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원자력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

비슷한 글13
보내기 폰트 크기 설정

요약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 해군은 핵잠수함의 개발에 착수했다. 1953년에 아이젠하워는 ‘평화를 위한 원자’를 선언했으며,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해군의 원자로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1957년에 가동된 시핑포트 원전이 채택한 가압경수로는 이후에 건설된 원자로의 원형으로 작용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원전 건설의 붐이 조성되었지만, 1979년의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와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를 매개로 원자력의 가치는 전면적으로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전력 시스템이 원자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원자력에 대해서는 찬반 논쟁도 뜨겁게 전개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원전)의 신규 건설은 물론 원전의 수명 연장과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의 설치 등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원자력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원자력이 필요한가?”는 질문에는 2/3 가량이 긍정적인 답변을 보이는 반면, “원자력이 안전한가?”라는 질문에는 2/3 가량이 부정적인 답변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의 규모가 큰 15개 국가(2012년 기준)

원자로의 유형

원자력 발전은 원자탄과 마찬가지로 핵분열 연쇄반응을 기본 원리로 삼고 있다. 핵분열 연쇄반응이 급격히 진행되도록 하면 원자탄이 되고, 천천히 일어나도록 제어하면 원자력 발전이 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가장 핵심적인 설비는 원자로(nuclear reactor)이다.

최초의 원자로는 1942년에 페르미(Enrico Fermi)를 비롯한 시카고 대학의 연구진이 제작한 시카고파일-1(Chicago Pile-1, CP-1)이 꼽힌다. 그 후 원자로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 왔는데, 오늘날 원자로의 유형은 크게 경수로(light water reactor, LWR)와 중수로(heavy water reactor, HWR)로 구분된다.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시카고파일-1(CP-1)

경수로는 보통의 물인 경수(H2O)를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이다. 경수로는 다시 비등수로(boiling water reactor, BWR)와 가압경수로(pressurized water reactor, PWR)로 나뉜다. 비등수로는 원자로 속의 물이 핵에너지를 흡수하여 바로 수증기가 된 다음 터빈실로 전해지는 형태로 되어 있다.

이와 달리 가압경수로는 원자로에 높은 압력을 가해 핵연료와 접촉하는 물이 끓지 않도록 하고, 이 물이 증기발생기를 통과하게 함으로써 수증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핵연료로는 비등수로와 가압경수로를 막론하고 약간 농축된 이산화우라늄이 사용된다.

중수로는 감속재로 무거운 물에 해당하는 중수(D2O)를 사용하며, 냉각재로는 중수나 경수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중수로는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은 감속재로 작용하는 중수가 중성자를 거의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중수로의 경우에는 원자로 전체를 정지시키지 않고도 핵연료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과 원자탄 사이의 연계가 훨씬 강해진다. 현재 한국에서는 월성의 원전은 중수로를 채택하고 있고, 다른 지역의 원전은 가압경수로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가압경수로의 개념도

리코버와 핵잠수함의 개발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원자탄을 개발하기 위해 추진된 맨해튼 계획은 미 육군의 소관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미 해군은 핵에너지의 개발에서 더 이상 뒤쳐져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면서 핵에너지로 추진력을 얻는 잠수함의 개발에 착수했다.

1946년에 시작된 핵잠수함 개발 프로젝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리코버(Hyman G. Rickover) 대령이었다.

당시에는 핵에너지의 이용에 관한 기술이 발아하는 단계에 있었으며, 우수한 원자로를 모색하기 위한 실험이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특정한 유형의 원자로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실험과 데이터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가능한 한 빨리 핵잠수함을 만들고자 했던 리코버는 과학자들의 유보적인 태도를 물리치고 감속재와 냉각재로 물을 사용하는 원자로를 선택했다.

