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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두렵던 인테리어 직원, 치과의사로 깜짝 변신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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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4. 16:3735,617 읽음

장지혜 신촌유앤아이치과의원 대표원장

“작은 목소리는 아무리 힘 줘 외쳐도 성량이 커지지 않았어요. 되려 염소 소리가 났죠.”

내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책 ‘날마다 28’ 작가이자 신촌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는 장지혜(42)씨. 그는 스스로를 전형적인 내향인이라고 했다. 대학교 발표 수업에서 목소리가 크게 나오기는커녕 너무 떨려 염소 소리가 나왔다고 하니, 그녀의 내향성은 증명된 셈이다. 

그런 장씨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갖고 있는데, 원래 인테리어 회사에서 건축 도면을 살펴보는 일을 했다. 연세대 생활과학대를 졸업한 후 건축기사, 실내건축기사 자격증을 따고, 인테리어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때, 돌연 치의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운명처럼 바뀐 진로. 그렇게 그는 지금 매일 치아를 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장씨는 그의 인생이 내향성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어떤 사연일까. 

장지혜 신촌유앤아이치과의원 대표원장. /jobsN, 본인제공

-스스로를 ‘내향치의’라고 소개하는 이유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어디 가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 할 정도로 전형적인 내향인에요. 이런 제 성격에 하자가 있는 줄 알고 외향인을 흉내 내기도 했지만, 성향은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결국 제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죠. 그렇게 ‘내향적인 치과의사’를 줄여 ‘내향치의’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향적으로 직업을 바꾼 이유는 뭔가요?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 진로 선택을 앞두고 생활과학대학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문과와 이과를 반반 나눠 뽑는 데다, 제가 관심을 둔 디자인 수업도 있어서 이거다 싶었죠. 그곳에서 생활디자인과 주거환경학을 이중전공했어요. 

주거환경 분야는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너무 재밌었어요. 도면을 그리는 작업은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이 즐거웠어요. 그런데 실제로 일을 시작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성향’이란 변수를 만났죠. 인테리어 회사에 취업해 설계도면 만드는 일을 했는데, 현장에 나갈 일이 많았어요. 내향적인 성향인 전 굉장히 에너지 소모가 많았어요.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했고,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에 순발력있게 대응해야 했죠. 직접 샘플을 들고 다니면서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일도 쉽지 않았고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 전에는 제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했지 성향까진 고려하지 못했거든요. 자신감이 없어지고 우울이 찾아왔죠. 하지만 그대로 주저 앉을 수 없다고 생각해 방향 전환을 했어요.”

대학에서 주거환경학을 전공하던 시절 장지혜씨. /본인제공

-수많은 직업 중 치과의사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대학원을 졸업할 때 쯤 제가 받던 교정치료가 끝날 무렵이었어요. 치과에 오래 오가는 동안 치과의사가 하는 일을 살펴볼 수 있었죠. 여러가지 기구로 장치를 조정하는 의사를 보면서 치과의사는 손으로 하는 일이 참 많다고 생각했어요. 내적 에너지를 쏟을 수 있고, 경청을 잘 하는 제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판단했죠. 이후 1년간 준비 과정을 거쳐 치의학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그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치의학은 예술이자 과학이다’라는 교과서에 실린 문장을 보고 너무 공감했어요. 예술과 과학,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들어있는 문장이거든요. 

물론 주거환경학과 치의학은 엄연히 다른 분야지만, 연결고리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테리어 회사에선 설계 도면을 주로 그렸고, 치과에선 교정 치료를 하는 등 손을 사용한 치료를 하죠. 또 생활과학대에서 들었던 제도 수업처럼 치대 수업 커리큘럼에도 치과의 보철이나 장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해 보는 과정이 있어요. 그야말로 수공예 작업인데, 그런 부분에서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니 쓸모 없는 경험은 없는 것 같아요.”

-진로를 바꾼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치의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땐 주변에 알리지 않았어요. 부모님만 아셨는데 처음엔 걱정을 하시다가 결국 응원해주셨어요. 제 성향과 맞지 않는 길을 억지로 끌고 가기보다 빨리 다른 길을 찾는 게 낫다고 설득했죠.”

치과의사 장지혜. /본인제공

-치과의사도 매일 새로운 환자를 만나야 하는데, 성향에 잘 맞나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제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염려도 됐어요. 하지만 인테리어 회사에서 고객을 상대로 하는 영업적인 ‘설득’의 언어보다 환자를 상대로 사실을 전달하는 ‘설명’의 언어가 제겐 더 편안했어요. 

또 케이스마다 가장 나은 결과를 위해 연구하면서 내적 방향으로 에너지를 표출하고, 환자를 만나 경청을 잘 하는 것도 치과의사로 일하는 데 중요한 자질이라 생각해요.” 

-내향적 인간의 강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내향적 인간은 겉으로 느리고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면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행동의 밑그림을 부지런히 그리는 스타일이에요. 항상 신중하고, 집중력과 관찰 능력이 뛰어나죠. 또 자기 표현이 적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청과 공감에 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책 제목을 ‘날마다 28’이라고 한 이유와 책을 쓰게 된 사연이 궁금해요.

“책은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아 쓰게 됐는데, 내향인에 대해 알리고 싶었어요. 내향인들은 힘든 상황에서 자기 혼자가 아니란 것만 알아도 큰 위로를 얻거든요. 

‘날마다 28’에서 28은 성인 영구치의 개수입니다. 제가 날마다 들여다보고 있는 대상이죠. 치아 각각의 특성을 통해 제 삶을 돌아보고, 내향성에 대해 알아봤어요. 제가 직업을 바꾼 계기도 성향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향성’을 주제로 책을 썼습니다.”

-수많은 치아 중 가장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치아가 있다면.

“가장 먼저 사랑니가 떠올라요. 사랑니는 ‘지치’(智齒·지혜가 생기는 때 자라는 치아)라고도 해요. 그 ‘지혜’가 제 이름과도 같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사랑니인데요, 아픔과 해방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사랑니가 제가 내향성을 대하는 태도와 닮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 내향성 때문에 억눌려 있던 적이 있었고, 또 그런 내향성 탓에 직업을 바꾸면서 다시 태어난 듯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진로를 고민 중인 내향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전 내향성을 이해하고부터 마음이 편해졌어요. 결국 자신의 성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성향 차이는 어떤 우위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고칠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잘 이해하고 장점을 발전시키면 되죠. 집중력과 끈기 등 자신이 두각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분야를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해요. 내향성을 결핍이 아닌 자산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비대면과 거리두기, 자가격리가 일상이 된 요즘 재택근무가 일반화되고 있고, 전 세계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세상은 내향인들에게 또 다른 기회의 장이라 생각해요. 디지털 산업이나 1인 기업, 요즘 떠오르는 노마드(Nomad)의 삶도 내향형의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글 jobsN 박혜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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