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닫기
줄무늬 니트는 쟈딕 앤 볼테르, 검은색 가죽 라이더 재킷은 산드로 옴므, 검은색 바이커 진은 릭 오웬스 제품.
장우혁이다. 맞다. H.O.T.의 장우혁이다. 그를 아직도 H.O.T.의 장우혁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러든지 말든지 장우혁은 뭔가 했고, 하고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며 드라마와 영화를 찍었다. 그러는 사이 앨범을 준비하고 신인도 발굴했다. 이제 장우혁은 그냥 장우혁이다.
1990년대 후반을 보낸 남자에게 장우혁은 질투의 대상이었다. 유독 남자 팬도 많았다. 노래방에서 그의 파트를 맡으려는 녀석이 한 명쯤은 꼭 있었다.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힘 있게 춤추는 남자. 말수는 적지만 존재감은 돋보이는 남자. 20여 년이 흘러 마주한 장우혁은 조금 달랐다. 거칠게 상대를 압도하기보다 느긋하게 관망했다. 자신이 겪은 일을 덤덤하게 풀어냈다. 또 하고자 하는 일을 담담하게 전했다.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라도 수면 아래는 잠잠하다. 과거의 그가 거센 파도였다면 지금 그는 수면 아래 묵직한 해류다. 대중의 관심과 무관하게 그는 흐르고 또 흘렀다. 그동안 중국에서 더 바빴다. 이제 한국에서도 좀 더 바쁘게 살려 한다. 장우혁이 고개를 든다.
오랜만이라 안부부터 묻는다. 요새 하루 일과가 어떤가?
해외 공연이 없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업무 본다.
재무제표를 보는 건가? 대표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딱딱한 거 말고 지금 신인들을 데뷔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다. 콘셉트를 잡거나 어떤 스타일로 음악을 해야 하는지 찾아야 하잖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일상이라면 운동하고 음악 듣고 사무실 가서 음악 만들고 회사 일도 좀 하고. 보통 이렇다.
일찍 일어나는 건 의외다.
요즘 그러더라. 20대 초반엔 그러지 않았는데 서른 살 넘은 이후로 그렇게 되더라.
좋은 쪽으로 발전했다.
어릴 때부터 이럴 걸 후회한다. 이제 늦었지, 하하. 주위에서도 부지런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하는 위치라서 그런가?
어릴 때부터 항상 스스로 찾아 했으니까 꼭 그렇진 않다. 그때도 누가 가르쳐줘서 음악이나 춤을 추진 않았으니까. 1990년대 초반엔 선생님이 없었다. H.O.T.가 됐을 때도 우리가 안무 짜고 콘셉트 정했으니까. 수동적이지 않고 굉장히 능동적이었다. 이제는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됐다.

베이지색 가죽 블루종은 릭오웬스, 티셔츠는 캘빈 클라인진 제품.
아무래도 회사 대표이기도 하니까. 1인 매니지먼트 회사가 많다. 회사를 설립할 때도 그 정도에서 시작한 건가?
어릴 때 꿈이 가수였다. 가수가 되고 나서는 제작자도 되고 싶었다. 다른 재료를 가지고 다른 걸 만들 수 있길 바랐다. 거창하진 않지만 내 음반을 제작한 후 내 걸 하기 위해 회사를 만든 거다. 하다 보니까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도 주고 싶고. 그런 과정이었다.
회사를 차리면 요란하게 아니, 잘 알리며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과는 다른 행보다. 사람들이 잘 모른다. 그냥 1인 매니지먼트인 줄 알았다.
나대는 거 싫어한다. 그렇게 밖으로 알리며 하는 것도 싫었고. 잘 준비해서 보여드리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좋아하면 더 좋은 거고.
회사 설립 도전에 앞서 중국 활동도 도전이다. 중국이 한류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전부터 중국에서 활동했다.
당시에 사람들은 다 일본 갔다. 내가 중국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의아해하기도 했다.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거기서 해봤자 퀄리티 낮아 보인다, 이런 소리 한 사람도 있었다. H.O.T.가 1997년도에 갔으니까. 그때 중국 간다니까 뭐야, 막 그랬다. 난 중국을 계속 봤다. 중국의 모든 게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아시아의 미국이랄까. 중국에서 기반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다가 중국에 갔다. 그러면서 한국을 좀 등한시한 경향도 있다. 그건 아쉽다. 신인을 발굴하면서 그 친구들한테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
중국에서 개인 활동할 때 뭘 먼저 했나?
[연애편지]라는 방송과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내 1집 앨범이 중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 탄력을 받아 움직였다. 그때가 2005년이었다. 음악 활동을 위해 갔지만 연기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는 찍어놓으면 계속 방영한다. 성마다 돌아다니면서. 중국 전역을 한 바퀴 도는 데 2년이 걸린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연기도 조금씩 하면서 활동했다. 작년에 영화를 찍고 개봉한 상황이다.
따지고 보면 뒤늦게 연기를 했다. H.O.T.로 활동하면서 그런 기회가 많았을 텐데.
연기 제의가 많긴 했다. 근데 안 한다고 했다. 그땐 음악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선 조금 후회한다. 경험해봤으면 좋았을 테니까. 그때는 전반적으로 연기는 연기자가, 가수는 음악만 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으니까.
후배는 언제부터 키우고 싶었나?
H.O.T. 때부터. 가수 되고 나서 제작자를 꿈꿀 때부터 생각했다. 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데님 재킷은 올세인츠, 흰색 헨리넥 티셔츠는 쟈딕 앤볼테르, 페인팅 블랙 진은 헬무트랭 by 비이커, 검은색 샌들은 알도 제품.
