해진 이유는 또 있다. 럼블 스테이지 동안 T1이 고수했던 조합 콘셉트 때문이었다. T1은 MSI 럼블 스테이지에서의 주요 메타가 한타 위주의 조합인데 반해 운영과 포킹 위주의 조합을 고집했다. 이 조합은 승기를 잡고 굴릴 땐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한타 조합인 상대에게 격차를 허용한 순간부터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형태다. 다음부턴 어쩔 수 없이 계속 정면 한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일 차 G2전에 T1은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필두로 한 스노우볼 특화 조합을 꾸렸다. G2는 오른과 다이애나-야스오 등 한타 조합을 꺼냈다. RNG전에 T1은 조이와 이즈리얼을 중심으로 한 포킹 조합 형태였고. RNG는 후반 강점이 살아나는 조합이었다. EG전에 T1의 조합은 초반 교전에 능했고, EG는 후반 캐리롤을 맡을 챔피언들이 다수 포진한 조합을 갖췄다. 세 경기 내내 T1 조합의 공통점이라면 초반부터 승기를 잡고 상대가 크기 전에 빠르게 승기를 굳혀야 한다는 것.
T1이 다급하게 바론에 집착했던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더 승기를 내주고 시간을 허용하기 전에, 우리가 아직 유리할 때 바론을 획득해서 스노우볼을 다시 굴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타가 열리면 아직 유리한 점을 활용해 다시 격차를 낼 의향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T1은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었다. 상대의 조합이 T1보다 한타로 넘어가면 훨씬 강하다는 걸 말이다. 실제로 T1은 패배했던 경기들 모두 무리해서 바론을 때리다가 뒤를 덮친 상대에게 무력하게 대패해 경기를 그르쳤다. G2전에도, RNG전과 EG전에도 T1은 모두 바론 앞에서 허물어졌다. 상대 조합이 한타에서 더 좋은데 먼저 바론을 때려 한타를 유도한다. 확실히 이상한 전략이었다.
■ 확실히 달라졌다, 하지만 하나 더
다행히 T1은 4일 차 EG전 패배 이후, G2를 상대로 확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중요한 타이밍에 얻은 귀중한 승리였다. 이 승리로 T1은 5승째 거두며 2위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조합 구성이었다. T1은 더 이상 조이나 트위스티드 페이트 같은 포킹이나 운영 특화 챔피언을 탐내지 않았다. '페이커' 이상혁에게 곧장 이번 MSI에서 각광받는 미드 챔피언인 아리를 쥐여줬다. 아리는 조이나 트위스티드 페이트와는 결이 달랐다. 좀 더 꽝 붙는 한타와 싸움 지향적인 픽이다.
바텀에서도 더 이상 현 MSI 메타에 순응하지 않고 '구마유시' 이민형이 자신감을 보였던 챔피언을 쥐여줬다. 아펠리오스였다. 후반 캐리력을 마음껏 뽐내기 좋은 챔피언이었다. 거기에 럼블과 노틸러스 등 싸움을 좋아하는 챔피언들도 다수 갖췄다.
결과는 낙관적이었다. T1은 초반부터 G2를 거칠게 압박했고 이를 잘 굴리며 상대를 압살했다. 초반에 킬을 다수 내주긴 했지만 깔끔하고 빠른 승리였고 T1이 LCK 스프링 스플릿에서 계속 보여줬던 강점이 다시 드러났다.
이대로 글을 끝내면 좋겠지만, 아직 T1에게 검증해야 할 부분이 남았다. 이번 G2전 완승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앞서 패배했던 경기들에선 노출됐던 단점이기도 하다.
바로 상대가 상황을 팽팽하게 만들었을 때의 경기 운영 능력과 판단력이다. 이번 G2전에선 그런 상황이 아예 나오지 않아 다음 경기에서 T1이 중반 이후에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 지 파악할 수 없었단 뜻이다.
가혹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T1은 MSI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고 그만큼의 기대도 받고 있다. 그럼 증명해야 한다. 취약한 조합을 버리고 현재 유행하는 메타와 자신들이 좋아하는 챔피언들 간 균형을 잘 맞췄고 그걸 통해 승리했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위기 상황이 경기 중에 또 닥쳤을 때 바뀐 조합과 함께 이전과는 '확 달라진' 대처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MSI에서는 한타에 좋은 조합이 대세다. T1도 그런 걸 잘하는 팀이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자신들도 잘하는 걸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포킹은 나쁘고 한타는 좋다'는 생각을 이번 대회 내내 항상 해주길 바란다.
박범 기자(Nswer@inv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