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IRP 수익률 은행 2배 넘어
“가입자 주도형 시장 이미 진행”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증권업계의 원리금 비보장형 퇴직연금인 개인형 퇴직연금(IRP) 평균 수익률은 6.76%로 집계됐다. 보험업(2.85%), 은행업(2.50)%의 수익률을 훌쩍 뛰어넘는다. 은행권은 퇴직연금 상품을 주로 원리금 보장형으로 운용하고 있는 만큼 증권사에 비해 수익률이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금융투자협회는 올해 상반기 중 연금 계좌이체를 통해 은행·보험업계에서 증권업계로 순유입된 금액을 1조2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 중 IRP로 순유입된 금액은 5000억원으로 주로 은행권에서 넘어온 것으로 판단했다. 미래에셋·NH·한국투자·삼성증권에 따르면 은행·보험에서 이들 4개사로 이동한 IRP 규모만 2019년 1563억원에서 올해 3분기 말 7987억원으로 집계됐다.
내년 하반기부터 디폴트옵션이 시행되면 증권사로의 퇴직연금 쏠림 현상이 더욱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이나 IRP 가입자가 별도로 지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지정한 방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증권사로의 퇴직연금 머니무브는 우수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실적 배당상품 편입 비중이 은행과 보험사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특히 주식처럼 손쉽게 매매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거래가 증권사 계좌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박영호 미래에셋투자와연금 연구위원은 “DC형 퇴직연금과 IRP에서 증권사 계좌의 운용 수익률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투자 상품군 다변화를 강점으로 한 실적 배당상품 중심의 운용이 주효했던 것”이라며 “증권사는 다양한 투자 상품군을 통해 가장 자유로운 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하나·신한은행을 시작으로 은행들도 ETF 매매 서비스를 개시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다만 금융 당국은 은행 IRP의 ETF 실시간 거래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사와 달리 ETF 투자에 제약이 생기면서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추가 이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도 나온다.
업권 간 차이는 실제 수익률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적립금 상위 10개 대형 사업자 중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곳은 미래에셋증권이다. 미래에셋증권은 DC형과 IRP 부문에서 최근 1년간 각각 8.12%, 7.5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교보생명(4.89%, 3.98%)과 삼성생명(3.62%, 2.72%) 등과 비교해서도 압도적인 성과다. 높은 수익률을 바탕으로 3분기 말 미래에셋증권은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 중 적립금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연금고객의 온·오프라인 관리체계를 이원화해 고객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모바일로 가입하는 다이렉트 고객의 경우 비대면 연금컨설팅 조직인 연금자산관리센터를 통해 적립금 운용, 절세·인출전략 등에 대해 상담을 받는 식이다. 업계는 기존처럼 예금을 넣어두기만 하는 방식으로는 시장에서 성장이 어려워진 만큼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연금 사업자인 금융사들도 가입자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환경으로 변화될 것”이라며 “증권업계를 주축으로 퇴직연금 수수료 무료정책이 전 업계로 확산된 것처럼, 가입자 주도형 연금시장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