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51. 거북이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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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자세((kurma asana)는 등껍질 속으로 숨은 거북과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자세를 완성하면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생기를 느낄 수 있다. 시연 배수진.


거북은 범어로 쿠르마(kurma)라 한다. 이 거북이 자세(kurma asana)의 마지막 단계는 등껍질 속으로 숨어든 거북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은나라 때 전쟁이나 농경에 대해 점을 칠 때 거북의 등껍질을 사용했다.

나라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는데 하늘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통로가 바로 거북이였던 것이다. ‘귀복(龜卜)’이다. 여기서 ‘구복’과 ‘거붑’을 거쳐 ‘거북’이 탄생했다.

인간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어 준 동물 중에 거북을 능가하는 것이 또 있을까? 삶 자체가 수륙양생의 신비로움 덕분일 것이다.

어릴 적에 “거북아 거북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노래와 함께 수북이 쌓인 모래 더미 속으로 손을 푹 집어넣고 모래를 두드리면서 놀았던 거북놀이를 떠올린다. 이런 연유로도 거북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동물 중의 하나가 되었고, 토끼와 시합하던 거북을 더욱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닷속 용궁을 갈 때 타고 가던 거북은 장수의 아이콘이며 신령스런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와 가까워진 거북은 인기를 누리며 우리 생활 속 깊이까지 찾아들게 되었다.

“하늘이 나에게 이곳에 내려와 새로운 나라를 세워 임금이 되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내가 일부러 온 것이다. 너희들이 모름지기 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내면서 ‘거북아 거북아 네 목을 내 밀어라, 만약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구하구하 수기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라는 구지가(龜旨歌)를 부르면서 춤을 추며 대왕을 맞이하여 (너희들은) 기뻐 충족케 되리라.” 일연스님이 지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가락국(금관가야) 건국 설화의 부분이다.

거북의 역사는 물경 2억여 년에 이른다. 가장 오래된 것은 2억 4000만 년 전의 거북 화석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십장생(十長生)은 신선사상의 장생개념을 차용한 우리 고유의 문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걸 보면 꽤 오래됐다. 고려 때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했고, 조선시대에는 서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거북은 무엇보다 100년 이상을 사는 장수 동물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듯싶다. 더불어 부귀영화도 가져준다고 믿었기에 각종 조형물이나 왕실의 인장(印章) 등에 거북 문양이 많았던 것도 그런 까닭일 터다.

중국 예기(禮記)에 따르면 신비한 동물 사령(四靈)에 거북이 기린·봉황·용과 함께 들어 있는데 이로써 거북은 예지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거북이 하늘과 교감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에 사는 김점남 씨와 거북이에 얽힌 이야기는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할 즈음인 1969년 8월 24일 파나마 근해로 항해하던 중 갑판에서 실수로 바다에 빠져 15시간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갑자기 바다 속에서 큰 거북이 한마리가 떠받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잠시 후에 지나가는 화물선에 극적으로 구조된 사건이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 온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거북 등을 탈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맹귀우목(盲龜遇木)’이란 말이 있듯이 눈 먼 거북이가 숨구멍 난 나무판자를 만나 그 나무판자의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 확률이다. 이는 수행자가 부단히 정진하면 지치고 끝이 없어 보여도 언젠가는 반드시 생사 고리를 잘라내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일 테지만, 김점남 씨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던가.

여담이지만 김 씨의 어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용왕제를 지낸 덕이라는 둥, 이런저런 후일담이 전해지는 바람에 거북이에 대한 사람들의 경외감을 더 높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은 핀치새와 함께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세우는 중요한 근거가 된 동물이다. 다윈은 1835년 남미 대륙에서 10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사는 곳과 먹이에 따라 생김새가 다른 땅거북과 핀치새들을 관찰해 진화론을 착안했다. 갈라파고스의 땅거북은 지구상에 사는 거북 중 몸집이 크고, 가장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신화 중 아바타(化身·화신)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유지와 보존을 담당하는 비쉬누(vishnu)의 화신 중의 하나가 거북(쿠르마)이다. 우주의 대홍수로 인해 신들이 마시는 불사의 감로주 아므르타(amrta)를 포함한 많은 하늘 나라 보물들을 잃어버렸을 때, 비쉬누가 거대한 거북으로 화하여 바다 밑까지 잠수하여 들어갔다.

