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지옥’ 김포에 쏟아지는 GTX 공약... 지역 반응은 오히려 “희망 고문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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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2.03. 오후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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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교통난 때문에 서울에 있는 회사로 통근하는 남편이 매일 파김치가 돼서 돌아와요. 이 동네에 교통 대책이 정말 절실한 건 맞는데, 표를 얻겠답시고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공약을 남발하는 걸 보면 천불이 납니다.”

27일 김포시 장기동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최상현 기자

지난달 27일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한 아파트 앞에서 만난 주민 이모(37)씨는 ‘최근 여·야 대선 후보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공약을 내놓고 있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분통을 쏟아냈다.

김포는 이견이 거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교통 지옥’이다. 교통 인프라가 도시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예컨대 김포 골드라인 장기역 인근에 있는 아파트만 24개 단지, 2만 가구에 달하는데, 이를 고작 2량짜리 경전철로 감당하다보니 매일 아침 전철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된다.

버스도, 자차도 해답은 아니다. 김포 신도시에서 서울까지 운행하는 광역급행버스 M6117번과 M6427번, G6000번 등은 입석까지 꽉꽉 들어차는 지옥 버스로 악명이 높고, 김포한강로나 김포대로 등에서도 매일 상습적인 교통 체증이 빚어진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4차 철도망 구축 계획을 발표하며 서부권광역급행철도를 김포 장기와 검단신도시에서 부천종합운동장까지만 운행하는 ‘김부선’으로 규정했을 때 극심한 반발이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적극적인 의견 표출에 나서자, 국토부는 한발 물러서 지난 6월 GTX B 노선을 공용해 용산까지 직결하는 ‘김용선’을 절충안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경기도 민심’을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추가 노선 신설 공약을 발표하면서 다시 지역 주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달 12일 경기도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GTX D·E·F 노선을 신설해서 서울 도심까지 30분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GTX D 노선으로 김포~강남~팔당의 수도권 남부를 동서로 연결하고, GTX E 노선으로 영종, 청라, 검암~김포공항~남양주~구리의 수도권 북부를 동서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GTX F 노선은 고양을 출발해 안산, 수원, 용인, 성남, 하남, 의정부를 지나 다시 고양으로 돌아오는 수도권 순환선으로 제시됐다.

이재명 후보도 지난달 24일 GTX A·B·C 노선의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신규 노선을 추가하는 ‘GTX 플러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GTX A+ 노선은 동탄∼평택 연장을 추진하고, GTX C+ 노선의 경우 북부는 동두천까지, 남부는 병점·오산·평택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또 GTX D는 당초 경기도 요구대로 김포~부천~강남~하남 구간으로 만들겠다고 했고, GTX E(인천~시흥·광명신도시~서울~구리~포천)와 GTX F(파주~삼송~서울~위례~광주~이천~여주) 노선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두 대선후보는 공통적으로 교통 지옥으로 악명이 높은 김포에 대해 지역의 숙원 사업인 ‘강남 직통’을 공언했다. 인천 검단신도시와 김포 주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왔던, 김포와 검단신도시를 강남·하남까지 직접 연결하는 ‘김하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었다. 김포에서만 15년을 살았다는 정모(42)씨는 “매번 선거철만 되면 이런 노선, 저런 노선을 놔주겠다는 공약이 쏟아지는데, 막상 당선되고 나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말 바꾸기가 일쑤였다”면서 “강남 직통은 언감생심이고, ’김용선’도 겨우 확정된 판에 완공이나 빨리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퇴근길 김포공항역에서 귀가하는 시민들이 김포골드라인을 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윤예원 기자

장기동 A공인중개업소 소장은 “공약을 보면 기존 GTX 계획을 엎고 완전히 새로 짠다는 것인데 그러면 노선 준공까지 시간만 더 낭비하는 꼴이 될 것”이라면서 “2023년에 개통한다던 GTX A노선도 5년이 더 늦은 2028년에야 겨우 완전 개통된다고 하는데, 희망 고문으로 교통 지옥에 시달리는 기간만 연장하는 게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인근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도 “지난해에야 원래 전국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었던 데다 GTX D 호재가 겹쳐 김포 집값이 가파르게 올라갔던 것이지, 지금은 이런 저런 공약에도 집값이 미동도 없다”면서 “거래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시세보다 5000만~7000만원 저렴한 매물만 간신히 계약이 체결되는 수준이니, 아무도 공약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양당 후보의 GTX 추가 노선 신설 공약이 애초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광역교통시설, 특히 철도는 도로에 비해서도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면서 “정부 예산이나 행정력 면에서 기존에 발표한 4차 철도망 계획을 진행하기에도 과부하가 걸린 상태일 텐데, 추가 노선을 신설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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