원자로를 제작하는 일은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잠수함을 건조하는 일은 제너럴 다이나믹스(General Dynamics)가 맡게 되었다. 리코버는 잠수함의 일부가 설계도면 대로 건조되지 않자 모든 계통을 처음부터 다시 제작하게 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1954년 1월 21일에는 ‘노틸러스(Nautilus) 호’라는 세계 최초의 핵잠수함이 진수되었다. 노틸러스는 쥘 베른(Jules Verne)이 1870년에 발간한 공상과학소설인 ≪해저 2만리≫에 등장하는 잠수함 이름이었다.

노틸러스 호는 1955년 1월 17일에 시범 항해에 나선 후 1년도 되지 않아 잠수 시간, 잠수 항행 거리, 잠수 심도, 항행 속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이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리코버는 미국의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면서 장성으로 진급하게 되었고, 핵잠수함에 이어 핵추진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리코버가 노틸러스 호에 탑승하는 모습

평화를 위한 원자력

1949년에는 소련이 원자탄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을 크게 긴장시켰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했던 점은 소련이 핵에너지를 민간 용도로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소련이 전력생산용 원자로를 먼저 개발한다면 미국에 엄청난 타격으로 작용할 터였다.

소련의 원조로 원자력발전소를 세우게 되는 국가가 소련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소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원자력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 AEC)가 원자로 개발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 올려놓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급기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3년 12월의 유엔총회 연설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Atoms for Peace)’라는 프로그램을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기술을 인류의 번영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특히 아이젠하워는 개발도상국이 전력생산용 원자로를 건설할 때 미국이 이를 지원해주겠다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선언의 말미에서 아이젠하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중대한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미국은 여러분 앞에서, 즉 전 세계 앞에서 가공할 핵의 딜레마의 해결을 돕겠다는 결심, 즉 인간의 놀라운 발명이 인간의 죽음에 공헌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에 이바지하는 방법을 찾는 데 온 마음과 정신을 다 바칠 것임을 서약합니다.”

아이젠하워가 표방한 ‘평화를 위한 원자(력)’는 ‘전쟁을 위한 원자탄’과 대비되는 것으로 과학의 역사상 매우 성공적인 수사적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화를 위한 원자’ 선언을 기념하여 1955년에 미국에서 발행된 우표

아이젠하워의 선언에 따라 미국 정부는 상업용 원자로를 개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원자로 개발의 방향에 대해 두 가지 입장이 경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리코버는 당시에 개발 중이던 항공모함용 원자로를 전력생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달리 경수로와 중수로의 장단점에 대해 숙고한 후 새로운 원자로를 개발하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AEC의 실무진은 전력생산의 경제적 측면에서 유리한 후자(後者)를 지지했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에서는 원자로를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국가안보적 차원의 고려가 중시되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리코버의 제안을 수용했고, 리코버는 미국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책임까지 맡게 되었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의 등장

세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원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한 후보로는 1954년에 소련에서 가동된 오브닌스크(Obninsk) 원전, 1956년에 영국에서 가동된 콜더홀(Calder Hall) 원전, 1957년에 미국에서 가동된 시핑포트(Shippingport) 원전이 거론되고 있다.

오브닌스크 원전은 세계 최초로 민간에 의해 건설된 원전에 해당한다. 오브닌스크의 원자로는 흑연을 감속재로, 물을 냉각재로 사용했으며, 출력은 5메가와트였다.

오브닌스크 원전은 상업적 전력을 생산하는 역할과 실험용 원자로의 역할을 함께 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콜더홀 원전은 세계 최초의 상업적 원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콜더홀의 원자로는 흑연을 감속재로, 이산화탄소를 냉각재로 사용했으며, 초기 출력은 50메가와트였다.

콜더홀 원전은 상업적 목적에 주로 사용되었지만, 부산물인 플루토늄을 통해 군사적 목적에 기여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상업적 원전으로 평가되고 있는 콜더홀 원전

시핑포트 원전은 세계 최초의 ‘순수’ 상업적 원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핑포트의 원자로는 감속재와 냉각재로 모두 경수를 사용했으며, 초기 출력은 60메가와트였다.