이 바다에서 비쉬누의 배우자이며 부(富)와 미(美)의 여신인 락쉬미를 포함해서 아므르타와 여러 보물들을 찾게 되었다는 신화에도 거북이 등장한다.

불교 ‘중아함경엔 굶주렸던 자칼을 피해 머리와 꼬리, 다리 모두를 껍질 속에 숨겼던 거북 얘기가 나온다. 부처님은 머리와 꼬리, 네 다리를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육근(六根)에 빗대 “색·소리·맛·냄새·감촉·생각에 집착해 눈·귀·코·혀·몸·뜻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 설사 육근이 나온다 하더라도 자칼이 거북을 어찌할 수 없듯 다스려야 한다”고 수행자들을 경책했다.

집착을 버려야만 번뇌의 그물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부처님의 전생담인 자타카(Jataka)에도 고향을 향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 거북이 결국은 삽에 찍혀서 죽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집착을 버린다’는 참으로 쉽고도 참으로 어려운 화두(話頭) 한마디 곱씹어 본다.

우리 고전소설인 별주부전이 남아메리카 과테말라의 마야족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읽히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다. 마야어(語) 교과서에 수록된다니 뿌듯해진다. 인성의 근본은 세계 어디에서나 유사한 모양이다.

거북이 동물 중에서 가장 오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는 외부의 온도 변화에 따라 체온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주변의 여건을 탓하기 전에 이러한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대처한다는 사실이다. 느린 행동과 처신, 신진대사 작용이 느리지만 빨리빨리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느림의 문화를 실천하고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느리게 먹고 채식 위주로 소식을 하며 긴 호흡으로 몸을 조절함이 특성일 것이다.

또한 거북이는 평생 동안 성장한다고 한다. 육체적인 성장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도 함께하는 ‘앙코라 임파로(Ancora imparo)’라는 말,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필자가 항상 곁에 두고 새기는 말 중의 하나다. 미켈란젤로가 87세에 성시스틴 성당 천장화를 완성한 후 스케치북에 적었다는 글귀.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자각하는 겸손함을 표현한 말이며,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해서 더욱더 배우고 노력하여 자신의 일에 대한 완성도를 부단히 높여가야 되겠다는 다짐의 말일 테다.

바다거북의 수명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소 80년, 최대 200~300년은 될 것으로 추산된다. 바다거북은 예로부터 왕성한 생산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어민들은 장수와 다산의 상징인 바다거북이 어쩌다 그물에 걸리면 막걸리 등을 융숭하게 대접하여 용궁으로 다시 돌려보내곤 했다. 거북의 서민적 풍모를 보여준다. 이처럼 거북은 인간의 삶과 다양한 접점을 나누고 있다.

고대인들은 거북을 생명을 낳는 상징 동물로 생각했다. 하늘의 모양이 거북을 닮았고, 하늘에는 거북이 알과 같은 별들이 많다. 고대인들에게 별은 생명의 알이었다. 또한 거북은 여성의 성기를 닮은 측면도 있다. 어쩌면 고대인들은 거북을 대모신(지모신)의 자궁으로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신화학자들은 동아시아에서의 거북은 지하세계를 대표하는 동물이었다고 판단한다. 그런 측면에서 생명을 낳는 대모신의 상징으로 거북이 채택되었을 수 있다.

거북이 대모신 즉 우리나라 마고 할미의 성기를 상징했음을 보여주는 예로 붙임바위를 들 수 있다. 서울 창의문 밖 길가에는 거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작은 돌로 이 바위를 문지르다 그 돌이 바위에 딱 붙으면 임신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 바위를 부암(附岩)이라 했다고 한다.

