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도 평생 트라우마”
“아들아, 엄청난 고통을 받아 힘들었을 텐데, 그곳에서는 편안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무 보고 싶다.”
과거 학교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학폭 미투(Metoo·나도 당했다)’ 가 스포츠계와 연예계 등 사회 곳곳에서 확산하는 가운데 학교폭력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권승민(당시 14세·중학교 2학년) 군의 어머니 임지영(58) 씨는 10년이 되도록 여전히 고통받고 있었다. 권 군은 2011년 12월 20일 동급생의 물고문과 구타, 금품갈취 등 상습적인 괴롭힘을 참다못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마지막 모습이 담긴 아파트 엘리베이터 CCTV가 공개되면서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2일 오후 찾아간 대구 수성구 임 씨의 집. 권 군이 생활했던 방 안에는 권 군의 책상, 사진이 놓여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당시 책과 노트는 책꽂이에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임 씨는 “어떻게 치우겠어요. 곧 돌아올 것만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길을 가다 대학생들을 보면 ‘살아 있었으면 이렇게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들은 여전히 가슴에 묻어 둔 중학생”이라며 “요즘에도 사건이 있었던 날을 꿈꾸며 가위에 눌리곤 해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가끔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족을 만나면 대부분 트라우마로 속이 썩어들어가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치유 대책이 없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뉴스를 통해 ‘익명’의 학교폭력을 폭로하는 소식을 접하면 피해자들이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어 도와 달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왜 조성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의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비판했다. 정부는 권 군 사건 발생 당시 국민적 공분이 확산하자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하고 학교폭력전담경찰관과 학교폭력 상담사 배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설치, 학교폭력 생활기록부 기재 등 대책을 대대적으로 쏟아냈다. 하지만 현재는 사실상 학교폭력전담경찰관과 상담사만 남아 있을 뿐 흐지부지하면서 학교폭력은 여전한 실정이다. 임 씨는 “가해자가 철이 없어 잘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한 행동이라도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서 “정부는 처벌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끝까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이번 학폭 미투를 계기로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대구=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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