그때부터라면 정말 천천히 준비했다. 인지도 등에 업고 후딱 낼 수도 있었잖나.
2001년도쯤 회사를 차렸다. 댄스와 보컬을 가르치는 학원 개념의 아카데미 엔터테인먼트였다. 엔터테인먼트 수입 구조가 안 좋잖나. 인건비가 많이 나가니까. 그 인건비를 학원에서 충당하고 좋은 인재들이 모이면 훈련시켜 배출하겠다, 이런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잘됐다. 그때 만든 댄스팀이 아직도 활동하고. 본격적으로 하면서 ‘WH 크리에이티브’란 회사로 바꿨다. 그러면서 아카데미를 접었다. 아카데미에 쏟는 에너지를 한쪽으로 집중하고 싶었다.
보통 상호명을 엔터테인먼트라고 하는데 크리에이티브를 썼다.
엔터테인먼트가 너무 획일적인 거 같아서 상호를 바꾸면서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을 모토로 삼았다. 우리는 힙합 음악을 다루고 크리에이티브 성향이 강하니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쇼 미 더 머니]에 나갔던 친구도 있고.
몇 인조 팀인가?
그 친구들이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다를 거 같다. 일단 7명 생각한다. 다섯이 최고긴 한데, 하하. 제일 좋은 건 한 명이고. 그룹은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거든. 직원들이 다 관리한다. 난 전면에 안 나서고 지켜보는 상태다. 항상 그 친구들의 춤과 노래를 담은 영상을 본다.
영상을 보면 자신의 예전 모습도 떠오르며 묘할 듯하다.
처음엔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은 익숙해졌다. H.O.T.도 우리가 다 프로듀싱했으니까. 참여 수준이 아니었다. 안무도 노래도 우리가 다 만들었다. 의상조차도 그려서 스타일리스트에게 만들어달라고 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지금도 그 작업의 연장선 같다. 발표하진 않았지만 준비는 계속했으니까. 4년 동안 이 친구들을 봐왔다.
뭘 그리 오래 보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다. 어설프게 하는 것보다 잘 만들어서 내보이고 싶다. 예전부터 난 60세가 되어도 음악 하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이 친구들도 그러면 좋겠다. 엄청난 가수가 안 되어도 괜찮다. 60세가 되어서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자기 음악을 만드는, 그냥 직업인이 됐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다, 하하.
잘 안 된 수많은 아이돌 가수가 있다. 그들은 지금 떡볶이 장사를 하거나 옷가게를 하거나…. 우리보다 더 열정적이고 음악을 사랑한 사람들인데… 그런 상황이 아쉽더라. 물론 그런 선택이 나쁘지 않을 수 있지만, 음악을 선택했으면 계속하는 게 좋으니까. 한 달에 몇억 벌고 사라지는 사람보다 이삼백 월급 받는 사람처럼.

검은색 가죽 베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은색 가죽 팬츠는 곽현주 제품.
지금도 음악, 하잖나?
천천히 하고 있다.
20대 모습 그대로 할 순 없다. 예전 음악과 지금 추구하는 음악은 어떻게 다를까?
음… 어떤 사람은 대중성이 없다고 하고, 독특하고 새롭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거 같다. 아직까지 내가 하고픈 음악을 완벽히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쟤는 퍼포먼스가 좋아. 우와, 새로운 춤이 나왔네, 이런 얘기는 계속 듣고 싶다. 대중이 내게 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퍼포먼스에 세월은 최대 적이다.
그럼. 잘 관리해야 한다. 기회만 준다면 60세까진 괜찮을 거 같은데? 하하하. 기회만 준다면 할 수 있다. 나이 먹고 왜 해, 이런 사고가 굉장히 불순한 거 같다.
하반기에 본인 앨범도 낼 예정이라 들었다. 그때도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겠지?
깜짝 놀랄 거다. 퍼포먼스는, 자신 있다.
신화나 G.O.D.가 다시 나와 활동했다.
예전부터 우리끼리도 많이 얘기했다. H.O.T.를 다시 하자. 멤버들뿐 아니라 매니저들도 예전부터 그랬다. H.O.T.는 어떻게 하다 보니 해체한 것처럼 됐다. 사실 우린 해체한 적이 없다. 우리 입에서 해체라고 나와야 하잖나. 해체라는 단어도 너무 잔인하지 않나? 생선처럼, 하하. 우린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기자 분들이 그냥 해체라고 쓰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끼리 우리 해체했냐? 그런다.
욕구가 있는데 왜 실행하지 않나?
상황이 어렵다. 각자 회사에 얽혀 있으니까. 그 외 여러 가지도 있고. 그리고 뭐가 맞는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같이 나와서 하는 게 맞는 건지. 굉장한 리스크가 있다. 다들 마음은 같다. 하고 싶어 한다. 팬들도 워낙 원하고. ‘토토가’가 흥행하면서 우리 얘기도 나오니 대중은 새롭게 느끼겠지만 우린 계속 얘기해왔다. 마음은 다 하고 싶다.
일단 나온다고 하면 당시 음악을 해야 할까? 새로운 음악을 해야 할까? 그걸 결정하는 것부터 고민이 많겠다.
한다면 그때 그 느낌을 살려야 할 거 같다. 그때와 똑같이.
약간 팬 서비스 느낌이겠다.
우리가 헤어진 과정이 복잡하다 보니까 정리해주는 차원에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나와서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겠다! 이런 건 너무 쑥스러우니까, 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