“고구려 벽화 중 가장 화려한 것이 사신도(四神圖)이다. 그 사신도의 북쪽 현무도에는 거북과 뱀이 엉켜 있는데, 이는 북쪽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태동을 상징하고 있다. 현무도에서 뱀이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면 거북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두 동물이 어우러져 있음은 음양이 교합하고 있음을 말한다. 즉 현무는 생명이 잉태하는 어둠의 공간에서의 대지의 잠재력을 상징한다.”(정형진, 바람타고 흐른 고대 문화의 비밀 중)

둘 다 상징성이 풍부한 거북과 태양에는 공통점이 있다. 거북 껍데기의 무늬는 빛의 소용돌이를 닮아 태양을 상기시킨다. 거북의 느린 걸음은 태양이 느릿느릿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거북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데 태양 역시 길을 잃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북이 껍데기 속으로 숨으면 설사 불구덩이에 떨어지더라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수행자가 바깥세상으로부터 나쁜 영향력을 다스리고 내부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런 종류의 인내심과 절제력이 요구되며 내면의 신성한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될 것이다.

거북과 구도자가 함께 지니는 특성을 “위험과 유혹이 다가올 때, 구도자는 깊은 명상 속으로 가라앉고, 거북은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거북과 마찬가지로 구도자는 태양 속에, 또는 지식과 지혜의 빛 속에 있을 필요가 있다”고 인도의 현자는 설파하고 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학의 고전 중 하나인 ‘유익한 가르침’이라는 뜻의 우화집 ‘히또빠데샤’의 ‘화해의 장’에서도 ‘거북이와 두 마리 두루미’라는 우화가 등장한다.

국내에서는 한때 북아메리카산(産) 청거북(정확히는 붉은귀거북)을 방생이랍시고 하천에 풀어주는 사람들 때문에 환경 파괴가 심했었다. 생태계의 교란에 일조한 셈이다. 주의를 요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켈로네 요정이 변하여 거북이 되었다고 한다.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식에 헤르메스가 나서서 우주의 모든 존재를 초대했는데, 그중 켈로네만은 집이 최고라면서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제우스·헤라·헤르메스가 분노하여 그렇다면 평생 집에서만 살라고 거북으로 변신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거북은 마스코트로도 인기가 많은 편이며, 안전의 상징으로도 쓰인다. 중국에서는 장수의 아이콘이기도 하고 재물운과 연관이 있어서 대체로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자라는 음탕한 생물로 이미지화 되어 있다니 주의를 요한다. 중국어에서 가장 심한 욕 중의 하나가 ‘자라 알’이란다. 이와는 별개로 남성 성기의 일부분을 칭하는 귀두(龜頭)에도 거북이 머리를 내민다.

거북이가 들어간 말로 ‘거북목 증후군’이 있다. 고개가 앞으로 빠진 자세가 일으키는 증상들을 일컫는다. 대체로 건강한 사람의 목뼈는 C자 형태를 이룬다. 자연스러운 곡선이 머리의 무게를 목뼈와 목디스크 쪽으로 분배하는 구조다. 반면 거북목 증후군은 목뼈 형태가 거북이 목처럼 일자형이거나 역 C자로 변형된 것을 말한다. 컴퓨터 게임 등 스마트 기기를 자주 사용하고, 오랜 시간 모니터를 주시하는 습관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꼿꼿이 하는 것, 아울러 20~30분마다 한 번씩 목을 뒤로 젖혀주고 좌우 회전 등 신전운동을 해 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손바닥을 옆머리에 대고 서로 밀어주는 등척성 운동도 도움이 된다. 때때로 목뒤에 깍지를 끼고 목을 뒤로 젖힌 후 팔꿈치를 붙인 채 좌우로 고개를 돌려주는 동작도 좋다.

경남 산청 동의보감촌에는 ‘거북바위’가 있는데 ‘귀감석’이라고도 칭한다. 어른 키의 4배나 될 정도로 큰 귀감석 등판에는 거북의 등껍질처럼 육각형 도형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그 하나하나에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땅의 기운을 전해주는 귀감석에는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좋은 일들이 새겨져 있어 방문객들이 기(氣)를 받아가고 소원도 빈다. 무게가 약 130톤이나 되는 이 거대한 바위는 이웃 황매산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때로는 일상에 지쳐 기(氣)가 빠졌다고 생각될 때 이곳에 들러 거북바위의 기(氣)라도 받고 싶어지던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을까?

2019년 초에 결성된 ‘이날치 얼티너티브 팝 밴드’가 부른 수중가(별주부전) 중 ‘범 내려온다’ 가사에는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가 나온다.

