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언론에 뜬 '한국 경찰', 걱정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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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6.10.02. 오전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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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보내는 그림편지] 독일 언론에 비친 백남기 농민의 죽음

[오마이뉴스 글:권은비, 편집:손지은]

▲ taz 독일언론 타츠 (Taz) 기사 화면 캡처
ⓒ taz.de

"사회운동가 백남기의 죽음은 너무나도 괴로운 아이러니이다. 왜냐하면 그가 대학생일 때 독재자 박정희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 이유로 2번 제적을 당했고, 지금 68세의 그를 죽게 한 부상들은 박정희의 딸인 현재의 한국 대통령 박근혜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은 독일 언론 <타츠>(Taz)가 지난 9월 28일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보도한 내용이다. 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명확하게 서술했고, 백남기 농민이 그의 딸에게 대항하다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는 내용을 가감 없이 보도했다.

너무나도 괴로운 아이러니

또 그간의 경과 과정도 상세히 전했다. 신문은 백남기 농민이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직후부터 의식을 되찾지 못했고, 이날 집회에서는 100대가 넘는 경찰버스와 물대포에 섞인 최루액이 반정부시위대를 포위했었다고 전했다.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의 경찰공권력이 극단적으로 평화로운 대규모시위대들에 대항하고 있다"고 말한 점도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그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학교병원에 수백여 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는 내용도 자세히 전했다.

기사 말미에는 한국 경찰이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이 정말 물대포 때문인지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고 서술했다. 이미 기사 서두에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사망에 이르렀다고 쓰여 있으니, 기사를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한국 경찰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다.

 독일 언론의 백남기씨 관련 리포트 영상에 유튜브 이용자 'ㅂㅇ봉봉'이 한국어 자막을 입혔다.
ⓒ tagesschau.de

대표 TV 뉴스 프로그램인 독일 제 1공영방송 '오늘의 테마'(Tagesthemen)의 지난 4월 12일자 보도내용은 더욱 매섭다.

독일 뉴스 앵커 피나 아탈라브(Pina Atalav)는 백남기 농민에 대한 보도 첫 부분에서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경제성장을 하고 있지만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들은 경찰에 의해 상당히 폭력적으로 진압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경찰의 물대포로 인해 코마상태에 빠진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은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있다"고 보도하였다. 보도 영상 속에는 백남기 농부의 가족사진, 집 그리고 부인과 딸의 인터뷰 등 가족들의 참담한 심경을 매우 자세하게 전했다.

이 보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백남기씨의 딸 백도라지씨가 누구나 통행할 수 있는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는 국제 앰네스티에 의하면 한국에서 사전 신고된 집회들 중 무려 82%가 거절되고 있다며 백도라지씨가 청와대 앞에서 혼자 시위하는 곳에 무려 20명의 경찰이 동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그 현장을 취재했던 독일 제 1공영방송의 기자들도 촬영이 불가피하다며 제지를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영상으로는 1인 시위를 하는 백도라지씨를 막고 있는 경찰들과 열 명이 넘는 사복 경찰들이 독일 제 1공영방송의 기자들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 뒤로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청와대 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을 보여줬다.

 독일 언론의 백남기씨 관련 리포트.
ⓒ tagesschau.de

또한 한국은 2008년부터 급격하게 보수적으로 지배되고 있으며 더 많은 경찰, 더 많은 사복경찰, 더 많은 비밀첩보기관들이 가세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난 다음날 마스크를 쓴 한국 시위대를 IS에 비유했다는 사실도 민중총궐기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보도에서는 백남기 농부가 병상에 코마 상태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의 시민권과 백남기 농부와 같은 민주주의 운동가들을 위한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보도 말미에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백도라지씨를 영상으로 보여주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게 된다면 사과를 받고 싶으며, 이 바람을 아버지에게도 똑같이 약속했다고 전했다. 보도 영상은 독일 언론 카메라를 향해 손으로 X자를 취하고 있는 사복 경찰의 모습으로 끝난다.

미국과 대만도 한국 민주주의를 걱정한다

 미국언론 New York Times 기사 화면 캡처
ⓒ New York Times

이 두 기사뿐만이 아니라 미국과 대만 언론에서도 백남기 농부의 사망과 한국 집회의 자유가 억압 받고 있다는 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외신들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집회의 자유를 걱정하고 있다. 한국의 정부만 빼고.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이제 투사가 되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긴 호흡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독일 제 1공영방송 '오늘의 테마'(Tagesthemen)의 백남기 농부에 대한 보도의 맨 마지막 말이다. 독일 언론이 보기에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집회의 자유는 금세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가을, 농부들이 정성스레 가꾼 벼를 추수하느라 바쁜 시기, 아스팔트 농사꾼 백남기 농부가 눈을 감고야 말았다. 그를 잊지 않겠다 다짐하며 마지막 가신 그 길에 바치는 그림 하나 그려보았다.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그곳에서는 이제 마음껏 농사지으시길. 나쁜 대통령도 무자비한 공권력도 없는 곳에서 황금빛 논밭을 힘차게 걸으시며 이제 해방농사 추수하시길.

▲ 광화문 아스팔트 농사 백남기 농민이 살아계셨다면, 한참 벼를 추수할 시기인 가을이다. 그의 아스팔트 농사를 이제 우리가 이어 받아야 할 것이다.
ⓒ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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