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락두절 땐 거액 위약금… 강제 이적 LoL ‘카나비’ 노예계약

입력2019.11.22. 오전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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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e스포츠 계약서 입수 첫 공개강압 이적 의혹이 불거졌던 프로게이머 서진혁(가운데)군이 소속사인 그리핀과 맺은 계약서. 과도한 위약금, 팀의 일방적 해지 권한 등 불공정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하태경 의원실 제공

선수가 30일 이상 입원할 경우, 선수의 기량이 떨어질 경우 팀은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연락이 두절되면 팀은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한 뒤 ‘5000만원+그간 지급한 모든 돈’을 청구할 수 있다. ‘중국으로의 강압 이적 의혹’ 사건 피해자로 알려진 ‘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게이머 ‘카나비’(게임상 닉네임) 서진혁(19)군이 소속 팀 그리핀과 맺은 계약 내용이다.

국민일보가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로부터 서군과 LoL 프로팀 그리핀 사이에 지난 2월 체결된 계약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서군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불공정 조항이 다수 포함된 사실을 21일 확인했다. 특정 e스포츠 선수의 계약서가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계약서에는 팀이 선수의 사생활까지 개입할 수 있게 돼 있다. 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수를 즉시 방출할 수 있는 규정도 있었다. 선수가 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계약서상 가장 큰 문제로 꼽힌 조항은 계약 해지 부분이다. 16조 5항에는 선수로서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팀이 판단하는 경우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팀 마음대로 선수를 평가해 자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역량 부족은 너무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어서 정당한 해지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3항은 팀과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다. 이때 팀은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5000만원의 위약벌과 함께 손해배상액을 선수에게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손해배상액은 팀이 선수에게 지급한 모든 금액이라고 명시했다. 서군의 계약서상 연봉은 2040만원이다. 연봉의 2.5배에 해당하는 금액과 지금까지 받은 돈을 전부 내놓으라는 것이다. 법무법인 채율의 정다은 변호사는 “연봉에 비해 위약금 액수가 지나치다”며 “‘연락두절’도 어느 정도가 기준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7항에는 “선수활동 등과 무관한 사유로 병원 등에 연속으로 30일 이상 입원해 정상적인 선수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8항은 “중대한 질병 또는 상해를 당하여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7항과 8항의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선수는 1년간 다른 팀과 유사한 계약을 하지 못한다”는 9항도 문제다. 이는 ‘꾀병’을 의식한 조항으로 보이지만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프로스포츠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팀은 선수에 대한 보호 의무가 있다”며 “중대한 질병, 상해를 당하는 경우 치료비 부담 등 보호 의무를 다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수익 분배 문제도 심각하다. 지식재산권 부분을 규정해 놓은 계약서 6조 2항에는 “계약기간이 종료된 이후 상표권의 모든 권리를 선수에게 이전하지만 동시에 선수는 상표권 개발에 투자한 비용 전부를 팀에 지불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선수가 상표권을 가져갈지 말지 팀과 협의할 수 있지만 어찌됐든 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업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팀은 계약기간 동안 지적재산권 수입을 전부 가져감으로써 비용을 회수한 것 아니냐”며 “선수가 개발 비용을 왜 지불해야 하는지 이해불가”라고 말했다

그리핀 계약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배포한 ‘대중문화예술인(연기자 중심) 표준전속계약서’를 대부분 차용한 것이다. 하지만 표준계약서상 선수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을 자신들의 계약서에서 제외했다. 대신 팀에 유리한 부분을 추가했다. 표준계약서 5조 4항에는 “연기자는 회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해 놓았으나 그리핀 계약서에는 빠졌다. 정다은 변호사는 “그리핀 계약서는 표준계약서를 개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핀 측은 “지금 드릴 말씀은 없다”고 해명을 거부했다.

그리핀은 이와 유사한 계약서로 소속 선수 대부분과 계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불공정 계약이 업계에 만연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팀에서 선수에게 ‘임금 전액을 못 주겠으니 소송으로 갈지, 조금이라도 받고 나갈지 선택하라’고 말하는 일도 있다”며 “대부분 후자를 선택하고 그냥 나오게 된다”고 전했다.

서군이 겪은 강압 이적 의혹 사건, 이른바 ‘카나비 사태’의 골자는 조규남 전 그리핀 대표 등이 미성년자 서군을 협박해 중국 LoL 팀 징동게이밍(JDG)과 4년 이상의 계약을 맺으려 했다는 것이다. 양 팀은 지난달 ‘초특급’ 유망주인 서군의 이적료를 500만 위안(약 8억3000만원)에 합의했다. 거액의 이적료를 받기 위해 미성년 선수를 강제로 이적시키려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서군은 애초에 4년 이상 장기 계약을 원하지 않았다. 선수 생명이 짧은 e스포츠업계 특성상 선수들은 장기 계약을 기피한다. LoL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즈도 3년이 넘는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서군이 팀의 장기 계약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배경에는 양측이 맺은 불공정 계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리핀 측은 협박도, 강압도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검찰은 사기·협박에 의한 미성년자 불공정 계약 사건을 즉각 수사하라”며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 부처는 다른 피해자가 있는지 전수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동성 이다니엘 윤민섭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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