별주부가 용왕의 약을 찾기 위해 세상에 나와 육지동물을 살피다가 토끼를 발견하고 토끼를 부른다는 것이, 물위로 올라오느라 목이 마비된 상태에서, 토끼를 부른다고 ‘토(兎)선생’을 부른 게 그만 ‘호(虎)선생’으로 잘못 불렀다.

이를 들은 호랑이가 ‘선생’이라고 호칭해 주니 기분이 좋아져 송림골로 내려온다는 내용을 담은 곡이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국악의 대중화에 부는 멋진 착상이라 할 수 있다.

이 현대판 수궁가를 실제로 들어보면 독특한 멜로디에 판소리 가사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곡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었단 사람은 없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매우 흥겨운 곡이다. 느릿느릿한 느림보 거북이도 이 경쾌하고 빠른 템포에 맞춰 막춤이라도 출 듯하니 말이다.

국내 1호 공설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한 부산 송도 해수욕장에는 ‘거북섬’이 있다. 이곳에는 어부와 인용(人龍)여인의 이루어지지 못한 슬프고도 애달픈 사랑 얘기가 전해온다. 이곳엔 그러한 모습을 표현한 동상도 있고 거북이며 거북알 조형물도 있다. 이러한 전설 덕분에 이곳 거북섬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장수복과 재복을 주고,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오면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니 장수와 재물복을 원하는 분들, 또는 사랑을 약속한 선남선녀들은 한번쯤 이곳을 찾아 소원을 빌어 보아도 좋을 듯하다.

야외 나들이하기 딱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 겨우내 거북의 목처럼 움츠렸던 목과 팔다리를 이참에 쭉쭉 뻗으며 시원스런 봄기운 알싸한 송도 바닷바람을 맞이하면 어떠할까?

툭 트인 송도 앞바다 수평선 바라보며 싱싱한 생선회에 콱 쏘는 부산산 ‘쇠주’ 한 잔 곁들이면서 짜릿한 행복감에 젖어 보는, 요가에서 말하는 더없이 지극한 복된 상태 즉 ‘지복(至福)’이라고 일컫는 ‘아난다(ananda)’ 상태의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을 듯하다.

후식으로 역시 전망 좋은 해변 카페에 앉아서 향내 그윽한 헤이즐넛 한잔은 또 어떠할까?

그리고 푸른 송도 바다 물결이 굽이치는 용궁 구름다리 위로도 걸어 보자. 어쩌면 송도 바다 용왕님이 불쑥 얼굴을 내밀며 행운의 여의주 한 알 쥐어 줄지도 모르잖는가.

게다가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함께한다면, 두 손을 꼭 잡고 걸어보는 송도 ‘거북섬’은 상상만 해도 용궁에 들어간 듯 황홀할 듯하다. 또 아는가? 용궁에 사시는 대왕거북의 그 길고도 깊은 큰 숨 한 자락으로 몹쓸 역질의 바이러스균들을 한 방에 싹 마셔줄지도 모를 일이기에.

몸통을 앞쪽으로 구부린 채 양발을 어깨너비 두 배 정도로 벌리면서 양손은 양 무릎 밑으로 넣은 후 발목을 감싼다. 그리고는 바닥에 어깨가 닿을 정도로 양 무릎으로 양팔을 지그시 눌러 준 후 자세를 얼마간 유지하다가 자세를 풀고 잠시 숨을 고른다.

다시 처음처럼 자세를 취하는데 이때 양손은 손등이 바닥에 닿은 채 八(팔) 자 모양으로 뒤를 향하게 한다. 양손을 등 뒤에서 깍지 낄 수도 있다.

이 자세는 척추를 부드럽게 하고 복부기관을 원활하게 해주며 뇌신경을 안정시킨다. 이 자세를 완성하고 나면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생기를 느낄 수도 있다. 등을 굽힐 때는 만다라 산 즉 지구를 등으로 떠받쳤던 위대한 거북, 쿠르마를 떠올려 봄직도 하다. 거북의 껍데기는 거북의 집이다. 그의 영원한 부착물이다. 그것은 자유와 제약을 함께 동반한다. 척추나 만성 관절염 등의 트러블이 있을 시는 자제한다.