시핑포트 원전이 채택한 가압경수로는 이후 미국에서 건설된 원자로의 원형으로 작용했으며, 다른 국가들에게도 널리 보급되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원자로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원전의 원형으로 작용한 시핑포트 원전

시핑포트 원전은 전력을 판매하는 상업용 원전이었지만, 전력 생산단가가 당시의 화력발전소보다 10배나 비쌌다. 그것은 애초부터 경제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된 항공모함용 가압경수로를 도입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실제로 시핑포트 원전의 비경제성은 오랫동안 도마에 올랐다. 군사용 원자로를 바탕으로 상업용 원자로를 성급하게 만들려고 하다가 열등한 기술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원전

그러던 중 1963년에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가 ‘완성품 인도(turnkey)’ 방식으로 원전 판매를 시작했다.

원전 건설비용을 미리 책정해 계약한 다음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모두 원전 건설 회사가 부담하고, 전력회사는 원전이 준공된 후 ‘열쇠’만 넘겨받아 원전을 가동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계기로 1965년부터 약 10년 동안에는 세계 각국의 전력회사들이 200기가 넘는 원전을 주문할 정도로 원전 건설의 붐이 조성되었다.

1973년에 제1차 석유파동(oil shock)이 일어나는 것을 계기로 원자력은 대체에너지(alternative energy, 화석연료를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은 기존의 화력 발전에 비해 대량의 에너지 공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오염도 적다는 것이었다.

특히 프랑스와 일본은 제1차 석유파동 이후에 원전 건설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는데, 당시 프랑스에서는 “석유 없고 석탄 없고 가스 없고 선택 없다.”는 구호가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의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와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를 계기로 원자력 발전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체르노빌 사고 이후에 선진 각국은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에 돌입하면서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은 물론 경제적 · 환경적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원자력 발전은 화력 발전보다 경제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왔지만 나중에 발생할 폐기물 처리비용과 원전 폐기비용을 고려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원자력 발전은 대기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진 않지만 방사성물질과 폐기물처리로 인해 새로운 차원의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 직후에 독일의 본에서는 12만 명의 인파가 집결한 가운데 대대적인 반전운동이 벌어졌다.

2000년대에 들어와 원자력은 일종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기도 했다. 유가가 급등하고 석유정점이 논의되면서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이산화탄소가 지목되면서 원자력에 무게가 실리는 경향도 생겨났다.

그러나 2011년 3월 11일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원자력이 과연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원전에서 전력을 생산하여 사용할 때는 편리하지만, 원전이 노후해거나 원전을 폐기할 때에는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광경

이러한 점을 고려해볼 때, 앞으로도 새로운 원전을 계속해서 건설하는 것이 좋은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이미 건설된 원전을 조기에 폐쇄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는 데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원자력의 비중을 점차적으로 줄이면서 재생(가능)에너지(renewable energy, 화석연료나 핵연료의 경우와 달리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려는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정책형성의 과정에서 원자력에 몰입된 논의를 할 것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의 관점에서 전체적인 에너지 포트폴리오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문헌>6

확장영역 접기

조지 바살라(김동광 옮김), 『기술의 진화』 (까치, 1996).
찰스 퍼거슨(주홍렬 옮김), 『원자력 재난을 막아라: 원자력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생각의 힘, 2014).
이필렬,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창작과 비평사, 1999).
이필렬, 이중원, 『인간과 과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1).
김명진, 『야누스의 과학: 20세기 과학기술의 사회사』 (사계절, 2008).
이정익, 『원자력 이야기』 (살림, 2015).

관련 이미지5

전체보기

출처

출처 도움말
확장영역 접기

역사 속 발명과 혁신의 흐름을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종이에서 로봇까지, 문명의 태동 이래 현재에 ...더보기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