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애국 지식인 최현이 남긴 연행록 '조천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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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5.16. 오전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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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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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역주 조천일록', '최현의 '조천일록' 세밀히 읽기'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인재(訒齋) 최현(崔晛, 1563∼1640)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리학에 매몰되지 않고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한 인물이었다. 44세에 관직에 올라 인재등용, 민생, 국방 등을 임금에 간언했고, 무엇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며 애국적인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1608년 8월 3일부터 이듬해 3월 22일까지 동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조천일록'(朝天日錄)을 남겼는데, 그 기록이 '인재선생속집'(訒齋先生續集)에 실려 있다.

인재 최현의 연행록(燕行錄)을 번역하고 분석한 '역주 조천일록'(학고방)과 '최현의 '조천일록' 세밀히 읽기'(학고방)가 동시에 발간됐다.

조규익 숭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 학자 7명이 초벌 번역과 주석 작업, 마무리 강독을 해 내놓은 책들이다.

조규익 교수는 15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성리학자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면서도 실용주의적 경세가(經世家)의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인재 공은 특별한 존재였다. 실용 정신에 입각해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뜻을 품은 실천적 애국 지식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인재는 연행 기간에 매일 듣고 본 일을 모두 기록했고, 자신의 견해와 철학을 담고자 사적인 기록을 덧붙였다. 기록한 내용은 모두 중국 관련 정보이자 조선의 국내 상황이나 외교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그는 중국에서 만나는 각종 물상에 관한 기록을 통해 조선의 왕과 지배층이 제도·정책·사회 풍조·민생은 물론 국가안보, 관리들의 기강과 예법 해이, 인물 등용, 문화·역사에 관한 평가와 해석 등에 관해 유념하기를 바랐다.

'신수노하기'(新修路河記)나 '제본'(題本) 등 중국 관리의 글을 비평 없이 인용한 것은 제시된 정치, 사회, 안보, 문화, 인물, 역사 등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견해가 조선 현실에도 꼭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른 사행록(使行錄, 중국을 다녀온 사신의 기행문)과 달리 '조천일록'은 사적인 기록과 공적인 기록을 함께 담고 있다. 사적인 글쓰기가 노정 속에서의 정서적인 측면을 주로 다뤘다면, 공적인 글쓰기는 제도를 상세히 탐사하고 기록하며 나라의 이익에 기여하고자 했다.

인재는 강박관념이라도 가진 듯 견문으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했고, 시각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관음각 주변 풍경을 묘사하면서 '건물 앞에 두어 그루의 반송이 바위 위에 뿌리를 의탁했고, 쇠 같은 가지가 굽고 구부러져 있었으며 비취색 그림자가 너울거린다'라고 표현했다.

'조천일록'은 김창업, 홍대용, 서유문, 박지원, 김경선 등 17∼19세기 사행록보다 시기상으로 가장 앞서는 것은 물론 실용주의적 세계관이나 비판적 식견, 독특한 글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조규익 교수는 "'조천일록'을 국내 학계에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그간 조명받지 못했던 특별한 연행록 번역서와 연구서를 확보하게 된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조규익 성영애 윤세형 정영문 양훈식 김지현 김성훈 공역·공저. 384쪽/341쪽. 3만1천원/2만8천원.

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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