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엔 ‘침묵’ 한국엔 “실망”…미 동맹외교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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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8.23. 오후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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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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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미, 지소미아 종료에 “강한 우려”
일본의 수출 규제땐 무관심 일관
한·미, 동맹이라도 안보전략 입장차
동북아 평화 위한 협력은 변함없어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3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2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얘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시했다. 동맹 사이에서 이견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이 막후에서 주도해 체결한 지소미아의 종료가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인 한·미·일 안보협력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7월1일과 8월2일 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복성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발표했을 때, 미국이 일본에 “우려”를 표하지 않은 채 ‘한·일이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라’는 원칙만 되풀이했던 태도와 대비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한-일 안보협력을 악화시킨 발단은 명백하게 일본에 있다”며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비대칭적인 경제보복을 했을 때 미국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다가, 우리가 일본의 조치에 대항하는 조치를 취했을 때 왈가왈부하는 것은 동맹으로서의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적극적 노력은 회피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등 한국에 청구서만 내밀고 있는 미국에 대해 한국이 ‘숙제’를 내놓은 셈이라는 해석도 있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우리가 미국의 요구대로 지소미아를 연장한다고 해도 방위비 분담금, 호르무즈 파병, 이후 제기될 동아시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 등에서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신뢰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미국은 신뢰 회복을 위해 한-일 갈등의 원인이 된 일본의 수출규제를 풀려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미국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이를 곧바로 한-미 동맹 악화로 연결짓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것이 동북아 전략의 핵심이지만, 한국의 안보전략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진전이 중심”이라며 “동맹인 한-미 사이에도 안보 전략에 대한 입장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지소미아 외에도 한반도 안보나 동북아 평화와 관련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번 사안을 한-미 동맹 악화로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지소미아는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동아시아에서 미사일방어(MD)체제를 구축·운영하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다.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입장도 동일할 수는 없다. 미·일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차원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 전략의 군사·안보 측면을 강조하고, 일본은 경제·외교 측면을 더 중시하면서 중국 견제 목적의 군사작전에 깊숙이 참여하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이수형 연구위원은 “미국이 지소미아 문제에서 한국에 유감을 표하고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의 군사적 측면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한-일 갈등에 무관심해 상황을 악화시켰으며 갈등 해결을 위해 더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22일(현지시각) 사설에서 “한-일 갈등은 무역과 동맹을 향한 트럼프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크게 악화되었다”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 사설은 “한-일 적대감의 뿌리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 특히 2차대전 동안 일본이 한국인들을 성노예와 강제동원 노동자들로 잔인하게 착취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일 갈등이 두 나라의 경제와 안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익을 손상시키고 있다”며 “미국은 오래전에 개입해 싸움을 멈추기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동맹국들과 적대국들 모두에게 관세를 올리기 위해 가짜 “국가안보” 주장을 이용하는 것을 유행시켰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세계 무역시스템을 뒤흔들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프랭크 엄 미국 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소미아 종료는) 북한과 러시아, 중국에 동북아에서 미국 주도의 동맹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양국간 분쟁 해결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겠지만, 미국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직접 만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비롯해 물밑에서 좀 더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미국이 한-일 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우리 모두가 중대한 전략적 이해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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