“요가수트라에 거북이 자세는 안정적이고 편안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거북이 자세는 안정을 상징하며, 요가 수련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다. 거북이 등껍질은 안정적이고 편안한 요가의 토대가 된다. 힌두신화에서 거북이가 지탱하는 산은 에너지의 원활한 순환을 돕는 곧은 척추를 의미한다. 신체적 안정은 곧 정신적 안정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맥락에서 요기들에게 거북이 자세는 집중의 상징이다. 거북이 자세는 감각이 제어된 프라티야하라(pratyahara)의 모습이기도 하다.”(클레망틴 에르피쿰)

인도고전인 바가바드기타(2-58)에서는 “거북이가 팔다리를 접듯, 감각적 대상에서 자신의 감각을 회수할 때 내면의 지혜는 실로 견고해진다”고 한다. 거북이가 된 요가행자는 외부의 환경에서 감각을 제어하여, 정신을 내부로 향하게 한다. 그리하여 외부의 어떤 동요에도 흔들리지 않는 요가행자는 진정한 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것의 실천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현인은 상윳타 니키야(samyutta nikaya)의 ‘거북 비유경’에서 “거북이 머리와 팔다리를 껍데기 속으로 움츠리듯이 수행자는 자기 마음속의 생각들을 거두어들이고,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남을 해치지 않고, 아무도 나쁘게 말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해방한다”고 설하고 있다. 위대한 현자들은 이따금 자신의 껍질 속으로 들어가 그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창조력의 영적 은총인 내면의 저 신성한 불꽃을 찾는다 할 것이다.

내면의 고요와 명상은 깨끗하게 비워둔 시간의 고독 속에서 발현된다.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명상 수행은 외부의 영향력과 내부의 부정적 기질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최소한의 방책이다.

그러므로 천천히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고 끈기 있게 이동하는 거북이처럼 요가를 수행한다면, 우리도 거북이와 같은 무병장생(無病長生)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매사가 다 그렇듯이 말이다.

앞에서 거북이는 어떠한 유혹과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자기가 목표로 하는,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결코 잃지 않는다고 했다. 요가행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거북이 자세(쿠르마 아사나)’가 시사하는 바가 많다.

[ 거북이(쿠르마 kurma) / 최진태 ]

부정적 성격의 에너지가 감지되면/ 사유와 성찰의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 모든 감각을 닫고/ 생각을 안으로 거두어 들인다/ 소롯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시간들을/ 혼돈의 일상 속에서도 찾는 그대,

머리와 팔 다리를 껍질 속으로/ 웅크려 집어 넣고/ 웅웅거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잡다한 상념의 덩어리를/ 가만히 지켜보며/ 고요히 응시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 그리하여 가장 깊은 곳에/ 미래 예지능력 등/ 영적 은총이 불길처럼 타오르게 하는/ 재주를 지닌 그대,

눈먼 거북이 뚫어진 나무 판자의 숨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내밀 듯/ 요가행자들도 끊임없이 탐욕의 바다 밖을/ 향해야 한다

회유하고 협박해도 요지부동/ 오로지 자신의 오감을 통제하여 자아를 다스리며/ 그대가 허용하지 않는한/ 그 누구도그 내면의 힘을 꺾을 수 없게/ 뚜벅뚜벅 독립독행(獨立獨行)의 길을 가는/ 옹골찬 삶의 표상,/ 태양처럼 결코 길을 잃지 않으니/ 진정한 자기통제의 화신,/ 은혜를 잊지 않는 신의로움은 덤이로고,/ '대 구속(拘束) 뒤에 대 자유가 있으리라'는/ 선사(禪師)의 '할(喝)' 외침/ 들려주고 있는 그대,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죠/ 매사 서두르지 않고 느린 듯/ 서서히 그러나 끈기있게/ 긴긴 호흡과 함께/ 멈추지 않고 결코 포기하지 않은채/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면/ 결국은/ '열린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노래하는 그대,

지속의 힘을/ 억년에 걸쳐/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고 있는 그대,/ 거북이여!/ 쿠르마(kurma)여!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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