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군공덕기(珣將軍功德記) |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국고대사학계에서 지금까지 백제 혹은 고구려 유민으로 간주한 '순장군'(珣將軍)이 신라에 의한 한반도 통일전쟁기 무렵에 모종의 사정으로 중국으로 가게 된 일본(왜국) 출신일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한중문화교류사 전공인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박현규 교수는 18일 오후 3시 서울 마포 경인문화사에서 열리는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 제56차 정기발표회를 통해 중국 산시성(山西省) 소재 고대 불교석굴 유적 중 하나인 천룡산석굴(天龍山石窟)과 '순장군'에 대한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중국 석굴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북방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천룡산석굴은 산시성 성도인 타이위앤(太原)에서 남서쪽으로 36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주봉이 해발 1천430m인 험준한 산 중턱에 위치한 천룡산석굴은 동위(東魏) 시대 이후 오대(五代)에 이르는 기간에 조성된 석굴 25개가 있다.
이 중 제21호 석굴은 '순장군'이라는 사람과 그의 흑치부인(黑齒夫人)이 당나라 경룡(景龍) 원년(707)에 죽은 임금과 살아있는 인척들을 봉안하고자 삼세불상(三世佛像)과 여러 성현(賢聖)을 삼가 조성한 곳이라는 '대당물부장군공덕기'(大唐物部將軍功德記)라는 금석문이 일찍부터 알려져 있어 한국고대사학계에서도 관심이 지대한 곳이다.
순장군공덕기(珣將軍功德記) |
하지만 박 교수는 두 차례 현장 답사와 관련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종래 판독불능이었던 '○部'의 지워진 글자는 '勿'(물)임을 밝혀냈다. 아울러 그의 공덕비가 출토된 곳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제21굴이 아니라 15호굴임을 확인했다. 21굴은 불교미술사적 측면에서 축조한 연대가 순장군공덕비가 말하는 707년 무렵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박 교수 논문에 의하면 지금은 '勿部'의 '勿'자가 판독불능이지만 빠진 글자를 이미 청나라 가경(嘉慶) 연간에 홍이훤이라는 저명한 고증학자가 찾아냈다.
즉, 홍이훤은 가경 16년(1811)에 편찬한 '평진독비기'(平津讀碑記)라는 고대 금석문 관련 저술에서 송나라 때 편찬된 '문원영화'(文苑英華)라는 책에서 '금오대장군 물부순'(金吾衛大將軍勿部珣)이란 구절이 보이고, 여기에서 말하는 '물부순'의 행정이 '순장군공덕비'가 말하는 '순장군'과 동일인물임을 알아냄으로써 금석문의 '○部珣'이 실은 '勿部珣'임을 확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물부순'은 어디 출신일까? 박 교수는 한국고대사학계 통설을 존중해 금석문 자체에 그가 '동해'(東海) 출신이며 부인이 백제유민 흑치상지의 출신인 점 등을 고려해 백제유민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그렇지만 토론을 맡은 백제부흥운동사 전공 김영관 박사(서울역사박물관 전시과장)는 물부순의 성씨 '물부'(勿部)는 백제에서는 도대체 보이지 않는 성씨인 반면, 고대 일본에서 보이는 '물부'(物部), 즉, 모노노베씨(物部氏)를 지칭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천룡산석굴 15호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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